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정취를 따라서 : 교수님과 함께하는 경북 전통 건축 답사
지난 3월, 학교에서 전통 건축 파빌리온 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교수님들과 함께 경북지역으로 전통 건축물 답사를 다녀올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답사를 진행하며 교수님과 나눴던 이야기들, 저의 감정들을 토대로 답사기를 써 내려가려 합니다.

저의 전통 건축물 답사는 영주에 있는 ‘부석사’로 시작했습니다. 항상 교수님들께서 ‘부석사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은 공간을 다룬다고 말할 수 없다’라며 강조하실 정도로 전통 건축물 중 손에 꼽히는 건축물입니다. 부석사는 676년에 창건하여 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절로,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할 때 의상을 사모하던 여인 선묘가 도적 떼들로부터 이를 지키기 위해 큰 바윗돌이 되어 도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담겨 있습니다. 실제로 부석사의 무량수전 뒤에 뜬 돌이 있어 ‘뜰 부’, ‘돌 석’ 자를 써 ‘부석사’로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부석사는 자연을 따라 경사지에 지어졌습니다. 사방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부석사가 위치한 봉황산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형상으로, 우리의 전통 건축이 얼마나 자연 그대로를 잘 활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건축물의 배치 축 또한 그저 일자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틀어진 축을 이용하였습니다. 범종각부터 천왕문의 축은 앞 소백산을 넘어서까지 이어지고, 여기서 30도 각으로 틀어 안양문과 무량수전의 배치 축을 구성하여 산의 지형에 틀어지지 않게 조화가 되도록 건물을 배치하였습니다. 이는 ‘미륵정토’와 ‘미타정토’를 의미하여 불교의 두 이념을 함께 나타냈습니다.
계속되는 경사 덕에 오를수록 나타나는 공간의 변화와 올려다보는 시각을 중요시하여 설계된 건축물이기에 교수님께서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앞에 있는 건축물에 시선을 고정하며 공간이 주는 느낌에 집중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일주문을 지나고, 회전문을 지나 계속 오르다 안양루 앞에서부터 무량수전에 시선을 고정하여 안양루를 지났을 때, 계단을 오를수록 점점 모습을 드러내며 밝아지는 무량수전은 감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는 부석사의 중심 법당으로, ‘무량수’는 태어남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옆면이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웅장한 느낌을 줌과 동시에 전체적으로 간결한 인상을 남깁니다. 특히 일자로 생긴 기둥을 멀리서 보았을 때 안쪽으로 굽어 보이는 착시를 방지하기 위해 중간이 두껍고 아래와 위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지는 ‘배흘림기둥’을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화려한 장식 없는 이 사찰은 전통 건축 본연의 담백한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무량수전을 등지고 뒤로 돌아보면, 계속해서 경사를 오르며 흘렸던 땀이 모두 이것 때문이었구나 싶을 정도로 탁 트인 산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과거 선조들이 중요시하던, 경치를 빌려온다는 의미의 차경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산맥의 풍경이 곧 부석사의 마당이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는 부석사의 고즈넉함과 올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 덕에 부석사는 수십 번을 와보아도 공간이 주는 느낌은 항상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계절뿐만 아니라 날씨의 요소 하나하나로 인해 매번 달라질 산맥, 곧 마당의 풍경을 한 번쯤은 부석사에 머무르며 느껴보고 싶어지도록 만듭니다.
부석사
위치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입장료 어른 2,000원 / 중고등학생 1,500원 / 초등학생 1,000원

부석사에서 차량으로 약 한 시간 정도 이동하여 안동에 위치한 봉정사로 향했습니다. 봉정사는 그렇게 큰 사찰은 아니지만, 봉정사의 ‘극락전’이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로 알려져 건축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는 건축물입니다. 과거 봉황이 머물렀다는 의미로 봉황새 봉, 머무를 정을 따 봉정사가 창건되었습니다. 전 부석사는 높은 경사 위에 있어 탁 트인 경치가 일품이었다면, 봉정사는 자연에 묻혀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봉정사의 시작을 알리는 일주문을 지나 세월이 담겨 있는 소나무 그늘과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사방이 트이면서 만세루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만세루를 지나면,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건축물들 사이로 대웅전이 위치해있습니다. 대웅전은 다른 불전과는 조금 다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건물 앞쪽에 툇마루와 난간을 설치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사찰 건축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예로 대웅전만의 특징입니다.

‘극락전’은 앞서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같이 한국의 최고 목조 건축물입니다. 두 개의 건축물 모두 전형적인 고려 후기 목조건물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극락전 또한 무량수전처럼 배흘림기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넓고 경건한 분위기로 대웅전 앞마당을 엄숙한 마당이라 칭한다면, 극락전은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극락전 앞마당은 정겨운 느낌을 줍니다.

봉정사에서 동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고택 느낌의 ‘영산암’을 볼 수 있습니다. ‘ㅁ’자 형태로 이루어져 건축물과 정원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서면 웅진전, 삼성각, 송암당, 관심당이 위치해 있으며 건축물로 둘러싸여 자칫하면 폐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을 일부 건축물의 벽을 걷어내어 마루 형식으로 만들어 기둥 건너로 자연이 보이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웅진전의 툇마루에 앉아 공간 사이사이로 보이는 자연을 배경삼던 안마당을 바라보며 느꼈던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는 자연과 하나가 된 것 같았습니다.
봉정사
위치 경북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운영시간 하절기 매일 07:00 – 19:00 / 동절기 매일 08:00 – 18:00
입장료 성인 2,000원 / 청소년 1,300원 / 어린이 600원
사이트 http://www.bongjeongsa.org/

마지막으로, 안동에서 조금 더 내려가 하회마을 언저리에 있는 ‘병산서원’에 방문하였습니다. 병산 앞으로 펼쳐진 밭과 낙동강의 풍경을 보며 쭉 걷다 보면 정돈된 정원 사이로 병산서원 내부로 들어가는 길이 쭉 뻗어 있습니다.

병산서원으로 들어서는 길에서부터 이유 모를 편안함과 이곳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습니다. 입구로 들어서 바로 보이는 ‘만대루’에서는 가공 없이 그대로 기둥으로 세워져 있는 휜 나무, 다듬지 않은 돌로 이루어진 주춧돌, 거대한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으로 이루어져 기둥 사이론 차경을 보여줍니다. 특별한 건축 양식도 없고, 화려함도 없지만 이러한 재료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투박함이 산의 풍경과 어우러진 것이 어쩌면 더 안정감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산을 향한 방향으로는 마루를 만들어 그곳에 앉아 병풍처럼 펼쳐진 풍경에 더욱 빠져들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곳곳에 크게 뚫린 창과 넓게 펼쳐진 마루는 과거 선조들이 중요시했던 차경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더 와닿게 해주었습니다. 가만히 마루에 앉아 자연과 어우러진 전통 건축물들을 바라보며 느끼던 그때의 공기는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병산서원
위치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길 386
입장료 무료
글을 마치며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전통 건축물을 둘러보고, 안동에 위치한 고택에 머무르며 전통 건축 답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서울의 도시 풍경 사이에서 보던 전통 건축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으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맞춘 전통 건축의 뛰어남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좋다고 생각되는 공간이 있다면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를 찾아내라’라고 항상 말씀해주셨습니다. 저에게는 세 공간 중 ‘병산서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 그 이유는 아마 ‘창과 창을 거쳐 느껴지던 자연의 투박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꼭 전통 건축물 답사를 위함이 아니더라도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느끼고 싶을 때, 휴식이 필요할 때라도 방문하면 모든 걸 잊은 채 전통 건축만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연 속 사색이 필요할 때, 일상 속 여유로움이 필요할 때에는 전통 속으로 떠나보시길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