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림(園林) 이야기

INTRO

중국의 원림을 공부했다고 이야기하면 가끔 원림이 무엇인지 묻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처럼, 한국에서는 원림이라는 단어가 조금은 생소한 것 같습니다. 원림은 일반적으로 정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며, 관상의 가치를 가진 공간을 뜻합니다.

중국의 원림은 크게 북방의 황가 원림 그리고 남방의 사가 원림으로 나뉩니다. 황족이 소유했던 황가 원림의 경우 면적이 굉장히 크고 산지를 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이 소유했던 사가 원림은 이에 비해 규모가 비교적 작으며 강남 지방에 위치하여 정교하고 부드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항저우에 위치한 사가원림 곽장을 중심으로 중국의 원림에 대해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곽장

곽장은 중국 항저우에 위치한 원림 중 하나이며, 1907년 송단보라는 실크 상인이 건축하고 곽 씨에게 판 별장입니다. 곽장은 정원과 건물을 자연과 어우러지도록 절묘하게 배치한, 서호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한 옛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곽장

원림의 매력적인 점은 바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풍부한 경관을 창출한다는 것인데요, 곽장 역시 면적이 비교적 작지만 동선과 공간의 조성에 있어서 공간의 대비를 통해 다양한 경관을 만들어 냅니다. 대비를 통한 극적인 연출은 공간의 체험과 감동을 극대화함과 동시에 원림 공간이 더 넓어 보이는 효과를 주기도 합니다.

곽장의 공간 비교)
복합식 공간 구조

공간의 대비

곽장의 가장 큰 특징은 중간에 동서방향으로 좁고 길게 위치한 건축물이 원림의 동서방향의 보행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원림을 남북으로 분리하고, 남북 방향으로 대비되는 조원 수법으로 공간을 구성한다는 점입니다. 원림의 입구와 건축물들이 위치한 남쪽 호수의 경우 면적이 비교적 작은, 자연적인 느낌이 강한 비정형적인 연못이 있습니다.

남쪽 호수 단면도

평면도 상에서도 남쪽과 북쪽 호수의 대비가 확실히 보입니다 북쪽으로 넘어갈 경우 남쪽에 비해 면적이 비교적 크고, 인공적이고 정형적인 연못이 위치해 있어 공간의 대비감이 굉장히 크게 와닿습니다.

북쪽 호수 전경

전체적인 평면 구조 외에도 대비의 요소가 굉장히 자주 쓰이는데요, 원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대비감을 느껴보기 위해 동선에 따라 곽장을 간단히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곽장의 입구(A)에는 현재 매표소가 위치해 있습니다. 문을 통해 들어가면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건축물 안에서 월동문(B)을 마주하게 됩니다. 문 뒤로 위치한 지붕이 없는 작은 적원은 상대적으로 밝아 시선을 유도하고, 좌측의 좁고 긴 어두운 회랑(C)이 동선을 유도합니다. 회랑을 따라 들어가면 창을 통해 연못의 경관이 살짝 보이지만 나무 등을 통해 가려져 있고, 회랑의 끝에 다다르면 뚫려 있는 지붕으로 밝은 빛이 쏟아지는 첫 번째 관상 포인트에 다다르게 됩니다.

동선에 따른 시야 변화, 손그림

회랑의 좌측에 위치한 꽃 모양의 창으로 남쪽 연못의 경관이 살짝 보이지만 벽과 나무들로 가려져 있습니다. 회랑의 끝에 다다르면 뚫려 있는 지붕으로 밝은 빛이 쏟아져 공간의 밝기와 크기 변화가 매우 강하게 대비되는 다음 관상 포인트에 다다르게 됩니다.

관상 포인트 좌측으로 보이는 전경

첫 번째 관상 포인트를 지나치면 작은 다리가 나옵니다. 공간은 다시 작고 어두워집니다. 이때 다리의 좌우 방향으로도 식물을 통해 시야를 트이게 하거나, 막히게 하여 대비되는 경관을 만듭니다(A). 다리를 지나치면 창틀을 통해 풍경을 담고, 이를 그림처럼 감상하는 광경의 수법을 볼 수 있습니다(B). 이후 좌측으로는 건축물로, 우측으로는 작은 정원(C)으로 연결되는 갈림길이 나오고, 여러 광경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중국 최초의 조원서 <원야>에서 저자 계성은 원림을 조영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차경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차경은 단어 그대로 보면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로, 정원 안팎의 구분 없이 경관을 정원의 일부로 끌어와 경관의 한 조성 부분으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림의 조원 수법으로는 원림 외부의 경관을 내부로 끌어들여 경관으로 삼는 원차, 원림 내부의 인접한 경관을 끌어들이는 인차,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는 시야를 빌리는 양차와 부차, 이 외에도 문이나 창 혹은 식재를 통해 보이는 풍경을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는 광경, 창살을 통해 시선을 투과시켜 경관을 감상하게 하는 누경 등이 있습니다.

좁고 어두운 회랑과 작은 공간들의 끝에서는 항저우의 큰 호수인 서호를 문틀 안에 담는 공간이 나오는데(F), 호수는 물론 멀리 위치한 다리, 가까이 위치한 연꽃 역시 한 폭의 그림처럼 담깁니다. 문을 통해 나오면 탁 트여있는 호수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밝기와 크기 그리고 개방감에 있어서 강력한 대비는, 원림 내의 공간을 더욱 넓고 트여 보이게 만듭니다.

공간 정리

다른 예시를 하나 더 볼까요?

북쪽으로 연결되는 공간에는 돌을 쌓아 만든 가산을 볼 수 있습니다. 가산은 남북의 공간을 구분함과 동시에 작은 정원의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높이감이 있는 공간은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는 양차와 부차의 수법으로 다양한 경관을 창출하기도 합니다.

가산 위에는 정자가 위치하여 서호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고, 아래에서는 동굴을 만들어 석재를 절약함과 동시에 서호의 경관을 담는 하나의 광경의 역할을 하는 공간을 만듭니다. 동굴이나 가산을 통과하면 남쪽 호수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가진 북쪽의 정형식 호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가산 위의 정자

OUTRO

필자가 원림은 좋아하는 이유는 쉴 틈 없이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공간들, 그 모든 공간들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발이 가는 데로 걷다 보면 원림을 자연스럽게 한 바퀴 돌고 어느새 입구로 돌아와 있는데, 그 안에 숨겨진 의미들을 찾다 보면 몇 번이고 다시 돌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입니다. 봄이 오고 꽃이 피는 4월을 맞이해 다채로운 원림의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