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한 달에 얼마나 문화생활을 즐기십니까?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일부는 대답하기를 머뭇거릴 것입니다.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테지만, 저의 경우엔 전시나 공연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몇 없는 경험 때문입니다. 저는 문화생활을 좋아하는 사람임에도 문화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는 데다 어디서 어떤 행사를 하는지 찾아볼 여유도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 얻어걸려 알게 된 흥미로운 전시나 공연은 죄다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으니 문화생활을 즐긴 횟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부산에서는 집과 학교만 쳇바퀴 구르듯 다니다가, 서울에 놀러가기만 하면 전시를 보러 다니느라 바쁜 사람들.
서울에서 어떤 공연을 하는지 찾아보면서 정작 부산에선 어떤 전시, 어떤 공연이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부산시 문화생활이라는 컨텐츠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시 월간 문화생활 캘린더
아래 링크를 이용하여 구글 캘린더에 액세스하면 언제 어떤 공연과 전시가 진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부산시 문화생활의 접근성이 높아졌으면 합니다.
렉크 유정의 문화생활
이런 컨텐츠의 제작자면서도 문화생활을 소홀히 한다면 모순적인 거겠죠. 따라서 캘린더를 제작하면서 본 다양한 전시 중 흥미로운 것을 골라 다녀왔습니다. 제가 방문한 곳은 해운대에 위치한 ‘뮤지엄 원’인데요.


‘뮤지엄 원’에서는 현재 <치유의 기술>이라는 메인 전시와 <가려진 시선>이라는 기획 전시를 진행 중입니다.


<치유의 기술>이라는 메인 소책자에서 전시관 안내도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가장 높은 곳의 층고가 최소 7,000mm은 되어 보이는 높은 층고에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 공간의 변화가 잘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층고가 높은 전시관 초입부터 층고가 확 낮아지는 다음 전시실까지 거울을 적극 활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간뿐만 아니라, 우측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작품 안에서도 거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밟는 공간, 내가 보는 벽과 작품, 내 머리 위의 천장 등. 나를 비추는 거울은 나를 실제와 분리시킵니다. 마치 내가 작품에 녹아들어 가는 듯하기도 하며, 나를 타자로 인식하게 만듦으로써 사유하게 합니다. 전시실에 진입하면서 작품 설명을 읽으면, 표현법은 다를지라도 같은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들은 작품과 현실의 경계를 흩뜨리며,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생각하는 과정에서 치유 효과를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듯했습니다. 이 작은 공간들을 지나며 몽롱해진 정신이 어느새 작품에 흡입되면서 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저의 감상평일 뿐이고, 단순히 거울 속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낀다거나 이견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즐겼든 간에 행복함을 느꼈다면 이 전시의 역할은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자신이 작품에 녹아들어 가는 경험, 사유의 기회, 편한 자세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과 장치 등이 계속해서 주어지는 것이 좋았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온전히 작품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훑고서 지나가는 전시가 아니라, 단순히 예쁜 사진만 찍는 전시가 아니라 모두 함께 작품을 음미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치유의 효과가 더욱 짙어졌던 것은 아닐까요?

그 외에도 2층에 있던 이지영 작가님의 작품이 깊이 기억에 남았는데요. 나무의 삶과 죽음을 표현한 영상물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치유 받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주 기이한 경험인데, 마침 전시실 내부에 묘하게 안개가 낀 듯한 연출로 인해 더 극대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외의 남은 전시들을 관람하며 기나긴 시간을 보내고 나오자 ‘미라클 가든’의 중앙 스크린에선 ‘영원한 안식’이라는 작품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보다 크고 전능한 존재에게 기대고 그로 인해 치유받고는 합니다. 그런 습성 때문인지, 그 영상을 보고 있는데 묘한 안정감이 들었습니다. 이 영상을 끝으로 관람을 마무리한 덕분에 거대한 무언가에 덮쳐진 듯, 한참 여운에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전시장에 볼 것도 많고 스토리도 탄탄하다 보니 최대한 추려도 할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볼거리가 굉장히 많이 있으니까요. 부산 시민, 그리고 부산에 놀러 올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꼭 ‘뮤지엄 원’에 한 번쯤 들러 보기를 추천하겠습니다.
마무리하며
끝으로, 이 컨텐츠를 준비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부산에서도 정말 많은 전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높은 퀄리티로 준비되어 있으니 내키는 대로 보러 가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도 말입니다. 사실 처음엔 뮤지엄 원이 아니라 다른 전시를 보러 갈 생각이었습니다만, 휴관일을 잘못 확인하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목적지를 변경해야만 했었습니다.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함에 상심하고, 다른 전시를 보는 걸로 그 마음을 충족시킬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실수로 인해서 더 좋은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깔끔하게 짜인 스케줄도 좋지만, 여러분도 이번만큼은 캘린더에서 끌리는 이름의 전시를 선택해서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연한 만남이 행복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