라이노 바이블 with 길기윤강사님
INTRO
건축 모델링은 더 이상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작업에 머물지 않습니다. AI와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제는 데이터를 설계하고 워크플로우를 구축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KIL Architecture를 운영하며 라이노, 그래스호퍼, AI 기반 설계 프로세스를 실무와 교육 현장에서 함께 다루고 있는 길기윤 강사님과 함께, 변화하는 디지털 설계 환경 속 디자이너의 역할과 앞으로의 모델링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INTERVIEW
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KIL Architecture의 대표이자 건축 디자이너 길기윤입니다. 과거 네덜란드 UNStudio, 중국 MAD Architects, 독일 Graft Architects 등에서 실무를 경험했고, 현재는 원광대학교 겸임교수 및 국민대학교 초빙 강사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또한 렉터스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라이노와 AI를 결합한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실무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Q. 라이노로 많은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 가장 라이노에서 강점이 되는 기능은 무엇이라고 생가하시나요?
A. 무엇보다 NURBS 기반의 ‘정교한 곡면 제어 능력’과 ‘압도적인 유연성’입니다. 어떤 비정형적이고 복잡한 형태라도 치수에 맞게 구현할 수 있죠. 여기에 그래스호퍼(Grasshopper)라는 시각적 프로그래밍 언어가 결합하면서 단순 툴을 넘어선 하나의 거대한 ‘디자인 플랫폼’이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강점입니다. 최근에는 Python과 AI 에이전트까지 연동할 수 있어 무한한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Q. 강의 의외에도 여러 학교에도 출강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나요?
A. 형태를 직관적으로 만들어내는 1차원적인 명령어는 금방 배우지만, 데이터를 논리적으로 쌓아가는 ‘워크플로우(Workflow)’를 어려워합니다. 디자인은 계속 수정되기 마련인데, 구조가 엉켜있으면 면이 터지거나 필렛(Fillet)이 먹지 않아 아예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죠. 형태 자체보다 ‘수정이 용이한 데이터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을 가장 어려워하면서도, 가장 필요로 합니다.

Q. 모델링까지 AI가 스며든 지금, 학생들은 어떤 능력을 길러야 하나요?
A. ‘오퍼레이팅(Operating)’에서 ‘프롬프팅(Prompting) 및 디렉팅(Directing)’으로의 시각 전환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선을 긋고 면을 올리는 손의 속도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AI에게 디자인 의도(Context)를 정확히 지시하고, AI가 뱉어낸 무수한 데이터 중 어떤 것이 건축적으로 타당한지 판별하는 ‘비판적 안목’이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Q. 라이노와 Grasshopper는 단순한 모델링 툴을 넘어 fabrication이나 computational design영역에도 많이 활용됩니다. 실제 실무에서 알고리즘 기반 설계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A. UNStudio나 MAD Architects 같은 해외 탑티어 오피스에서 대규모 비정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수만 개의 각기 다른 곡률을 가진 외장 패널을 시공 가능한 규격으로 평탄화(Unroll)하고 번호를 매겨 최적화하는 작업은 사람의 손으로는 몇 달이 걸려도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래스호퍼 알고리즘을 구축하면 이 과정을 단 몇 시간으로 단축시키고, 오차 없는 시공 데이터를 넘겨줄 수 있습니다. 디자인의 상상을 현실로 짓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Q. 렉터스에서 강의하고 계신 라이노 강의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제 강의명인 ‘올킬(All-Kill) 라이노’에서 알 수 있듯, 툴의 기초부터 렌더링, 시각화, 포트폴리오 최적화까지 한 번에 끝내는 실무형 클래스입니다. 유튜브에 파편화된 기능 설명이 아니라, 실제 제가 해외 설계사무소에서 사용했던 체계적인 시스템을 그대로 전수합니다. 단순히 예제를 따라 하는 것을 넘어 학생 스스로 실무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로직을 심어주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Q. 특히 이번에 새롭게 오픈하신 Vibe 코딩과 MCP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인가요?
A. 두 가지 모두 AI 자동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MCP(Model Context Protocol)는 AI가 라이노의 작업 맥락을 이해하고, 디자이너의 프롬프트에 맞춰 스스로 파이썬 스크립트를 작성해 모델링을 수행하는 ‘자율주행 워크플로우’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바이브코딩(Vibe Coding)은 라이노라는 기존의 레거시 툴 자체를 디자이너 개인의 목적에 맞춰 훨씬 적극적으로 최적화하고 개인화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동안 복잡한 명령어나 까다로운 작업 과정 때문에 고생하며 라이노를 사용해 왔다면, 바이브코딩을 통해 라이노 API 와 파이썬 스크립트 기반으로 훨씬 더 빠르고 직관적인 ‘나만의 전용 툴’을 직접 개발할 수 있습니다. 즉, 복잡한 실무 프로세스를 완전히 개인 맞춤형으로 혁신하고 이를 일상화시킬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기능입니다.

Q. 최근 생성현 AI 기반 모델링 프로세스가 등장하면서, 기존의 NURBS 기반 모델링 방식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A. 기존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모든 과정이 디자이너의 수작업이었다면, 이제는 생성형 AI(Nano Banana 등)가 아이디어나 베이스 디자인을 이미지로 빠르게 제안하고, 디자이너는 NURBS의 정교함을 이용해 그것을 ‘시공 및 실시설계가 가능한 수준의 데이터’로 최적화(Optimization)하고 다듬는 역할로 비중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Q. 파라메트릭 디자인이 대중화되면서 형태 자체보다 ‘로직 설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학생들이 Grasshopper를 배울 때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사고 방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데이터 트리의 흐름’ and ‘변수(Parameter)의 인과관계’를 이해하는 시스템적 사고입니다. 건물의 형태를 고정된 조각품으로 보지 않고, 햇빛, 풍향, 대지 경계선이라는 다양한 조건 값에 의해 언제든 유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 하나의 ‘생명체’나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첫걸음입니다.

Q. 최근 건축 실무에서는 BIM, DCC 툴, 렌더 엔진, AI툴까지 워크플로우가 복합적으로 열결되고 있습니다. 라이노는 이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게 될까요?
A. 완벽한 ‘핵심 허브(Core Hub)’ 역할을 할 것입니다. 라이노는 포맷 호환성이 압도적으로 좋습니다. 초기 AI 디자인 툴에서 영감을 받아 라이노로 뼈대를 잡고, 그래스호퍼로 데이터를 가공한 뒤, Rhino.Inside 기술을 통해 BIM(Revit)으로 넘기거나 Enscape로 실시간 시각화를 하는 등 모든 이종(異種) 소프트웨어 간의 연결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중앙 통제소 역할을 확고히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높은 성능 대비 소프트웨어 가격이 저렴한, 즉 가성비가 좋은 소프트웨어로 많은 젊은 디자이너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어요.

Q. AI 기반 생성 모델이 점점 발전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모델러나 디자이너의 역할은 어떤 방향으로 재정의될 것이라고 보시나요?
A. 단순노동에 가까운 모델링을 반복하는 ‘툴 오퍼레이터’의 자리는 빠르게 AI로 대체될 것입니다. 앞으로 디자이너는 AI 에이전트들이 가져온 수많은 대안을 종합하고, 프로젝트의 철학적, 사회적, 경제적 맥락에 맞춰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디자인 디렉터(Design Director)’이자 ‘의사결정자’로 재정의될 것입니다.

Q. 최근에는 Midjourney, ComfyUI, MCP, Vibe Coding처럼 비전공자도 빠르게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오히려 전문 디자이너에게 더 요구되는 역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공간의 물성’에 대한 이해와 ‘인문학적 깊이’입니다. AI가 그럴싸한 비주얼은 1분 만에 만들어주지만, 그 공간이 중력에 맞게 서 있을 수 있는지, 재료가 빛을 받았을 때 어떤 촉감을 주는지,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떤 심리적 경험을 하는지 책임지는 것은 온전히 인간 건축가의 영역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판별하는 ‘장인정신’이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비전공자도 쉽게 결과물을 내는 시대에 전문 디자이너가 앞서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 직접 써보고 그 가능성을 평가하는 ‘얼리어답터의 호기심’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은 유튜브나 X(트위터), 스레드(Threads) 같은 플랫폼이 새로운 기술 뉴스를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죠. 다만, 현시점의 AI 툴들은 파편화되어 있는 과도기적인 프로토콜임이 분명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결국 이 모든 기능이 하나로 묶인 ‘올인원(All-in-One)’ 서비스가 나올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우리가 말하는 AGI(인공일반지능)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Q. 앞으로 3~5년 안에 건축 모델링 및 시각화 분야에서 가장 크게 바뀔 부분은 무엇이라고 전망하시나요?
A. 솔직히 말씀드리면,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 감이 잘 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물론 작업의 편의성을 극한으로 도와주는 자동화 툴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겠죠. 하지만 최근 구글의 ‘프로젝트 지니(Project Genie)’나 텐센트의 ‘HY2.0 월드모델’ 같은 압도적인 실시간 공간 생성 기술을 보고 있으면, 과연 머지 않은 미래에 ‘모델링’이나 ‘시각화’라는 기술적 행위 자체가 인간에게 필요할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마저 듭니다.

단순히 툴이 발전하는 수준을 넘어, ‘건축가의 역할이 과연 어디까지 축소되고 대체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시점입니다. 앞으로 3~5년 안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엄청난 자동화를 분명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툴의 기능을 익히는 것을 넘어, 기술의 홍수 속에서 공간을 기획하고 AI라는 거대한 파도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교육과 사고 과정의 전면적인 개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 보입니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우리가 지금 밤낮을 새며 치열하게 하고 있는 이 기술적인 일들이, 어쩌면 무의미해질지도 모릅니다. AI가 모든 것을 자동화하는 시대가 온다면, 그때부터 ‘일’은 곧 ‘취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수많은 에너지를 투자해 구축해 온 모델링, 렌더링, 스크립팅이라는 워크플로우 안에서 온전한 ‘재미’를 찾을 수 있다면, 미래의 우리는 노동으로서가 아니라 디자인 자체를 순수한 취미로 즐기는 행위자가 되어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Q. 마지막으로 모델링에 AI를 활용해보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AI는 요술 지팡이가 아니라, 여러분의 수고를 덜어줄, 부족함은 아직 있지만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는 기특한 ‘조수’입니다. 조수에게 명확한 지시를 내리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툴의 뼈대(NURBS의 원리 등)를 탄탄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본기를 겁내지 말고, 확실히 다진 후에,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아 남들이 며칠 걸릴 작업을 단 몇 시간 만에 해결하며 ‘디자인’ 그 자체에 더 많은 시간을 쏟으시길 바랍니다.

OUTRO
길기윤 강사님은 라이노와 AI를 단순한 기술 도구가 아니라, 설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디자인 플랫폼’으로 바라봅니다. 특히 앞으로의 모델링은 단순한 형태 제작보다 데이터를 설계하고 AI를 조율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며, 디자이너 역시 단순 오퍼레이터가 아닌 의도를 판단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로 재정의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중요한 것은 오히려 공간의 물성과 인간의 경험, 그리고 이를 읽어내는 건축가의 철학이라는 점도 함께 강조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결국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경험해보는 태도와, 그 안에서도 자신만의 기준과 사고를 유지하는 힘일 것입니다. AI와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이 일상이 되어가는 지금, 건축가는 점점 더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존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