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3대 성당_계산성당
- 발행
- 2023.11.27
INTRO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계산동 2가)에 위치한 계산성당이 우리나라 3대 성당 중 하나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오늘은 대구-영남지역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주교좌 계산 대성당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1. 계산성당의 역사

대구 본당 초대 주임으로 임명된 프랑스 선교사 로베르 신부는 몸을 피해 신나무골(현 칠곡군 지천면 연화동)에서 박해를 피해 전국에서 모여든 신자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로베르 신부는 대구 읍내에 신앙 공간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는데, 당시 로베르 신부는 성당 자리로 현재 계산성당의 위치와 그 서편 동산을 놓고 고민하였는데, 지금의 계산동을 택했다고 합니다.

초기 계산성당의 건물은 지금과 같은 뾰족탑이 아닌 목조 성당이었다고 합니다. 1897년 현재 위치인 계산동에 부지를 마련하고, 전통 한옥 목조에 팔각 기와지붕을 이은 그리스식 십자형 성당을 신축하였습니다. 이는 한국 성당 건축사에서도 유일한 양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건립 40일 만에 대구 일대를 지진이 발생하여 촛대가 넘어지며 불에 휩싸인 성당이 전소하여 목조 성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1902년 로베르 신부는 신자들을 격려하며 성당 계획을 다시 수립하였습니다.
로베르 신부는 전주 전동성당의 설계도를 따라 색유리와 철물 자재는 프랑스, 홍콩 등에 주문하였고, 서울 명동성당을 지은 벽돌공, 목수 등의 전문가를 초빙하여 대구 최초의 서양식 성당을 완공하였습니다.
2. 계산성당의 건축적 특징


현재의 계산동 성당은 1901년에 착공하였습니다. 이는 김보록 신부가 교회 중진의 협력을 받아 벽돌로 내화구조와 성당 재건 계획을 세우고 직접 설계한 것입니다.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는 위의 사진과 같이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의 특징인 벽체는 석재 조각과 벽돌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모르타르로 쌓아 올렸습니다.
또한 벽에 필라스터를 설치하여 장식적 요소를 주고, 개구부에 아치 구조를 사용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성당의 평면은 로마네스크 양식 평면 형태의 ‘사제를 위한 공간’이 아닌 고딕 양식 평면 형태의 ‘신도를 위한 공간’에 맞췄고, 위의 사진에 표시된 TRANSEPT라는 부분이 신랑 NAVE를 가로지르는 라틴 크로스의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의 입면은 서측 정면에 집중하여 서쪽 정면 출입구 위에 2개의 종탑을 높이 세운 쌍탑이 있고, 출입구 위에 장미창을 두고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교회의 실내는 자연채광을 stainded glass를 통해 여러 가지 색이 비치게 하는 등 전형적인 고딕 양식입니다.


건물의 외벽은 화강석 기초석 위에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을 쌓았는데, 회색 벽돌의 사용은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벽에 직각으로 만들어져 압력을 지지하는 버트레스(buttress)와 정면 출입구 및 창 둘레, 그리고 천정 리브에 사용하여 구조체 및 장식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OUTRO
한국의 3대 성당이자, 대구 최초의 근대식 성당 건축물인 ‘계산성당’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양한 서양식 건축 양식을 찾아볼 수 있었던 것과 함께 계산성당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도 함께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개화기 당시, 서양의 종교와 함께 새로운 건축양식이 한국으로 들어오며 정착하던 시기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대구 계산성당을 한번 방문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