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는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한 건축물의 대가로 알려진 일본 출신의 건축가이다. 안도는 집안의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여 건축에 관한 정규적인 수업을 받지 못하고 독학하였다. 그러한 영향인지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으로 건축을 풀어나간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철학은 건축물 속에 자연을 끌어들여 인간의 오감으로 자연을 체험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으로 인해 기하학과 노출콘크리트, 가벽, 물, 그리고 중정 등과 같은 특징들이 나타난다.
“좋은 건축이란 인간과 자연 공간의 합일점을 찾는 것”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를 대표하는 특징인 노출 콘크리트와 기하학과 같은 인공적인 요소가 빛이나 물과 같은 자연과 조화로울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안도 다다오의 건물을 직접 방문하여 그의 철학을 경험하고자 했다. 그의 건물 중에서 ‘뮤지엄 산’이 비교적 규모가 크고 철학이 잘 담긴 공간이라고 판단하여 선택했다.
뮤지엄 산

뮤지엄 산은 Space Art Nature의 약자로 건축과 예술,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강원도 원주에 위치하여 산 능선에 따라 남에서 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안도는 처음 이 부지를 보고 ‘도시의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 쌓인 아늑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를 모토로 안도는 자연을 품은 공간을 만들어, 건물 본체뿐만 아니라 부지 내 모든 경험들을 건축적 산책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본격적으로 글에 들어가기에 앞서, 뮤지엄 산을 다녀온 소감을 간략하게 얘기하려고 한다. 필자는 이곳을 6시간씩 이틀에 걸쳐서 총 12시간을 관람하였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감상할 작품들이 많고, 정원과 전시관 이외에도 기타 공간이 매우 다양하고 크다. 게다가 이 모든 공간에 숨겨져 있는 디테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공간에 빠져들어 버렸다. 이 공간을 즐길 수 있는 팁을 약간이나마 정리해 놓을테니, 방문하게 된다면 여유를 가지고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 시간을 여유롭게 계획하자.
- 미술관과 박물관을 차례대로 감상하고 싶다면 해설을 듣자. 내부가 미로와 같아서 스스로 순서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 건축가의 철학을 통해 공간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자.
- 모든 공간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 디테일에 주목하자!! 줄눈과 계단 창문 심지어는 의자까지 철저하다.

뮤지엄 산은 웰컴센터,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본관, 명상관, 스톤가든, 제임스터렐관으로 길게 이어진다. 동선에 따라 뮤지엄 산을 관람하면서 안도 다다오의 건축적인 특징을 하나씩 분석하고자 한다.
1. 웰컴센터의 기하학


뮤지엄 산에 도착하면 독특한 색상의 석벽(돌로 만들어진 벽)을 제일 먼저 발견할 수 있다. 그 석벽은 앞을 가로막으면서 곡선의 형태를 띄고 있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 곡선의 석벽을 따라 자연스럽게 내부로 유입하게 만든다. 주차장 내부에는 파주석으로 만들어진 석벽이 주차장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고, 한쪽에는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웰컴센터가 위치한다. 항공사진으로 보면 파주석벽의 O자 모양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이러한 기하학적인 형태는 안도 다다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안도의 기하학은 서양 고전건축에서 영향을 받았다.

인간의 이성을 반영한 기하학적 구성

기하학적 틀 안에 자연을 도입
안도는 서양 고전건축의 기하학적인 구성이 인간의 이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그는 건축의 기하학적 틀 안으로 자연 도입하는 것이 ‘자연을 건축화’한다고 바라보았다. 즉 안도는 서양 고전건축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이 건축과 사람을 연결하고, 건축과 자연을 연결한다고 바라본 것이다. 이처럼 안도는 기하학이 사람과 건축, 자연을 연결한다고 생각하였다. 기하학적인 외관은 내부를 예측하지 못하도록 하여 사람들에게 극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2. 플라워가든의 가벽


웰컴센터에서 나와 플라워가든으로 이동하다 보면 파주석벽을 마주하게 된다. 이 가벽으로 인해 제한되었던 시선은 석벽을 통과하면서 극적으로 개방된다. 드넓은 플라워가든과 주변의 산이 원경으로 보이면서 광활함을 느낄 수 있다.

플라워가든이 끝나는 지점에 또 한번 노출 콘크리트 벽이 나타나면서 그 너머로의 시선을 제한한다. 관람객들은 그 벽을 왼쪽에 끼고 따라가게 되는데, 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동선의 방향이 180도로 꺾이게 된다. 안도 다다오는 동선의 방향을 정반대로 회전시킬 정도로 작위적인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사람들이 그다음 장면을 볼 수 없도록 하여 뮤지엄 산 본관이 드러날 때 극적인 효과를 만들도록 의도한 것이다. 게다가 여기에서 나타나는 가벽은 노출 콘크리트 벽과 파주석벽이 X자로 교차하는 독특한 형상을 가진다. 물성이 다른 두 가지의 가벽이 교차하는 형태를 통해 이후 본관에서 나타날 재료적 특성을 상징한 것이다. 실제로 노출 콘크리트와 파주석은 뮤지엄 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건축 재료이다.
이처럼 안도 다다오는 가벽을 이용하여 방문자의 동선을 유도하기도 하고, 시선의 제한과 개방을 반복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만든다. 또한 건축물 도입부에 사용된 가벽이 건축 전체 컨셉의 상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안도는 가벽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장면을 연출하였고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만들었다. 즉 공간과 자연, 인간이 조화롭게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3. 워터가든의 물

노출 콘크리트 벽을 지나 본관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면, 수공간과 함께 본관이 나타난다. 수공간 가운데 떠 있는 건축물은 그 하나만으로 관람객들을 압도한다. 수공간 위에 놓여진 다리는 소실점을 강조하면서 동선을 안쪽으로 유도한다. 물을 가로지르며 다리를 건너가다 보면, 마치 다른 세상으로 진입하는 듯한 공간적 경험이 극대화된다.
이처럼 안도 다다오는 물을 활용하여 공간을 풍부하게 만들어 낸다. 그는 수면의 반사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확장시키고, 실체와 허상 사이 세계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수공간이 주변 풍경을 반사하면서 하늘의 변화와 바람의 흐름과 같은 시간의 흐름을 담아낸다고 생각한다. 그는 물이 건축과 자연을 연결함으로써 관람객에게 다양한 공간적 경험을 만들어준다고 바라본다.
4. 본관에서 나타나는 ‘길’의 건축
뮤지엄 산의 본관은 ‘길’이 매우 중요하다. 본관 내부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길’이라고 할 정도로 전시관보다 복도의 비중이 더 크다. 뮤지엄 산 이외에 다른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복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나는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복도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전시실의 규모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보통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전시실의 크기를 최대한으로 하여 작품을 효율적으로 전시하고자 한다. 반면 뮤지엄 산은 하나의 큰 전시실을 만들 수 있는 규모임에도 오히려 규모가 작은 여러 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있다. 작품을 보기 위해 찾은 관람객들은 전시실 1관부터 4관까지 이동하게 만들면서 관람 동선을 인위적으로 늘렸다.





이렇게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길’은 또 하나의 특징을 가진다. 마치 미로와 같다는 점이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 교차점이 자주 나타난다. 심지어는 막다른 길에 가로막혀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처음에는 길을 잃은 듯한 느낌에 불안한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헤매다가 어떤 공간에 들어서게 되면, 창문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자연의 풍경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극대화된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점점 길을 걸어가며 마주칠 장면을 기대하고 즐기게 된다.
안도는 의도적으로 ‘길’을 끊기도 하고 꺾기도 하면서 동선을 복잡하게 하고 늘렸다. 그는 ‘길의 건축’을 통해 사람들이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감정들을 풍부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좁고 어두운 길을 걷나 중정에 다다랐을 때 느껴지는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또한 안도는 뮤지엄 산의 모토인 ‘소통을 위한 단절’을 위해 길고 미로와 같은 동선을 유도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인내를 가지고 정적인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5. 세 가지의 중정
뮤지엄 산 본관은 남쪽의 종이박물관(페이퍼갤러리)과 북쪽의 미술관(청조갤러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본관에 기하학적인 형태를 가진 세 개의 중정이 있다. 안도는 정사각형, 이등변삼각형, 원 형태의 공간을 대지, 사람 그리고 하늘에 비유하면서 천지인을 상징하였다.

정사각형 중정은 ‘파피루스 온실’로 종이박물관 가운데 위치한다. 파주석으로 쌓아 만든 벽이 정사각형 공간을 만들어 중정을 이룬다. 파주석벽 너머로는 하늘이 보이는데, 마치 사각형 틀에 하늘이 담긴 듯한 느낌을 준다. 중정 가운데에는 과거 종이 원료였던 파피루스를 키우는 유리 온실이 또 다른 정사각형을 만들고 있다.

삼각형 중정은 ‘삼각코트’로 종이박물관과 미술관을 연결하는 중간에 위치한다. 종이박물관의 관람을 마치고 걸어가다 보면 어두운 복도 변면에 빛이 들어오는 얇은 띠를 마주치게 된다. 이 띠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삼각코트 입구에 다다른다. 중정 내부 바닥에 울퉁불퉁하게 깔린 돌이 소리를 내며 중정 안에 울리고, 콘크리트 벽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리면 하늘이 삼각형 안에 담겨 있다. 바닥의 울퉁불퉁한 돌의 촉감, 걸으면서 들려오는 소리, 하늘에서 보이는 구름과 빛이 온전히 느껴진다.


원형 중정은 ‘백남준 홀’로 원통형 전시공간 안에 백남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천장에는 원형의 창이 뚫려 있어 햇빛이 그 사이로 들어오고 있다. 햇빛은 시간에 따라 움직이며 공간 안에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원통형을 이루고 있는 벽체는 크기가 작은 파주석들로 이루어져 있어 이 공간을 더 커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바닥의 마감재를 검은 색상에 반사하는 재료로 사용하여 백남준의 작품과 햇빛, 파주석 심지어는 사람들까지 반사되고 있다. 이러한 반사 효과는 워터 가든에서 물이 가지고 있는 효과와 같아, 뮤지엄 산을 아우르는 건축 개념이라고 확인할 수 있다.
6. 노출 콘크리트와 파주석


안도 다다오는 콘크리트와 유리, 철로 한정된 재료를 사용하여 건축구성을 극도로 제한한다. 이는 공간과 형태를 정제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안도는 이렇게 정제된 건축이 자연과 대응하여 건축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출 콘크리트는 공간과 형태를 정제시킴과 동시에 빛과 어우러져 감각적으로 풍부해지게 만든다.
안도 다다오는 뮤지엄 산을 ‘자연을 품은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다 보니 산 정상에 콘크리트의 건물보다는 ‘산’과 어울리는 재료를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덕분에 뮤지엄 산 입구에서부터 본관까지 노출된 부분은 파주석이라는 자연석으로 만들어져 산과 이질적인 느낌이 감소한다.
맺으며
뮤지엄 산을 분석하면서 안도 다다오를 대표하는 특징인 노출 콘크리트와 기하학과 같은 인공적인 요소가 빛이나 물과 같은 자연과 조화로울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과 자연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자연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드리지는 않는다. 그는 자연과 대비되는 인공적인 요소를 사용해 오히려 서로를 부각하고, 이러한 대비가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고 자연과 건축 관계를 감각적으로 융화시킨다. 자연과 인간, 건축의 관계가 감각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안도 다다오의 여러 건축적인 특징은 모두 자연∙건축∙인간의 관계성으로 귀결된다.
“좋은 건축이란 인간과 자연 공간의 합일점을 찾는 것” -안도 다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