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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사보아. 사실은 철거될 뻔 했던 뒷 이야기

빌라 사보아. 사실은 철거될 뻔 했던 뒷 이야기

빌라 사보아는 20세기 근대 건축의 명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집이라고 할 수 없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를 대표하는 모델 하우스일 뿐이다. 빌라 사보아가 좋은 건축(Architecture)일 순 있지만 좋은 건물(building)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비가 오면 누수에 시달리고, 단열 문제로 인해 습기와 곰팡이에 시달리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 도저히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빌라 사보아는 어떻게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을까?

 사보아 씨가 입주한 1931년부터 9년간 빌라 사보아의 열악한 거주환경은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 사보아 씨는 습기, 곰팡이, 추위와 같은 문제와 관련하여 르 코르뷔지에와 편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다 자녀가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는데 사보아 씨는 그 원인이 빌라 사보아의 탓이라고 생각하여 르 코르뷔지에를 고소하게 된다. 그러나 1939년,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재판은 흐지부지된다. 

전쟁으로 사보아 씨가 떠난 빌라 사보아는 독일군과 미군이 사용하면서 상당 부분 훼손이 되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사보아 씨가 목격한 빌라 사보아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폐가였다. 그렇게 사보아 씨는 별도의 보수 공사 없이 그대로 빌라 사보아를 버려두고 떠났다. 폐가 수준에서 10년 넘게 방치된 빌라 사보아를 푸아시 마을이 소유권을 갖게 되고, 대대적인 보수 후 마을 청소년 센터로 사용한다. 이마저도 몇 년 지나지 않아 학교가 부족했던 푸아시 마을은 빌라 사보아를 철거하고 학교를 짓기로 결정한다. 이때 프랑스 건축계가 철거 반대를 주장하며 철거 계획을 백지화하였고 1963년 건축가 장 드뷔손이 공공 의뢰로 복원했다. 그렇게 깔끔해진 빌라 사보아는 1935년 프랑스 역사유적에 등록되었다. 1985년 건축가 장 두이 베레트에 의해 12년에 걸쳐 두 번째 복구가 완료되었고 2016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빌라 사보아의 역사는 완공된 1931년을 기준으로 근 100년을 내다보고 있지만 정작 사람이 거주하는 집으로 사용된 기간은 고작 9년이다. 그마저도 겨울에 난방 문제로 집을 비웠던 기간을 고려하면 9년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빌라 사보아는 사람을 위한 건축이 아니라 건축을 위한 건축이었다. 기본적으로 살 수 없는 집, 죽은 집은 그렇게 박제되어 꾸준히 수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 집에 담긴 ‘근대건축의 5원칙’의 건축적 가치와 역사적 파급력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단열만 놓고 빌라 사보아라는 계획안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건물은 명백히 사람이 살기 위해 설계되었다. 그리고 살지 못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기능주의를 표방한 모더니스트의 대표적인 거장이다. 건축 학교에 입학하면 현대 건축의 초석을 다진 가장 중요한 인물로 배운다. 마찬가지로 빌라 사보아 또한 그의 전설적인 역작 중 하나로 주택 설계 프로젝트를 위한 선례조사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러나 르 코르뷔지에가 주장한 기능주의는 사실 기계미학, 기능주의 미학에 가깝다. 그의 책 ‘건축을 향하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는 증기선, 비행기, 자동차 등에 매료되었고 새로운 정신, 모더니티를 표상하기 위해 근대산업의 도상학적 상징에 상당부분 의지했다. 때문에 빌라 사보아의 난간와 떠 있는 매스가 증기선을 연상시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에겐 무엇이 중요했을까? 모더니티의 건축적 표상? 미학? 아니면 사보아 씨의 삶? 빌라 사보아는 누구를 위한 건축일까? 빌라 사보아의 명성 속에 감춰진 이면을 들여다보며 우린 어떤 건축을 지향해야 하나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