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있는 가구 디자이너, 채범석

발행
2024.01.24

Part 1. 디자이너, 작업

 

Q : 안녕하세요. 디자이너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 저는 가구와 같은 단순한 기능을 가진 오브제를 형태적으로 실험하는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이고요. 디자인뿐 아니라 제작도 하기 때문에 그런지 많은 분들이 작가라는 이름으로도 불러주세요.


Q : 디자이너님 작품의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듣고 싶어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세계관과 가구라는 개념이 같이 존재하는 게 독특했어요.

 

A : 제가 지금 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 근미래적이고 차가운 느낌의 가구를 만들고 있었어요. 집에서 사용하고 싶은 가구보다는 완전히 컨셉추얼하고 PIECE 하나가 있더라도 공간에서 강한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었고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을 결국 실물로 구체화하려면 세계관 같은 그 안에서 몰입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죠. 실제로 그런 sf 영화나 소설을 되게 좋아하기도 해요.다양한 작품을 보며 받은 영감들에서 제가 좋아하는 형태들이 일관되게 계속 나오는 걸 깨달았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이 조금씩 정리가 됐죠. 그래서 그런 형태적인 세계관으로 정의를 했고, 그 안에 놓일 만한 사물들을 디자인한다는 개념으로 지금 작업을 하고 있어요.

 

 

Q : 그렇다면 디자이너님 사이트에서도 phase 1과 2로 분류된 까닭도 세계관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A : phase 1에서는 특별히 세계관이 있다기보다는 스스로도 아직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었고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콘셉트를 정리하고 소재를 찾아 만드는 식으로 작업을 했는데, 한계도 보이고 제가 하고 싶은 게 조금 명확해지니까 그거를 이제 작년에 페이지 2로 넘어간다는 개념으로 해가지고 새로 시작을 한 거죠.


Q : 특히나 POST-COLLAPSE 작업에서 그런 분위기가 잘 느껴지는데 SF 같이 컨셉츄얼, 장르물을 좋아하실 것 같아요. SF여도 좋고 특별히 영감받은 혹은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 문학 등이 있나요?

 

A : 저는 영화가 예술의 집약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컨셉 아트 같은 그림을 그리는 걸로 시작을 해서 진짜 3d 오브젝트로 변환을 하고 디벨롭을 통해 영화 안에 배치하잖아요. 그런 거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예를 들어서 이제 인터스텔라를 봐도 타스라는 로봇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도 다 누군가의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물이고 그 영화의 세계관에 들어맞는 존재죠.

 

영화마다 그 안에 들어갈 사물들의 특징이 다르고 정체성이 녹아들어 있으니까 이런 것들에 영감을 많이 받죠.

 

 

Q : 분위기나 내용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손그림에서 시작해 시각화하는 영화의 과정에도 많은 재미를 느꼈던 것 같네요. 사이트에 있는 드로잉 작업이 눈에 띄었어요. 완성된 가구뿐 아니라 드로잉 또한 업로드했다는 점에서 에스키스 작업을 그만큼 중시하시고 하나의 작업물로 받아들이고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떠한가요?

 

A : 저는 자동차를 전공했기 때문에 스케치를 굉장히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스케치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보통 손이 덜 풀려 있을 때 스케치로 내 머릿속에 있는 형태가 안 나오기 때문에 모델링으로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케치로 형태를 내는 게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내가 손으로 그리려는데 안 나오는 형태는 컴퓨터로 해도 안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3d로 만들면서 디자인을 시작해버리면 거기서 갇히더라고요. 어쨌든 내가 만들어놓은 시간과 노력이 있으니까 그 안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물이 이렇게 나오는데 스케치는 그냥 종이를 계속 넘기면서 그냥 막 해버리면 되는 거니까 저는 그래서 스케치를 많이 하려고 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Q : 작업을 하실 때 가구로서의 실용적 역할과 조형적, 컨셉적 이미지에 대한 비율을 어느 정도로 잡고 작업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 저는 타협을 하진 않아요. 완전 형태 쪽으로 가 있는 것 같고요. 처음에 자동차를 안 하고 아트퍼니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도 관련이 있는데 자동차에는 수천 개의 기능이 들어가고 그게 거의 완전 주를 이루는 사물이죠. 어떻게 보면 기능에 맞춘 형태가 나오는데 그에 비해 의자는 앉는다는 단순한 기능만 가지고 형태를 다양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걸 선택을 한 거죠.

 

 

Q : 디자이너님은 앞으로도 가구 작업은 물론이고 공간, 인테리어 등 더욱 분야를 넓히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신 적이 있는데, 가구가 놓일 공간, 공간의 분위기를 고려해 작업하시는 편인지 궁금합니다.

 

A : 제가 만드는 가구는 사실 사람에 가까운 가구보다는 공간에 가까운 가구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제 가구를 볼 때 사람이 사용하는 걸 상상하기보다는 흰 방에 놓여 있을 것 같은 상상이 드는 가구들이란 말이에요. 조형에 큰 비중을 두고 하는 작업이고 그래서 그 정도의 분위기를 고려하는 거죠. 근데 디자인 과정에서 크게 고려를 하는 건 아니고 작업들 하나하나가 다 모였을 때 통일감을 신경 써야 하죠. 사각형 판의 스툴을 만들다가 갑자기 뾰족한 게 나오는 등 다양한 형태로 작업을 하지만 전부 하나의 느낌을 느끼도록 은연중에 생각하는 것 같아요.


Q : 산업디자인과-자동차 전공을 하신 만큼 3D로 사고하는 방식에 익숙할 것 같네요. 아트 퍼니처, 가구 디자이너들을 보면 목조형, 금속 공예, 공간 디자인 등 굉장히 다양한 전공에서 오신 분 들이 많은데 전공 덕분에 이 일을 하면서 얻는 이점, 혹은 아쉬운 점 같은 게 있을까요?

 

A : 일단 가장 큰 이점은 자동차라는 분야가 지금 디자인한다고 내일 나오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도 보통 최소 10년에서 20년 후의 자동차를 디자인하거든요. 지금 기술로는 말도 안 되는 형태지만 디자이너는 나중을 봐야 하니까요. 그래서 미래와 관련한 작업을 하는 거에 훈련이 많이 돼 있었고 그래서 지금 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죠. 스토리를 만들고 컨셉을 짜고 타겟이 있고 그런 것들을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형태로 풀어나가는 그게 이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반면 많이 아쉬운 점은 제작에 대한 노하우죠. 공예나 목조형을 전공하셨던 분들에 비해 그런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게 아쉽죠.

 

 

Q : 여태 해온 많은 작업 중에서 스스로 가장 아끼는 작업이 무엇인지, 얽힌 이야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A : 저는 가장 아끼는 게 스툴인데 최근 작품으로는 체스예요. 이거를 제일 아끼는 이유가 저랑 대학교 같은 과 동기 중 유리 공예 하는 친구랑 같이 협업을 한 작품이에요. 진로를 바꿨다는 면에서도 저랑 그런 게 닮은 게 좀 있는 친구죠. 통하는 것도 많아서 작업이 수월하고 즐겁게 진행할 수 있었고 작고 오밀조밀한 오브제를 처음 제대로 만들어본 거라서 애착이 확실히 강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작은 작업이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 같아요.


Q : 가구는 자동차와 같은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시일 내에 실물화 가능한 분야라 시작하게 되셨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앞으로 스툴처럼 작은 작업이 나오는 것도 맥락이 맞닿아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좀 더 작가님의 직접 손을 거치면서 제작을 할 수 있는 것도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도 같고요.

 

A : 그렇죠. 그리고 제 작업에 개인적인 평가를 하자면 제일 아쉬운 게 되게 매니아틱하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소비하기에 쉽지 않다고 해야 하나. 소비를 크게 바라는 건 아니지만 작을수록 대중적이니까 생각한 형태는 그대로 담는데 그 크기가 작아지면 이게 받아들이는 게 쉬워지더라고요. 그래서 또 작은 걸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균형 맞추는 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에요 사실은.


Q : 다양한 예술 분야에 열정이 느껴지는데 재료나 주제나 어떤 것이든 새로 시도하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A : 저는 컨셉을 만들고 스토리를 풀어내는 게 재미있고 작업은 작업대로 계속 이어가겠지만 오히려 시도해 보고 싶은 건 브랜드에요. 제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그런 이야기를 푸는 브랜드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외에도 POST ARCHIVE FACTION이라는 패션 브랜드를 제일 좋아하는데 저의 작업하고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쪽으로도 시도를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기도 하죠.

 

 

Part 2. 커리어, 조언

Q : 건축학과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가구, 인테리어 쪽으로 진로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님께서는 실물화할 수 있는 가구에 매력을 느껴서 이 분야를 선택하게 됐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회사에 다니거나 하지 않고 채범석이라는 이름으로 서 있기까지 과정, 선택의 이유가 궁금합니다.

 

A : 사실 저는 산업디자인과 출신이기 때문에 취업을 하는 게 당연한 루트였거든요. 하지만 제 생각에 자동차는 개성을 표현하기에는 약간 아쉽거든요. 저는 온전한 제 스타일이나 개성을 많이 담을 수 있는 작업을 찾다가 가구를 하게 됐어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건 어려운 과제이긴 한데 저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작가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뭐냐 물어보면 다들 본인을 되게 믿거든요. 본인의 능력을 평가를 명확하게 하고 스스로가 포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본인을 믿고 지금은 되게 안정적이지도 않고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일단은 믿고 가는 거죠. 저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A : 우선은 계속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하죠. 1차원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대부분은 거기서 끝나는 사람들이 되게 많아요. 거기서 끝나면 그냥 보통의 디자이너가 되는 것 같고 저도 뭐 대단한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그래도 노력을 계속하는 편이거든요. 또 한 가지는 작업을 일단은 뭐라도 계속 하는 거예요. 학생 때도 친구들하고 모여서 그 주 작업 할당량이 안 채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되게 답답하고 불안했거든요. 작업할 때 그런 노력들이 중요한 태도 같아요.


Q : 학교에서 가구를 만드는 수업도 몇 과목 없고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막막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하셨나요? 배우는 학생에서 본격적인 디자이너로 활동하기까지 어ᄄᅠᆫ 길을 걸어왔는지 질문드리고 싶어요.

 

A : 애초에 제가 학생이라고 생각으로 작업을 안 했어요. 독립적인 디자이너라고 생각으로 항상 작업을 했어요. 첫 작업을 한 것도 학생이었으니까요. 가구에 대한 과목도 몇 없고 과에서도 가구를 했던 사람들이 없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요. 아이디어랑 스케치만 가지고 있었고 만드는 방법도 몰랐고요. 저는 좀 미련하게 맨땅에 헤딩으로 을지로 가서 수소문하고 그렇게 만들었죠. 어느 업체에 맡겨야 하고 그런 제작 과정에 있어서 프로세스를 몰랐으니 막막함이 있었지만 디자인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느끼는 막막함은 전혀 없었어요. 디자인은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기 때문에 그냥 즐거웠어요.


Q : 일상에서 작업을 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 되세요?

 

A : 저는 프리랜서니까 잠은 충분히 자고 눈 뜨고 밥 먹고 나와서 작업실에 있다가 들어가서 쉬다가 자고 반복인 것 같아요. 직장인들이 직장 생활하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근데 저는 이제 직장인들이 일찍 일어나서 일찍 퇴근하는데 저는 이제 늦게 일어나서 집에 가는 그런 느낌이죠.


Q : 디자이너님이 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것을 바꾸고 싶은지, 혹은 절대 바꾸고 싶지 않은지 궁금합니다.

 

A : 저는 대학생 때 코로나 시기가 겹쳤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친구들 많이 만들 기회를 많이 놓쳤거든요. 그런 게 아쉽고, 반대로 바꾸고 싶지 않은 경험은 그 당시 친구들하고 공간을 빌려 작업을 했었는데 그 경험은 바꾸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함께하던 친구들도 되게 잘 됐고 저도 많이 성장했고요. 분야를 막론하고 어쨌든 디자인이라는 건 하나로 모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분야 상관없이 그때의 경험을 통해 시야가 많이 트였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경험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Q :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볼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마디를 부탁드립니다.

 

A : 하고 싶은 걸 찾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찾는 과정을 무조건 겪었으면 좋겠어요. 건축과를 나왔다 해서 건축가가 무조건 되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시기를 최대한 빨리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2024.01.24 · 읽는 시간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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