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사랑받는, 곡선이 아름다운 ‘알토’의 화병

혹시 이런 이미지를 보신 적이 있나요?

(출처 : youtube)

‘V-ray’에서 유리의 ‘Caustic(빛의 반사/굴절광이 다른 물체에 맺히는 현상, 예를 들어 햇빛이 일렁이는 물결)’ 표현을 찾던 중
유튜브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썸네일입니다.

특히 예제로 사용된 오브제가 굉장히 시선을 끌었는데, 이는 바로 ‘알토화병’입니다.

‘스툴60’과 같이 핀란드, 북유럽 디자인을 대표하는 가구를 디자인했던 건축 거장, Alvar Aalto(1898~1976, 이하 ‘알토’).

핀란드의 국민건축가로 불리었던 그는 건축거장이었고, 건축물에 들어가는 가구까지 다루며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로 불리었습니다.

그의 디자인은 건축물, 가구를 넘어 ‘화병’까지 디자인하게 되었고,
이 화병은 2020년 미국 <Fortune>지에서 발표한 ‘위대한 현대 디자인 100선’에서 20위를 차지하기까지 합니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알토 화병 95mm, 캔들홀더 55mm, 볼

‘Iittala’의 알토 화병이 세상에 처음 선보여지게 되었던 것은, 1936년이었습니다.

이 ‘알토 화병’은 4개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Eskimåkvinnans skinnbyxa” / “Savoy” / “Paris object” / “Aalto” 가 있습니다.

첫 번째 별명인 “Eskimåkvinnans skinnbyxa”는 스웨덴어인데, 직역하면 ‘에스키모 여성용 가죽바지’ 입니다.

(여러분이 갑자기 뜬금없이 ‘에스키모?’ ‘가죽바지?’ 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네요🤣)

이 화병은 1936년,  Ahlström이 소유한 Karhula-Iittala 유리공장의 디자인 공모전 출품작으로 디자인되었습니다.

Early Aalto Vase Sketches.
초기의 스케치 (출처 : https://www.lumens.com/behind-the-design/aalto-vase.html)

위 사진이 바로 알토의 가장 초기 스케치인데, 스케치 하단에는 실제로 이러한 메모가 있다고 합니다.

“에스키모 여성의 전통의상에서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이죠.

이 초기의 디자인은 결국 공모전에서 당선되었습니다.

두 번째 별명인 “Savoy”와 얽힌 스토리는 뒤이어 나오게 됩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개된 내용 (출처 :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4153)

알토와 그의 아내 아이노는 1937년에 오픈한 핀란드, 헬싱키의 고급 레스토랑인 ‘Savoy Restaurant’의 인테리어를 맞게 되었고, 이 공간을 위해 몇 가지 커스텀한 가구들과 오브제들을 디자인하였습니다.

그 때 이전에 디자인 하였던 이 ‘알토화병’을 추가하였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알려지며 레스토랑의 이름을 따 “Savoy”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이죠.

Corner Table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알토화병”과 그들이 디자인한 가구들 (출처 : Savoy 공식홈페이지)

세 번째 별명인 “The Paris Object”에 얽힌 일화도 재미있습니다 🙂

당시 1937년도, 프랑스 파리에서 유니버스 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가 개최되었는데,
이 박람회의 ‘스웨덴관’에 전시할 작품을 뽑기 위한 공모전이 1936년에 있었습니다.

‘알토’는 이 화병을 포함하여 10점 정도의 작품을 제출했고 공모전에 당선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알토’가 디자인한 자유롭고 유려한 곡선의 오브제는 당대에 얕은 접시에서 큰 키의 화병까지
다양한 형태로 인기를 끌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파리의 작품’과 같은 멋진 별명이 생겼죠.

꼭 화병이 아니더라도 작은 사이즈는 연필꽂이로도 쓰일 수 있다. 그 자체로도 멋진 오브제. (직접촬영)

그리고 마지막 별명인 “Aalto”.

알바 알토가 디자인했기 때문에 그의 성을 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Aalto는 핀란드어로 “파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기막힌 우연의 일치이죠)

(출처 : 구글 번역기)

혹자는 ‘알토’가 고향이 핀란드의 한 호수를 본 떠서 만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판매처인 ‘Iittala’ 공식홈페이지에도 그렇게 적혀있고요.

하지만, 그 호수의 위치나 정보는 전해진 바가 없고, 시대가 흐르며
‘에스키모 여성 가죽바지’에서 따온 디자인이라고 밝히는 것보다 낭만적이라 그렇게 알려진 게 아닐까 합니다.

Mold used to make the Aalto Vase.
실제로 장인들이 입으로 불어서 만들기 때문에 사용하는 몰드 (출처 : https://www.lumens.com/behind-the-design/aalto-vase.html)

장인들이 나무로 된 몰드 안에 직접 입으로 하나하나 불어서 그 형태를 만들어내는 알토 화병.

‘알토’의 화병은 앞서 언급한 ‘Iittala’에서 캔들홀더, 보울, 쟁반, 플래터 등등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불어서 만들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진 않지만,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유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마감에 매료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처럼 말이죠)

같은 디자인의 캔들홀더. (직접촬영)

단순히 하나에 100원 하는 티라이트 캔들을 넣었을 뿐인데,
핸드드로잉으로 그려진 유려한 곡선이 촛불을 공간 가득히 전달해줍니다.

구불구불 계산되지 않은 곡선은 일상에서 소소한 위트가 되어줍니다.

그래도 화병으로 쓸 때 가장 아름답다. (직접촬영)

혹자는 말합니다. “Architecture is architecture. Building is building.” 이라고 말이죠.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만 해당하는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구성하는 무언가를 고민하고 디자인한다면, 그것도 ‘건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건축가였던 ‘알바알토’는 단순히 건물만 짓는 건축가가 아니었습니다.

가구도 만들고, 레스토랑에 사용할 화병을 디자인 하기도 하였죠.

여전히 회자되는 ‘알토’의 디자인을 보며 ‘건물을 짓는 것만이 건축이다’ 라는 생각에서 조금은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그러다보면, 우리시대에도 ‘알바알토‘가, ‘다니엘 아르샴’이, 또는 ‘리처드쉐퍼‘가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P.S.1
화병을 갖게 되니 괜히 꽃을 사서 꽂아보고 싶고, 캔들홀더를 갖게 되니 괜히 불을 끈 어두운 방 안에서 촛불 하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주변에서는 어떠한 물건이 어떠한 경험을 가져다 주나요?

P.S.2
원고를 마무리하고 나니 어느새 새로운 친구가 저의 곁에 있네요 🙂

새로운 컬렉션은 못 참지.

다 모티브는 같지만 곡선의 라인과 디테일이 다른 것이 하나 하나 들여다보는 맛이 있습니다^^

아래의 영상에서 ‘알토’ 화병을 장인들이 어떻게 만드는지도 확인해보세요~ (진짜 멋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