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 하루를 기대게 되는, 사유원

여기저기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고개만 돌리면 새로운 카페가 생겨나고.

우리를 둘러싼 공간들은 매일같이 빠르고 바쁘게 변화하고, 그러면서 도심에서 우리가 편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숨 쉴 공간들은 사라져간다.

어느새 부터 작은 공원조차 찾기 힘들어졌고, 어딜 가던 탁한 공기와 가로 막힌 시선이 우리를 밀어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던 중, 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 나를 마주하다, 내 안의 숲 사유원.

사유원’은 오랜 풍상을 이겨낸 나무와 마음을 빚은 석상, 아름다운 건축물이 함께하는 고요한 사색의 공간입니다.

단순한 수목원 관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원내를 거닐며 자아를 돌아보고 깊이 생각하게 하는, 진정한 ‘사유’의 정원입니다. “

기사의 전문은 기억나지 않지만, ‘숲’, ‘사유’, ‘아름다운 건축물’, ‘수목원’ 정도의 키워드는

지칠대로 지쳐버린 건축학도들에게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고,

학기를 마무리하고 너덜너덜해진 우리는 갈지말지 고민할 것도 없이 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경북 군위에 위치한 ‘사유원’, (경북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 여기에 가는 법이 친절히 소개되어있다.)

부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다행히 차를 타고 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할 수 있었다.

같이 갔던 일행들 모두 건축에 진심이라, 모든 건축물과 공간 다 보고 오자는 생각으로
우린 오픈시간에 맞추어 출발했고, 10시 20분부터 ‘사유’의 여정에 오르게 되었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코르텐강판으로 된 팻말이 사유원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차량을 주차하고나면 치허문을 마주하게 되는데, 안내원분이 물 한병과 지도, GPS가 달린 목걸이를 주신다.

10만평 정도가 되는 넓은 대지에 무성하게 조성된 자연 앞에서 길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배려인 것이다.

치허문을 통과하면, 마찬가지로 코르텐강으로 만들어진 계단으로 진입하게 된다.

일직선으로 단순히 쭉 배열한 것이 아닌 엇갈려 배열된 계단

일직선으로 쭉 배열된 계단이라면 너무 높고 길게만 느껴질 것 같은데,

좌우로 엇갈려보이는 것이 계단을 시각적으로 나누어서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었다.

또한, 치허문을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면, 살짝 축을 틀어 옆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이 덕분에 계단의 끝에 다음 장소가 보이지 않고 고개를 돌려 사유의 길에 진입하게 된다.

시각적으로 계단 다음 공간을 아래에서는 안보이게 한 것이다.

치허문에서 이어지는 산책로

계단 끝에서 들어서게 되는 산책로의 초입에서는 끝을 알 수 없는 산길이 쭉 이어진다.

처음에는 “와, 자연 너무 오랜만이라 좋아~” 하다가도, 더운 날씨에 의지가 한 풀 꺾였다.

처음 들어선 산책로는 정말 등산로와 같은 느낌

그렇게 쭈욱 산책로를 걷다 보면, 일종의 속세와 차단되어 자연에 빠지게 되고

첫 작품을 발견하게 된다.

알바로 시자의 ‘소대’

구름이 잔뜩 껴 있었지만, 시자의 기울어진 ‘소대’는 멀리서도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소대 진입로

길 따라 걷다보면, 소대의 입구로 향하는 진입로에 도달한다.

기울어진 옆모습과는 달리 전망하는 3개의 구멍을 가진 전면은 우뚝 솟아있다.

소대 앞에 놓여진 돌들은 잔돌이 많은 평야, ‘세석평전’을 이루고 있다.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면, 돌들이 모여 있는 세석평전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 모여있는 잔돌들 뒤로 우뚝 서 있는 소대가 다른 재료임에도 어우러져 보인다.

네모 반듯한 파사드와 코너를 파낸듯한 3개의 전망구멍
작아보이던 구멍이 실제론 이정도의 스케일감을 가진다.

구멍이 뚫린 면의 뒷편으로 돌아가면, 왼쪽 코너에 첫 번째 사진과 같은 입구가 나온다.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두 번째 사진에서 보이는 계단이 시작된다.

이러한 계단은 “4~5단 + 계단참”이 계속 반복되며 돌아올라가게 되고,
창문도 하나 없이 조명과 소리에 의존하며 계속해서 걷게 된다.

처음엔 바깥에서 시작했지만, 계단을 올라갈수록 마치 동굴을 탐험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계속해서 돌아 올라가다 보니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계단의 끝에서부터 울려서 내려오는 소리와
기울어진 벽에 붙어있는 조명에서 나오는 따뜻한 빛에 집중하게 되고

도대체 그 끝엔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소대에서 보이는 다음 작품 ‘소요헌’

첫 번째 창이 나온다.

단순히 벽에 뚫어 만든 것이 아닌, 코너를 찢어서 만들어낸 창은

단순히 직사각형의 창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담고, 두 방향을 동시에 전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창이 한 쪽 벽에 있었다면, 그 벽면에서 보이는 뷰만 감상할 수 있었겠지만,

ㄱ자로 잘라낸 창 덕분에 두 면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것이다.

소대에서 바라본 ‘소요헌’

알바로 시자의 두 번째 작품인 ‘소요헌’이 숲에 둘러쌓인 채 고개를 쭉 내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대의 꼭대기에 있는 마지막 창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서 ‘사유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또한, ‘소대’는 한자 뜻을 풀이해보면 새집 ‘소’ + 대 ‘대’ 를 합쳐 ‘소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름하여, ‘새둥지전망대’ 인데, 그 이름에 맞게 전망대의 기능과 새집의 기능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소대의 천장에 붙어있는 새집과 자유롭게 드나드는 제비

사유원에 들어와서 첫 사유의 장소인 소대에서 주변경치를 바라보며 바람을 맞다 보면,

정말로 바깥세상에서의 복잡함과 고민들을 잊고 어느새 자연에 푹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멋진 건축물과 사유원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푼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내려갔고,
전망대에서 보았던 ‘소요헌’으로 향했다.

코르텐강 기둥에 표시된 기둥번호와 비상호출벨

공간과 공간 사이를 잇는 길목들에는 항상 사진과 같은 코르텐강 기둥이 있었다.

비상호출벨과 함께 기둥번호가 적혀있는데, 넓은 부지에 대한 응급상황을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센스가 돋보였다.

다시 한 번 자연에 몸을 맡겨 나무가 내는 소리들을 들으며 가다보면,

울창한 숲 너머로 조금씩 존재감이 드러나는 ‘소요헌’을 만날 수 있다.

경사진 진입로 덕분에 처음에는 마치 내 눈높이에 뭔가가 있는 듯 보이지만,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지붕이다.

그 무언가는 사실 소요헌의 ‘지붕’이다.

진입하기까지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파사드와 진입로 조차에서도 내부공간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소대’에서 보고 왔기 때문에 더더욱 내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는 고조되었다.

경사를 다 올라오고 나면, 내 키보다 낮아 보였던 공간이 알고 보니 내 키의 두, 세 배가 넘는 벽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부로 진입하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날카로운 선으로 이어진 두 벽이 좌우로 강하게 나눠진다.

두 갈래 길의 왼쪽 편에서는 ‘죽음의 공간’, 오른쪽 편에서는 ‘삶의 공간’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죽음의 공간으로 향하는 길.

우측의 ‘삶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어두운 두 갈래의 길 너머로 숨겨져 있던 중정.

멋진 중정이 나오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앉아서 나름의 ‘사유’를 자연 속에서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삶의 공간’에 도달하면, ‘삶’을 표현하는 오브제가 등장하는데
언젠가 방문할 지 모를 이들의 호기심을 위해 보여주진 않겠다.

‘죽음의 공간’과 ‘삶의 공간’ 너머에는 다시 한 번 ‘사유원’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오는데,

뒤로 후퇴한 머리 위의 벽이 파노라마 뷰를 위한 프레임을 만들어 준다.

역시나 말할 것도 없이 시원하고 아름다운 경관이 담겨있다.

저 멀리 지나왔던 소대도 보이는데,
‘소대’와 ‘소요헌’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채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소대

그리고, 별 것 아닐 수 있는 사소한 디테일들이 건축물의 완성도를 높여준다고 생각되었는데,

바닥청소를 위한 수도꼭지나 벽에 고정되는 난간이 한 번 꼬이는 등의 디테일이 그러했다.

또한, 소요헌에서도 새가 둥지를 틀고 아기를 키울 수 있게
배려하여 파여있는 벽이라든지, 천장을 올려다보면 둥지가 있다든지, 자연과 공존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알바로 시자의 두 건축물, 소대와 소요헌으로 이미 사유원에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또 다른 감동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한 번 지도를 보며 산길을 산책하다보면, 커다란 벽에 가로막히는 순간이 온다.

벽 앞에는 우리를 반겨주는 두 동상이 있고, 동상의 인사를 받으며 왼쪽으로 향하게 되면

높이 솟아있는 벽이 시선을 막고 동선을 유도한다.

건축가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높은 벽들이 등장하고,
그 길의 끝에서는 다시 한번 왼쪽으로 고개를 틀게 된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니’ 하는 생각 밖에 안든다.

고개를 틀면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할 말을 잃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라는 생각과 함께 지상낙원, 무릉도원, 등의 내가 알고 있는 공간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찾고 있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코르텐강판들이 자연스레 대지와 어우러져 등고를 수정해준다.
300년 된 모과나무

‘풍설기천년’, 300년 이상된 모과나무 108그루가 심어져있는 곳.

살아 생전에 감히 경험할 수 없을 300년이라는 세월이 주는 나무의 무게.

자연의 시간에 마음이 괜히 겸허해지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장소였다.

다양한 식생들이 자연스럽게 심어져있어, 아무도 인공적으로 가꾼 곳이라 생각 못할 것이다.
코르텐강으로 된 의자는 흙빛과도 같아 자연과 조화로웠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 여기 저기 자유롭게 자연을 만끽하며 누비다보면

자연스럽게 경사를 따라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되고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언덕에 도달하게 된다.

‘별유동천’, 배롱나무뜰.

배롱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배롱나무 둘래 사이에는 들꽃들이 잔뜩 펴 있는 뜰이 있다.

‘별유동천’이라 하면, ‘다른 세상이다’, ‘별천지가 있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데,

정말 ‘한국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정말 다른 아름다운 곳이구나’ 하는 감상이 드는 곳이었다.

이 곳에선 영화’쿵푸팬더’의 ‘시푸사부’가 생각나는 동상과 함께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고,

저 멀리 우리가 열심히 누비고 다녔던 풍설기천년의 모과나무밭이 보였다.

언덕의 잔디밭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 맡아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 가도, 자연에 훌훌 털어버리기도 하며

사유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사유의 여정을 이어가다 보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들에 도달하기 까지 여러 장소들을 거치게 된다.

새들의 수도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조사’도 그 중 하나이다.

언제든 새들이 와서 쉬기도 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곳은
저 멀리서도 계속해서 눈에 들어와서 방문객들에게 길잡이 역할도 해줄 수 있는 것 같았다.

자연과 참 잘 어우러진 건축이다.

조사 곁에 있는 ‘사담’도 지나,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알바로 시자의 세 번째 건물, ‘내심낙원’도 어렴풋이 보인다.

쭉 걸어서 ‘사유원’의 가장 높은 레벨까지 올라가면,

‘최욱’ 건축가의 ‘가가빈빈’을 만나게 된다.

연못뷰와 실외공연장을 가진 카페인 ‘가가빈빈’은 내부 공간에서 레벨을 다루는 것이 참 재미있다.

3단 정도 아래로 내려오게 된다.

카페 내부에 진입하면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조금 높은 3단을 내려오게 되는데,
50~60cm 정도로 체감되는 단차는 카페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보았을 때

눈높이를 낮춰주고, 밖에 심어져 있는 식물들과 눈높이가 어느 정도 맞아진다.

음료 너머로 보이는 눈높이에 있는 땅

좀 더 자연 아래로 들어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가가빈빈’까지 도달하면서 지친 발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 근처에 있었는데,
혹시 누군가 방문하게 된다면 주저 않고 꼭 경험했으면 좋겠다.

일행들은 먼저 경험하고 있었고, 사진을 찍으며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다들 후회할 거라는 말에 시원하게 벗어던진 신발은
‘사유원’에서의 또 하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피로가 풀린 두 다리를 이끌고 남은 장소들도 모두 잘 경험할 수 있었다.

‘가가빈빈’ 근처에 위치한 ‘명정.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명정’은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다.

역시나 내부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벽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아주 긴 계단을 만나게 된다.

진입 후 마주할 수 있는 계단

계단 끝에서는 정말 자연, 물, 돌 등과 함께 고요히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왼쪽 벽면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물과 기둥 너머의 붉은 벽

긴 통로를 지나서 내려가다 보면 아름다운 수목원의 풍경도 잊게 되며 오로지 하늘만 보입니다. 눈 앞에는 물이 흐르는 망각의 바다가, 건너편에는 붉은 명부의 세계가 있습니다. 콘크리트 의자에 앉아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곤 이곳저곳에 있는 작은 성소들을 방문하며 한없이 묵상하는 곳입니다. 모든 묵상을 끝내고 좁은 통로로 올라오면 새로운 자연이 펼쳐집니다. 그 전에 보던 세상과 다르게 보이면 좋겠다는 것이 건축가의 뜻입니다. 그러니 이곳을 보시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스스로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건축가의 설명 없이 건물을 바라본 다음에 설명의 읽은 뒤 다시 바라보면,

두 번의 재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가만히 떨어지는 물방울을 지켜보며 마음을 비워보자.

물과 하늘만 가지고 명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 참 멋있었던 공간.

그 외에도 다양한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었다.
돌음계단으로만 갈 수 있는 건축가의 공간, 서비스공간을 위한 숨겨진 창 등

디테일한 공간들이 오히려 딱딱할 수 있는 건축에 위트를 불어넣어준다.

‘명정’에서 건축에 대해 고민도 해보고, ‘죽음’과 ‘삶’에 대한 고민까지 마치고 나면, 다시 한 번 멋진 풍경을 보며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명정’에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조금만 걸어나오면,
알바로 시자의 세 번째 건축물 ‘내심낙원’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 삼각, 사각기둥들의 조합이 하얗게 칠해진 채 숲속에 덩그러니 존재하지만,

어색할 것 없이 오히려 절제된 멋과 신성함이 느껴졌다.

김익진 선생의 카톨릭 번역서 <내심낙원>에서 가져온 이름.

넓은 공간은 아니었지만, 지나가며 마음을 경건하게 다듬기엔 충분했던 공간.

비종교인이라도 전혀 부담없이 공간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안에서 바라본 자연

우측 고측창에서만 들어오는 채광 때문에 굉장히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그 덕분에 바깥세상과 구분되어 마음을 돌아보고, 다시 나갈 땐 사진과 같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알바로 시자 답게 ‘시’처럼 느껴지는 건축이었다.

‘내심낙원’을 지나면, 드디어 ‘사유원’에서 가장 높은 곳.

‘첨단’에 도달할 수 있다.

어딘지 모르게 고대의 무언가 닮은 형상

‘첨단’에는 사실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이 곳은 ‘사유원’ 전체의 수원을 공급하는 물탱크이다.

물탱크만 덩그러니 놓여있으면, ‘어쩔 수 없었나보다’라고 생각이 들긴 했겠지만

오히려 그 조차도 멋진 공간으로 풀어내어 사유원의 마지막 전망대를 만들었다.

생각보다 스케일이 크다.

딱히 화려하고 건축적으로 엄청난 무언가는 없었지만,
첨단의 꼭대기에 도달했을 때는 ‘등산’을 마쳤을 때의 무언가를 느꼈다.

왠지 ‘야호’를 외쳐야만 할 거 같은 일종의 성취감이랄까.

‘첨단’까지 도달하고 나면, 이제는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점심도 안 먹고 올라온 거리를 다시 내려가야 한다.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의 여정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는 것.

치허문으로 돌아가기 전, 딱 한 공간이 더 남아있었다.

승효상 건축가의 ‘와사’이다.

‘오당’과 함께 조성된 ‘와사’

깨달음을 얻는 연못이라는 뜻은 가진 ‘오당’

5개의 크고 작은 연못들은 계곡의 낙차를 자연스럽게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당’을 이어주는 ‘와사’

벤치에 앉아서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새소리도 듣고.

‘명정’에서의 경험처럼 조용히 명상을 할 수도 있는 공간.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줄줄이 이어져 ‘오당’ 위를 지나다니게 도와준다.

자연을 좀 더 확실하게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역할

‘오당’의 ‘와사’까지 보고난 뒤에 드디어 우리의 여정은 끝을 향했고,
마지막 이 여정의 시작이 되어준 ‘치허문’을 위해 우리는 마지막 산책을 시작했다.

‘와사’에서 주차장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긴 했지만,

돌아가는 길의 아름다운 숲속은 모든 무더위와 피로감을 희석시키는 것만 같았다.

입장할 때 도대체 언제 첫 건물이 나올까 생각했던 것과, 나갈 때 출구까지 거리가 먼 것이

어쩌면 시끄럽고 정신없는 세상에서의 시간을 자연에서의 시간으로 맞추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그늘과 뜨겁지만 반가운 햇살을 맞으며 하행했다.
올라올 때와 같은 계단이지만, 내려갈 땐 코르텐강이 안보인다.

올라갈 때와 같은 계단으로 내려가니 정말 꿈 속을 향했다 빠져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사유원’, 무한한 사유를 가능케 하는 아름다운 공간.

누구에게는 한국 최초의 건축테마파크이며, 누구에게는 아름다운 자연 식목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누구든 이 장소에 방문한다면,
그 간의 고민은 ‘사유원’에 두고,
‘풍설기천년’의 사계절이 궁금해질 것이고
‘삶’과 ‘죽음’에 대한 충분한 고민을 해볼 수 있을 것이며,
‘자연’과 공존하는 ‘건축’은 어떠해야하는지,
‘자연’을 존중하는 ‘개발’은 어떠해야하는지,

. . .

새로운 질문들을 가지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