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도 방학 가이드 ②: 고학년, 뭘 남기면 좋을까?

INTRO

저학년 때의 방학이 건축을 더 많이 보고, 읽고, 경험해보는 시간이었다면, 고학년의 방학은 조금 다른 무게로 다가옵니다. 한 학기가 끝났다는 후련함도 있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함께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포트폴리오, 공모전, 인턴, 졸업설계, 진로 고민이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게 되면서, 방학이 끝났을 때 무언가 하나쯤은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도 생기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작업을 돌아보며 다음 방향을 정리하는 시간

 

이번 아티클에서는 고학년 건축학도가 방학 동안 해보면 좋을 활동들을 포트폴리오, 공모전, 인턴, 심화 강의, 졸업설계와 진로 정리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모든 것을 다 해내야 한다는 부담보다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한두 가지를 선택해보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1. 지난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로 정리하기

고학년이라면 방학 동안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일은 지난 설계 프로젝트를 포트폴리오로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꼭 당장 인턴이나 취업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포트폴리오를 미리 만들어보는 과정 자체가 큰 도움이 됩니다. 학기 중에는 마감에 쫓겨 결과물을 제출하는 데 집중했다면, 방학에는 그 작업을 다시 보면서 프로젝트의 의도와 흐름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강점과 방향을 점검하는 포트폴리오 정리

 

포트폴리오를 만들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어떤 프로젝트가 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지, 어떤 작업은 이미지가 부족한지, 설명문이 약한지, 다이어그램이 부족한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프로젝트를 나란히 놓고 보면 본인이 반복해서 다루는 관심사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거, 도시, 환경, 구조, 공공성, 리노베이션, 기술, 재료 등 자신이 어떤 주제에 자주 끌렸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방학 동안 포트폴리오를 완벽하게 완성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최종 취업용 포트폴리오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부담이 커질 수 있습니다. 대신 “지난 프로젝트를 보여줄 수 있는 상태로 정리한다”는 정도의 목표를 잡아도 충분합니다. 프로젝트별로 대표 이미지, 컨셉 다이어그램, 주요 도면, 모형 사진, 설명문을 정리해보는 것만으로도 다음 단계가 훨씬 선명해집니다.

 

특히 다음 겨울방학이나 졸업 이후 인턴, 취업, 유학 등을 고민하고 있다면 미리 포트폴리오의 큰 틀을 잡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일부 설계사무소는 졸업작품 전시 직후 채용 공고를 내기도 하고, 인턴 공고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열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급하게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보다는, 방학 동안 기본 구조를 만들어두면 훨씬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할 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면 좋습니다.

● 이 프로젝트의 핵심 질문은 무엇이었는가?

● 이 작업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 이미지는 무엇인가?

● 컨셉, 프로그램, 사이트, 구조, 동선 중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가?

● 도면과 다이어그램만 보아도 프로젝트가 이해되는가?

●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봤을 때 나의 관심사가 드러나는가?

 

2. 공모전으로 관심 주제 확장하기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 보면 아쉬운 부분이 보일 수 있습니다. 학기 프로젝트 수가 부족하거나, 본인의 관심사와 개성을 더 분명하게 보여줄 만한 작업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방학 기간을 활용해 공모전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포트폴리오의 빈틈을 채워가는 공모전

 

공모전은 단순히 수상을 위한 활동이라기보다, 학교 스튜디오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주제를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 주거에 관심이 많았다면 새로운 주거 유형을, 도시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특정 지역의 재생이나 공공공간을, 기술과 미래 인프라에 관심이 있다면 드론, 모빌리티, 기후 대응, 모듈러 건축 같은 주제를 다뤄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명한 공모전이니까 나간다”보다, 나의 관심사를 더 밀도 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공모전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국내 공모전과 국제 공모전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국내 공모전은 실제 사이트나 지역 문제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아 현실적인 설계 조건을 다루기 좋습니다. 반면 국제 공모전은 주제는 정해져 있지만 사이트 선정이 자유롭거나, 개념적인 제안에 더 열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 유학이나 해외 취업을 고민하고 있다면 영어 패널과 국제적인 표현 방식을 연습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 공모전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BUILDNER, Kaira Looro, YAC, TerraViva 등은 비교적 잘 알려진 국제 공모전 플랫폼입니다. 공모전을 고를 때는 주제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목록을 확인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관심 있는 사무소의 디렉터나 건축가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면, 그 공모전이 어떤 방향의 작업을 기대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국제 공모전 플랫폼

 

다만 공모전을 선택할 때는 욕심을 조절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방학 기간은 생각보다 짧기 때문에, 너무 큰 규모의 공모전을 무리하게 시작하면 오히려 지칠 수 있습니다. 팀으로 참여할지, 개인으로 참여할지, 최종 결과물을 포트폴리오에 넣을 수 있을지, 마감까지 실제로 작업이 가능한지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공모전을 고를 때는 다음 기준을 참고해보면 좋습니다.

● 내 관심사와 연결되는 주제인가?

● 기존 학기 프로젝트를 발전시킬 수 있는가?

● 포트폴리오에 새로운 성격의 작업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 마감까지 현실적으로 완성 가능한 규모인가?

● 팀 작업이라면 역할 분담이 명확한가?

● 결과적으로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남는 작업이 될 수 있는가?

 

3. 인턴으로 실무 경험하기

방학은 인턴을 경험하기에도 좋은 시기입니다. 3개월 이상 장기 인턴을 모집하는 사무소의 경우 휴학 기간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방학 동안 1~2개월 단기 인턴을 모집하는 사무소들도 찾아보면 있습니다. 월간 SPACE의 JOB 게시판이나 각 설계사무소의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학교 학과 공지, 교수님 추천 등을 통해 공고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실무의 흐름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인턴

 

인턴은 단순히 이력서에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한 경험만은 아닙니다. 실제 사무소에서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도면과 모델링은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요구하는지, 회의와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학교에서는 주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작업하지만, 실무에서는 여러 사람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함께 완성해갑니다. 이 차이를 경험해보는 것만으로도 건축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인턴은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지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대형 사무소, 중소형 사무소, 아틀리에, 인테리어 스튜디오, 도시·리서치 기반 사무소는 각각 일하는 방식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막연히 좋아 보이던 곳도, 실제로는 나와 맞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인턴을 지원하기 전에는 포트폴리오를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업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면 정리, 모델링, 렌더링, 다이어그램, 리서치, 모형 제작 등 본인이 어떤 부분에 강점이 있는지 드러나면 좋습니다. 아직 작업 수가 많지 않더라도, 프로젝트의 과정과 사고가 잘 보이면 충분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인턴을 찾을 때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 월간 SPACE JOB 게시판 확인하기

● 관심 있는 설계사무소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확인하기

● 학교 학과 공지와 교수님 추천 공고 확인하기

● 선배들이 다녀온 사무소 정보를 물어보기

● 지원 전 사무소의 작업 성향과 포트폴리오 톤 비교해보기

 

4. 심화 강의로 나만의 무기 만들기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다 보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델링은 빠르지만 다이어그램이 약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컨셉은 좋은데 패널 구성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렌더링이나 이미지 메이킹은 강하지만 도면 정리와 설명문 작성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방학은 이런 부분을 차분히 보완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고학년의 강의 선택은 저학년 때와 조금 달라야 합니다. 저학년 때는 기본 툴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다면, 고학년은 자신의 작업을 더 강하게 만들어줄 무기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프로그램을 넓게 배우기보다, 내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이미 강한 부분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방식이 좋습니다.

 

설계를 더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툴 공부

 

예를 들어 형태 실험이나 파라메트릭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Rhino와 Grasshopper를 조금 더 깊게 공부해볼 수 있습니다. 도시 분석이나 리서치 기반 설계에 관심이 있다면 GIS, 매핑, 데이터 시각화 관련 툴을 익혀볼 수도 있습니다. 이미지와 분위기 표현이 약하다고 느낀다면 Photoshop, 렌더링, AI 이미지 활용, 콜라주 강의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 완성도가 아쉽다면 InDesign, 편집 디자인, 글쓰기 강의를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고학년에게 추천하는 심화 학습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 포트폴리오 편집: 프로젝트별 흐름, 페이지 구성, 이미지와 텍스트의 위계 정리

● 고급 모델링: Rhino, Grasshopper, SubD,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등

● 이미지 메이킹: 렌더링, 콜라주, 후작업, AI 이미지 활용

● 다이어그램 표현: 컨셉, 프로그램, 동선, 구조, 환경 전략을 시각화하는 방법

● 도시 분석과 매핑: 사이트 리서치, 데이터 시각화, GIS 기초

 

5. 졸업설계와 진로 방향 정리하기

고학년이라면 방학 동안 졸업설계와 진로 방향을 천천히 정리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특히 내년에 졸업설계를 앞두고 있다면, 이번 방학은 본격적인 주제를 정하기 전 여러 가능성을 탐색해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다양한 설계 방향을 마주하는 졸업전시

 

7월은 여러 대학교의 졸업전시가 열리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된다면 타 학교의 졸업전시를 직접 보러 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졸업전시는 단순히 좋은 패널을 구경하는 자리가 아니라, 동시대 건축학과 학생들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리서치와 설계를 풀어내는지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패널 구성뿐만 아니라 모형의 재료, 표현 방식, 도면의 밀도, 전시 동선까지 함께 보면 직접적인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 학교의 작업을 보다 보면 자신이 다루고 싶은 주제와 피하고 싶은 방향이 조금씩 선명해집니다.

 

졸업설계를 준비할 때는 거창한 주제를 억지로 찾기보다, 지금까지 내가 반복해서 관심을 가져온 것들을 정리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지난 프로젝트에서 자주 다룬 사이트, 프로그램, 사용자, 사회적 이슈, 공간 유형을 돌아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졸업설계는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기보다, 그동안 해온 고민들을 조금 더 밀도 있게 확장하는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진로 역시 방학 동안 한 번쯤 정리해보면 좋습니다. 설계사무소 취업, 대학원, 유학, 공공기관, 도시·리서치 분야, 인테리어, 전시, 브랜딩, 콘텐츠 등 건축 전공 이후의 방향은 생각보다 다양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 하나로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방향이 궁금한지, 어떤 분야는 나와 맞지 않는지 조금씩 확인해보는 것만으로도 다음 선택이 쉬워질 수 있습니다.

 

OUTRO

방학은 무엇보다 회복의 시간

 

고학년의 방학은 저학년 때보다 조금 더 책임감 있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할 것 같고, 공모전도 나가야 할 것 같고, 인턴도 해야 할 것 같고, 졸업설계도 미리 고민해야 할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해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번 방학이 끝났을 때 나에게 무엇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가입니다. 정리된 포트폴리오 초안일 수도 있고, 공모전 하나의 결과물일 수도 있고, 인턴 경험일 수도 있습니다.

 

방학은 다음 학기를 버티기 위한 회복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너무 무리해서 모든 계획을 채우기보다는, 충분히 쉬면서도 나에게 필요한 한두 가지를 선택해 천천히 쌓아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