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정신없이 흘러간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조병수 건축가의 “지평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거가대교를 지나 장장 2시간 여를 차로 내리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이 곳.


차로 천천히 가조도를 돌다보면,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멋진 조망의 대지가 나온다.
“지평집”이라는 이름답게 정말 지평선을 건드리지 않고 시원한 뷰를 보장하며 건축물이 들어서 있었다.

주차를 하고 고개를 살며시 돌리면, 저마다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2인 객실들이 보인다.
인공조경이지만, 주변 자연환경과 너무 잘 어우러지는 마당과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나무는 이미 휴식이 시작됨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체크인을 하면, 웰컴드링크와 마카롱을 주신다.
투숙객들만을 위한 카페가 운영되고 있는데, 그 곳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면 지평선이 훨씬 잘 느껴진다.




위의 사진을 보면, 대지의 등고차와 조경을 활용해서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면서 앞으로 개방감을 유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대지의 등고차를 치밀하게 고려해서 활용한 건축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카페에서 나와서 2인객실로 향하는 길.
별도의 전이공간이 없어도, 자연을 온전히 느끼며 속세와 거리를 두게 된다.


멋진 나만의 정원을 옆에 끼고 한 층 더 낮은 대지로 내려가는 계단을 걷다 보면,
어느새 내가 위에서 바라보고 있던 레벨까지 내려오게 된다.
독립적인 객실의 대문과 현관, 문까지의 시퀀스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넓게 자연을 바라보던 뷰에서 좁게 나의 방문을 바라보는 시야각을 통해 전이되는 효과를 주는 듯 하다.


‘ㄹ’방은 우측으로 보이는 유리창 너머에 욕실을 끼고 있다.
콘크리트, 어디에나 보이는 식물들, 나무 루버와 문, 모든 재료들이 과하지 않고 조화롭다.
어쩌면, 돌-흙-나무의 자연재료 삼합을 구성한 것이 아닐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떻게 이런 자연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았을까 생각되는 뷰를 마주하게 된다.
하늘, 산, 바다, 풀, 흙, 나무, 콘크리트까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 것으로 가질 수 있는 나의 개인적인 침대.
모두가 완벽한 조화였고, 여기까지 들어온 순간 이미 자연에 압도되어 휴대폰을 어디 두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짐을 풀고 손을 씻기 위해 들어선 화장실에서는,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었다.


바깥으로 보이는 현관과 아름답게 만들어진 세면대, 그리고 수도꼭지까지 디자인 되어있었다.
지평집은 손에 닿고 만지고, 보이는 모든 것이 자연물의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되어 있었다.
세면대조차 잡석콘크리트로 되어있었고, 수도꼭지의 윗부분도 특별 제작 되어있었다.

바깥에서 보였던 남향의 고측창은 내부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나무보(로 추정)에서 셋백되어 있었고,
천장의 나무 디테일 사이에 라인등이 매립 되어 있었다.
모든 요소들이 있는 듯 없는 듯 구성되어 있었던, 건축가의 배려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숙소에서의 시간을 조금 보낸 후, 지평집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작은 정원이 보이고, 대지의 등고차가 느껴지는 숙소에서 나가는 길.
그리고 대문에 걸려있는 고전적인 도어락(?)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조그마한 자연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많은 행복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공간.

계단을 올라가면서 웰컴센터의 지붕은 보이지만, 조경으로 인해 서로 시선은 차단된다.
등고차와 조경을 적절히 활용하여, 모든 객실의 입구로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는 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밖으로 나와서 돌아본 지평집들.
숙소 내부 사진과 유명한 포토존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서, 나의 시선으로 담은 공간들을 공유해보자 한다.

평면을 그리다보면, 선이 보통 직각으로 가거나 어떠한 기준에 의해 그어지는데
지평집에서의 선들은 어떠한 위계와 기준으로 그려지는지 감이 전혀 오지 않았다.
대각선으로 만나는 점교차 되는 공간들이 건축가의 센스이자 따라하고 싶은 표현이었다.

건축물은 지평선을 재정의하는 한편,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 하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공간이다.
각각의 2인실 입구를 구성하는 벽들이지만, 위에서 보니 여러 레이어가 병치 되어 보였다.
건축가의 의도라면 너무 치밀해서 놀랍고, 의도가 아니라면 우연의 공간이 이렇게 멋질 수가 있나!
벽의 크랙은 건축가가 콘크리트 타설할 때부터 의도했던 것인데, 인공물을 자연물로 치환하려는 노력처럼 보여서 좋았다.

히노끼탕도 이용하고, 멀리서 보이는 배, 별, 바닷바람, 종종 찾아오던 고양이들
그렇게 하룻밤이 흘렀고, 지평집에서의 시간도 마무리되어갔다.

보통 건축물은 자연이 거부하거나, 자연을 파괴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건축물은 인공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평집은 어딘지 모르게 자연이 품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파괴한 자연만큼을 주변 조경과 사람들이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물은 지어지고 나면 그 이후의 행보는 이용자와 운영자의 몫이다.
요즘은 건축물은 아름답지만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아쉬운 경우가 많다.
지평집은 아름다운 건축물 만큼이나 공간경험을 극대화 해주는 운영진이 있어서 참 좋은 공간이었다.
거제에서도 더 깊은 곳에 있어 찾아가긴 힘들 수 있어도, 도착하면 나를 맞이하는 모든 것이 그 여정을 보상해주는 곳이다.
여러분도 언젠가 세상에 지치고 힘들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될 수 있는 이 곳
“지평집”을 꼭 경험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P.S. 너무나 귀여웠던 지평집 열쇠. 디테일하게 나무로 구성한 것도 좋았고, 미니맵도 너무 유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