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유휴공간’란 무엇일까? 유휴공간이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능이 상실되어 사용되지 않고 버려진 공간을 의미한다. 대도시든지 소규모 농촌이든지 어느 지역에서나 유휴공간의 발생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산업의 변화, 기관의 이전, 도시 환경의 변화 등 다양한 원인에 기인한다. 각 지역은 유휴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계속하고 있다.
유휴공간을 재생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노력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산업 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이 있다. 1970~80대 경제발전을 이루었던 1차 산업시설 중 수명을 다한 공간을 재생하는 사업이다. ‘문화재생 사업’은 기존의 건물을 부수고 신축하는 ‘재건축’이나 시설 개보수(리노베이션)와 다르다. 문화재생 사업의 목적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활동이 정지된 유휴공간을 지역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적 재생을 통해 지역만의 고유한 특성이 담긴 장소로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
전주 팔복예술공장은 역사・문화적인 장소성을 잘 담아내고, 시민참여형 복합문화 공간으로써 문화재생 산업의 성공사례이다. 팔복예술공장이 담고 있는 의미와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팔복예술공장은 25년간 문이 닫혀있던 카세트 공장을 리모델링하여 새롭게 탄생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이 공간은 30년 전까지만 해도 카세트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한때는 500명에 가까운 근로자가 일했던 제법 규모가 큰 공장이었다. 그러나 점차 디지털 산업이 발달하면서 카세트 테이프 생산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결국 공장은 문을 닫았고 수십 년간 방치된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방치된 공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하는 ‘산업 단지 및 폐산업 시설 문화 재생 사업’을 통해 지금의 팔복예술공장으로 재탄생하였다.
팔복예술공장은 기억을 재생하고 문화적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성공적인 사례이다. 그렇기에 팔북예술공장은 전주를 대표하는 문화재생사업으로 거듭났다. 이 공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기억의 재생’과 ‘문화의 재생’의 관점으로 소개하겠다.
공간구성

팔복예술공장은 A동과 B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A동에는 창작스튜디오와 전시장, 팔복아카이브, 커피숍, 옥상놀이터 등이 있고, B동에는 예술놀이터, 다목적 공간, 야외광장, 이팝나무 그림책 도서관 등의 공간이 있다.
관람 요소1 – 기억의 재생
팔복예술공장은 전주의 산업단지 역사와 썬전자 공장(현 쏘렉스)의 역사를 기억한다. 이러한 역사는 곳곳에 다양한 방법으로 저장되고 있다. 숨어 있는 ‘기억’을 중점으로 팔복예술공장을 관람하기를 바란다.


입구에 들어서면 팔복예술공장을 알리는 원기둥을 마주하게 된다. 그 너머로 옛 공장의 이름(쏘렉스)이 적혀 있는 기둥이 보이면서, 현재와 과거가 겹치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A동 1층에 위치한 팔복 아카이브 공간은 전주 산업단지와 카세트 테이프 공장, 그리고 문화재생 사업의 과정과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다.
전라북도 전주에 1960년대를 기점으로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모이기 시작했고, 팔복동 산업지대를 이루었다. 팔복동 공단은 수십 년간 전북지역의 산업을 이끌어 갈 정도로 사람들이 모이고 부흥해 갔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탈산업화와 같은 시대적 변화에 따라 제조업 중심의 경제가 쇠퇴하면서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한때 부흥하던 팔복공단은 폐산업 시설들과 공장들로 인한 환경오염이 심각해졌고, 낙후된 지역으로 변해갔다. 쏘렉스 공장 또한 시대적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공장의 기능을 상실했다.
그렇게 25년간 방치돼 있던 썬전자(현 쏘렉스) 공장은 문화재생 사업을 통해 팔복예술공장으로 재탄생하였다.


A동은 구조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건물의 골격을 그대로 사용했다. 덕분에 옛 공장의 골조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카페 ‘써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A동 1층에 있는 카페 ‘써니’는 과거 화학 약품 등을 활용하는 원재료를 만드는 곳이었으나, 현재는 카페로 활용되고 있다. 카페 밖으로 보이는 중정은 과거 공장의 내부 공간이었는데, 현재는 천장을 제거하여 중정의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A동 3층은 과거 공장 직원들이 탈의실로 사용했던 공간으로, 현재는 야외 예술놀이터로 활용되고 있다. 기존의 공간을 변형하지 않고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기억’을 담은 여러 공간과 작품들을 중심으로 팔복예술공장을 즐길 수 있다.
관람 요소2- 문화적 재생
팔복예술공장은 물리적인 시설을 개선하고 기억을 공유하는 데에만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팔복예술공장은 그 추진 과정부터 개관 이후 지금까지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참여형 프로그램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중점으로 팔복예술공장을 관람하기를 바란다.

A동 1층 창작스튜디오는 팔복예술공장에서 머물면서 창작활동을 하고 는 예술가들의 공간이다.
이는 팔복예술공장의 ‘레지던시’ 사업으로, 잠재력 있는 작가들을 선발하여 1년 동안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공간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진 않지만, 연 2회 정도 입주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관람할 기회가 주어진다. 레지던시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돕는 동시에, 작업물을 갤러리에 전시하는 식으로 ‘선순환’을 만들어 낸다.



B동에 위치한 팔복 야호예술놀이터는 예술교육 공간과 야외 예술놀이터로 조성된 공간이다.
팔복 야호예술놀이터는 유아부터 청소년까지를 대상으로 예술 창작과 놀이 중심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전주 시내 학교와 협력하여 예술교육을 진행함으로써 지속적인 교육을 이끌고 있다. 특히 레지던시에 거주하는 예술가가 학생들에게 예술교육을 진행하면서, 일회성에 그치지 않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팔복예술공장은 지역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의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팔복예술공장을 즐기길 바랍니다.
마치며
황순우 건축가는 팔복예술공장을 기획할 때, 공간을 먼저 설계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콘텐츠를 먼저 계획했다고 한다. 도시재생이란 공간을 아무리 잘 만들었다고 해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콘텐츠가 없다면 다시 빈 공간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 재생은 기억에서부터 온다고 본다. 1년 동안 공간을 설계하지 않고 기억을 재생시키는 작업, 참여하게 하는 작업, 예술가를 통해서 그 공간을 다시 새롭게 읽어내는 작업을 했다. 물리적인 것은 맨 마지막에 했다. 아무리 물리적인 재생을 해도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굉장히 많은 시간, 사람, 사건, 내용 속에서 만들어진 장소에서 그것이 사라졌는데 공간만 잘 만들어놓는다고 장소가 회복될까? 장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되짚어보아야 한다. ”
-황순우 팔복예술공장 총괄디렉터, arte 인터뷰 中
팔복예술광장은 그 장소만의 기억을 재생하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적 재생을 통하여, 폐산업 시설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처럼 물리적인 재생에 집중하지 않고, 지속가능한 공간을 만들어가는 유휴공간의 문화적 재생이 많아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