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합정역에서 쭉 걸어오다 보면, 영화 포스터로 도배된 골목길이 시선을 끈다.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와 ‘화양연화’의 포스터가 반겨주는 이곳은 ‘씨네마포(CINEMA4)’. 마포구에 위치한 공간이라 ‘씨네-마포’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영화 디자인 회사 포레스트(4REST)가 운영하는 공간이라 ‘씨네마-포’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파벽돌로 된 외관과 은은한 황색 조명이 아늑한 느낌을 한껏 더해준다. 실제로 씨네마포는 반지하가 딸린 지상 2층 단독주택을 개조한 곳으로, 주택에서 영화인을 위한 아지트로 변신한 곳이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화양연화’ 포스터가 다시 한번 반겨준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재개봉할 때 씨네마포를 운영하는 영화 디자인 회사 포레스트가 굿즈 디자인을 맡게 되면서 씨네마포에서 왕가위 감독 전시회를 진행한 적이 있을 만큼 둘의 인연이 깊다고 한다. 곳곳에 왕가위 감독의 작품이 숨어 있어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영화를 위한 공간인 만큼 꽤나 많은 종류의 영화 굿즈를 판매하고 있다. ‘이 영화도 있다고?’라고 할 만큼 국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가 있었다. 엽서, 배지부터 정식 블루레이, OST LP판, 대본집까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특히 왕가위 감독의 굿즈는 판매하지 않는 전시용 굿즈까지 구경할 수 있다.

씨네마포를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이자 씨네마포의 하이라이트, 바로 미니 시네마다. 씨네마포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미니 시네마에서는 계속해서 영화가 상영된다. 따로 배경음악 없이 여기서 상영되는 영화의 사운드가 곧 이 공간을 꽉 채운다.
(좌측에 또 왕가위 감독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다. 이 정도면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모르는 사람도 한번 보고 싶게 만든다.)

반 층 내려가면 두 개의 좌석이 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단독주택을 개조하면서 반지하 천장을 허물고 이렇게 특별한 구조의 미니 영화관을 만든 것이다. 반 층 내려감으로써 영화를 보는 사람은 주변 시야가 차단되어 오로지 영화에만 집중할 수 있고, 천장은 높게 위치해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층에 높게 벽을 쌓았을 때보다 답답함이 더욱 해소되는 구조다. 미니 시네마 뒤에 카페 좌석도 여러 개 배치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미니 시네마가 있는 공간답게 메뉴도 기본 카페 메뉴 뿐만 아니라 팝콘, 나쵸, 맥주와 같이 영화를 보며 즐길 수 있는 메뉴도 판매하고 있다. 메뉴를 주문하면 쟁반에 디저트 과자와 단편 영화제 엽서, 아트나인에서 출판한 이번 달 월간지를 함께 갖다주신다.

오픈 시간에 맞춰 방문했었는데, 첫 손님에게는 원하는 영화를 틀어주신다며 상영 가능한 영화 목록을 건네주셨다. 따로 상영작이나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날씨에 따라, 혹은 손님의 요청에 따라 이렇게 영화를 틀어주신다고 한다. 평소에 좋아하던 영화가 있어 덕분에 완전히 몰입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감상했다.

다 보고 나오는 길에 처음 본 영화인지 여쭤보시길래 원래 좋아하던 영화라고 하니 엽서를 선물해 주셨다. 엽서를 담아 가는 종이봉투가 있는데, 여기에 왕가위 감독의 작품 그림이 담긴 도장을 자유롭게 찍어갈 수 있다. 도장 그림은 씨네마포에서만 볼 수 있는 단독 디자인이라고 한다.
공간에 대한 총평

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관은 조용히 해야 한다는 강박과 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수십 개의 같은 모양의 좌석들 속에서 답답함을 느껴 잘 가지 않는 편이다. 새로운 영화를 보기보다 예전에 나온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이런 나에게 씨네마포는 아쉬울 게 없었다. 여러 방면에서 고민한 흔적들이 남아있는 공간 구성은 다른 공간들과는 다른 편안함을 안겨주었고, 방문한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여러 콘텐츠(월간지, 도장 등)는 나중에도 이 공간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거리를 만들어주었다. 특히 공간을 가득 채운 영화 사운드 사이사이 들리는 커피 머신 소리,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니 그냥 편하게 쉬다 가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아지트’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 같다.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며,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영화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곳. 여기서 봤던 영화를 떠올리면 그때 느꼈던 미세한 빔프로젝터의 떨림, 조금씩 들리던 소음까지도 계속해서 행복했던 기억으로 생각날 것 같다. 앞으로 영화가 보고 싶을 때에는 이곳을 더 찾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추천하고 싶은 공간이다.
씨네마포
위치 서울 마포구 독막로9길 3-3 1층
영업시간 12:00 ~ 22:00 (매주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cinema_four
공식사이트 https://cinema4.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