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그 이상을 바라보며 : EREVO

에레보 신사

위치 : 서울 강남구 논현로 809 1층

운영시간 : 수~토 12:00 – 19:00, 일 9:00 – 16:00, 월화 휴무

작지만 열정으로 가득 찬 공간

자동차 마니아들의 성지로 여겨지는 도산대로. 이곳을 걷다 보면 유독 눈길을 끄는 작은 공간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작은 카페 같아 보이는 이곳,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일반적인 카페와는 느낌이 다르다.

이곳에 처음 와보는 방문자들에게 공간 하나하나를 설명해주고 계시는 대표님, 의자에 앉아 음료와 함께 디자인에 대한 열띤 토론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 등. 마치 자동차 디자인 센터에 와있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곳은  자동차 디자이너 출신의 정영철 대표와 자동차 기자 출신의 김송은 프로듀서, 현직 자동차 디자이너인 김태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함께 오픈한 ‘에레보’다.

유리 벽돌로 구성된 출입구 바로 옆에는 방문자들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내부공간

내부의 모습이다. 우측에는 자동차 디자인, 건축 등 여러 디자인 분야를 다루는 서적들이 놓여있으며, 테이블에 앉아 음료와 함께 이 서적들을 즐길 수 있다.

좌측의 큰 통창은 외부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를 내부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바깥의 자동차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작은 공간임에도 쾌적하고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공간이 되었다.

통창의 존재 이유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진이 아닐까 싶다. 외부에 어떤 차량이 주차되어 있는지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도 약간씩 변화한다. 이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과 바깥에 세워진 차량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역시 에레보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자동차를 좋아한다면 누구나 눈길이 갈 다양한 굿즈들

에레보는 음료 뿐만 아니라 에레보의 자체 제작 티셔츠, 포스터, 보드 등 다양한 굿즈들도 판매한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길을 끌만한 것들로 가득하다.

에레보에서 판매 중인 영국 플레이포에버 사의 아트토이

곳곳에 숨어있는 모더니즘 디자인

에레보 신사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곳곳에 숨겨져 있는 모더니즘 디자인 제품들이다. 켄틸레버 체어부터 디터 람스의 비초에 606 선반, 디터 람스 시절 브라운의 디자인을 잘 따르고 있는 탁상시계 등.

운이 좋으면 모더니즘 성격이 짙은 자동차로 유명한 초기형 포르쉐 911도 볼 수 있다.

디터 람스의 비초에 606 선반
브라운의 탁상시계

꿈을 꾸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

내부 깊숙한 곳에 마련된 작은 갤러리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자동차와 관련된 여러 전시들을 진행한다.

자동차 디자인과 학생의 졸업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해온 결과물을 학교 졸업전시에서 끝내는 것이 아닌 같은 관심사를 지닌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 사람의 꿈을 담는 공간으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님의 말에 따르면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디자이너를 꿈꾸는 누군가의 가장 뜨거운 열정과 창의력을 보여주는 시기의 작품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자 이러한 전시를 계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곳

큰 책상 위에는 한 시대를 주름잡던 차량들의 라인 스케치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전설적인 차량에 자신만의 디자인을 담는 채색을 해볼 수 있다.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이 찾는 곳인 만큼 다들 수준급의 채색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에레보는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미 있는 경험들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즐거운 경험은 다른 방문자들과의 소통이 아닐까 싶다.

건축과 자동차 디자인은 꽤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많은 부분을 공유하면서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있어 접근 방식이 다르다. 때문에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이곳에 방문한 다른 자동차 디자인 전공자들과의 대화는 같은 전공자들과 대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때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이곳에 방문해 내가 느낀 즐거움을 느껴봤으면 한다는 생각을 적으며 공간에 대한 소개는 마치려고 한다.

자동차, 그 이상을 바라보며

지금까지는 에레보라는 공간을 소개했다면 이제부터는 이번 컨텐츠의 주제인 ‘자동차,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최근 자동차들의 동력원이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변화함에 따라 자동차의 모습이 많이 바뀌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 기술까지 더해지면서 미래에 나올 지동차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모습과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래의 자동차가 점차 건축적인 성격을 띄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자동차와 건축의 융합은 머지않아 이뤄질 거라 생각해왔고, 그렇기에 자동차 디자인의 변화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실제로 많은 해외 설계 사무소 혹은 자동차 브랜드들의 컨셉에서도 자동차와 건축의 유기적인 시스템을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건축과 자동차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자 자동차 디자이너로 활동하셨던 정영철 에레보 대표님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영철 에레보 대표
Hyundai PBV concept

Q1

자동차의 동력원이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변화함에 따라 차내 공간이 더욱 넓어지고, 전기를 이용한 제품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단순히 이동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움직이는 공간으로써의 역할이 커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머지않은 미래에는 자동차가 주거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범위가 확장될 거란 말이 많은데, 자동차 디자이너로 활동하셨던 대표님은 미래의 자동차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라 생각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A1

동력기관의 변화에 따라 자동차 실내 공간이 변화하는 것은 맞습니다. 근데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실내공간의 변화가 자율주행과 더 밀접하다 생각해요.

사람이 계속해서 운전을 해야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공간은 운전이라는 활동에 포커스를 맞출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자율주행이 고도화 된다면 자율주행 상태에서 오피스 업무라던가, 간단한 주거처럼 사람이 할 수 있는 활동이 늘어나죠. 그리고 이 자율주행의 기본적인 전제가 전동화인 거예요. 왜냐하면 내연기관보다 훨씬 전기적인 컨트롤이 수월하니까. 때문에 자율주행 기술이 전동화와 같이 어우러졌을 때 말씀하신 자동차의 공간화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에는 요새 소위 말하는 ‘라운지 컨셉’도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는거죠.

Hyundai 2017 CES concept

Q2

지금까지 자동차가 건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주차장 배치뿐 이었습니다. 근데 자동차가 공간적인 측면이 넓어지면서 점차 역할이 주거에 가까워지게 됐고, 이제는 건축과 자동차가 상호작용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어가는 중인데, 미래의 자동차와 건축의 상호작용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 같은지 대표님의 생각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A2

글쎄요.. 건축쪽은 제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제가 잘 알지는 못 하는데, 관심은 항상 있었죠. 르 꼬르뷔지에라던가 이런 분들의 전시나 작업물들을 되게 인상 깊게 봤었고, 또, 르 꼬르뷔지에 같은 경우는 자동차의 프로토 타입을 제작하기도 했었죠.

근데, 이거는 여담이었고, 지금 보면 자동차 회사들에서 다양한 컨셉들을 보여주는데, 그 중에 집이랑 연결이 되는 컨셉카들이 많이 있어요. 르노에서도 보여줬었고, 최근에 현대에서도 그랬고, 토요타에는 아예 더 큰 범위에서 아예 도시와 그 도시 내부에서 차들이 움직이는 생태가 하나의 큰 흐름으로 융합이 되는 그런 컨셉을 보여주기도 했죠.

그런 거를 봤을 때, 제가 생각하기엔 인간 생활에서 거주를 하는 공간과 자동차는 계속적으로 존재 하면서 융합되어 가긴 하되, 예를 들면 집에서 차로 바로 갈 수 있는, 쉽게 얘기하자면 주차공간과 주거공간이 붙어있는 집이 이미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좀 더 유기적인 형태로 발전하지 않을까? 라는 상상은 해봐요. 근데 이 부분은 제가 생각할 때는 아직은 상상의 영역인 것 같아요.

또, 최근에 고층 주상복합에 자신의 차량이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집들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이전까지는 이런 게 주택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는데, 여러 세대에서도 이런 것을 구현하려는 시도를 보면 제 생각에는 이런 시도들이 좀 더 다양화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Hyundai PBV-HUB

Q3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전기차가 점차 공간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주거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게 된다는 가정하에 건물이 플랫폼이 되고, 자동차가 모듈이 되어서 이 둘이 하나의 건물을 이루는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데 자동차가 아무리 발전을 해도 지니는 문제점이 물과 식사잖아요. 그래서 플랫폼에는 공용 샤워시설이나 요리를 위한 공간이 있고, 자동차는 방이 돼서 잠이나 업무 등은 차에서, 나머지는 공용 공간에서 해결하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 지는 거죠.

저도 개인 프로젝트로 이 컨셉을 이용해서 설계를 하고 있어요. 각 층에 공용공간이 있고 자동차들이 건물의 외부 입면을 이루는 그런 계획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컨셉이 실현되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A3

저는 사실 건축쪽을 모르는 상태에서 봤을 때,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던가 회사에서 이러한 컨셉에 대해 상당히 많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자동차가 주거 역할을 수행하고, 공유하는 공간과 연결 되어 나머지 역할도 수행하는 거죠. 허브와 모듈의 개념에서 그런 건데, 우선 이건 확실히 아직은 상상의 범주에 있는 것 같아요.

어디까지 구현이 가능할까, 빠른 시일 내에는 이런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지만 이런 개념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보면 앞으로는 나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엄밀히 말하면 이런 건 사실 가슴 아픈 변화죠. 집을 사기 너무 힘들고, 공간이 워낙 협소해지다 보니 차만이 유일하게 내가 살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리는 어쩔 수 없는 형태라는 게 내심 마음이 아프긴 해요. 근데 어찌 됐든 그 상황을 쾌적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란 생각이 들어서 되게 의미 있는 컨셉들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시도를 조금 더 실현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저는 모듈화로 아예 하나가 되는 컨셉은 차량과 건물이 모두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다 보니까 두 산업 간의 변화가 동시에 이뤄져야 가능할 거라 생각을 해요. 그러려면 되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고, 현재의 자동차 형태를 활용하는 선에서 지금 말씀하신 컨셉을 보여줄 수 있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 현대의 UAM 컨셉 (Hyundai Motor Group TECH)

Q4

오늘 여러 건축대학 졸업 전시회를 갔다 왔는데, UAM이 상용화 된 세상을 상상하면서 기존의 차량과 UAM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터미널을 설계한 분이 계시더라고요. 이런 시대가 진짜 올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UAM : Urban Air Mobility의 약자로 ‘도심 항공 모빌리티’를 뜻한다.

A4

그건 확실히 가까워졌다고 생각을 해요. 무조건 올 거라고 생각 하고요. UAM은 이미 물리적인 장치들이 현실화 가능해졌어요. 근데 문제는 뭐냐면 UAM이 상용화돼서 수가 늘어나나면 그때부터는 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서울에 차가 10대만 있다면 차들이 서로 사고가 날 일은 없다고 봐도 되잖아요. 근데 지금처럼 차가 많아지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해 지는 거고, 그래서 UAM이 보급되는 거는 법규의 문제인 거라 어느 정도 빨리 진행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때문에 UAM과 자동차과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정말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UAM과 자동차가 건축과 융합되어 하나의 유기적인 생태계를 이루는 것은 아까 말한 자동차 모듈화 컨셉과 같이 상당히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글을 마치며

이 글이 자동차 디자인이나 건축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글이었길 바라며, 그리고 인터뷰에 선뜻 응해주신 에레보의 대표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