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극장이라는 공간 속 또다른 공간이다. 작품에 따라 언제는 1980년대가 되고, 언제는 현대가 되며, 언제는 쌩판 모르는 사람의 집이 되기도 하고, 언제는 법정이 되기도 한다. 배우들의 연기의 배경이 되는 무대는 하나의 세트로 시공간적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한다. 무대는 그저 생동감을 살려 미적인 역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배우의 등퇴장로를 가려주고, 배우들의 동선에 걸리지 않아야 하며, 무대 위에서 큰 충격이 있더라도 버텨주어야 하는 등 무대는 중심이 되어준다. 그 뒤에는 무대 디자이너가 있다.
전공자는 아니지만, 건축학과를 다니며 여러 대학생 연극에서 무대 디자인과 제작 현장에 참여한 ‘한수연’님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무대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는 건축학과 한수연이라고 합니다.
Q. ‘무대 디자인’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무대 디자인’의 정의는 ‘작가와 연출가의 제작 의도에 맞게 무대 장치를 고안하고 도구들을 배치하는 일’이라고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무대 디자인을 통해 더 극대화하여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 시공간적 배경이 바뀌더라도 관객들의 집중을 깨지 않고 자연스럽게 허용되어야 하니깐요.
Q. 건축학과를 다니면서 무대 쪽으로 진로를 꿈꾸는 분들을 가끔 봤었는데, 수연님은 무대 디자이너의 진로를 위해 건축학과를 선택하신 쪽인가요, 아니면 건축학과에 들어와서 무대 디자이너를 진로로 삼기 시작하셨나요?
저는 원래 건축이 하고 싶어서 건축학과에 들어오게 됐어요. 중학생 때 안도 다다오 건축물에 매료되어 ‘건축가가 되어 나도 안도 다다오처럼 멋진 건축물을 만들고,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프리츠커 상 수상자가 되어야지!’라는 나름의 목표를 가졌었습니다. 그 후로도 건축 관련된 여러 활동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흥미가 생겼고, 이렇게 대학에서도 건축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Q. 그러면 건축학과에 재학하시면서 무대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가 궁금해요.
지킬앤 하이드에서 백스테이지 투어를 진행했었는데, 처음으로 가장 좋아하던 뮤지컬의 무대가 어떻게 배치되어 있고 움직이는지 알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 후로 연극 및 뮤지컬 동아리에서 무대 팀원부터 무대 감독까지 활동하면서 무대 디자인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Q. 무대 디자인을 하시면서 건축학도인 점이 도움이 된 부분이 있나요?
무대 디자인을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닌 건축학과에서 배운 렌더링, 모델링을 통해 체계적이고 정확한 무대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스케치업으로 3D를 활용하여 디자인을 진행해요. 또, 극장에서 현장에 있으면 도면을 볼 줄 알아야 한다던가, 오토 캐드를 사용할 일이 종종 있어요. 극장 내부, 무대뿐만 아니라 조명도 도면으로 표시되어 있거든요. 합판을 발주할 때에도 직접 제작 도면을 그린 뒤 모형 만들 때처럼 조립하는 경우도 있어요. 덕분에 제작 도면을 만들 때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Q. 거의 1:1 스케일의 모형을 만드는 느낌일 것 같아요. 그러면 무대를 제작할 때에는 주로 어떤 재료를 사용하나요?
학생들이 무대를 직접 만들어야 하는 동아리에서는 합판, 각재 등을 사용하고, 용접을 할 수 있는 팀원이 있다면 철재 각관을 사용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외에도 제작 재료는 다양하지만 작품과 연출에 따라 달라집니다.
Q. 계속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연님의 작업 스타일이 궁금해요. 무대 디자인과 제작은 보통 어떤 순서로 이루어지나요? 작업하실 때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모든 분들만의 디자인 방법이 다르지만, 저는 무대 디자인을 하기 전 대본을 분석합니다. 극에 나오는 장면을 쭉 나열하고 무대가 중요한 장면, 조명으로 공간적인 표현이 가능한 장면 등 구체적으로 분류를 하면서 대략적인 무대를 상상한 후 대본 상 나오지 않는 공백을 통해 장면을 잇습니다. 그래도 막힌다면 연출 분과 서로의 극에 대한 분석을 논의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Q. 짧은 기간동안 꽤 많은 작품을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으신가요?
딱 하나만 고르기 어렵네요(웃음). 매 공연마다 기억에 남는 특징점이 달라서요. 제가 다니는 학교의 뮤지컬전공 졸업 공연과 대학생연합연극동아리 ‘열림’에서 했던 작업이 유달리 기억에 많이 남네요. 졸업 공연은 처음으로 직접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교수님과 작업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계셔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었고, 결과적으로도 가장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열림’에서 공연했던 이강백 작가님의 작품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는 제가 3번째로 맡았던 작품이었는데 무대 감독의 역할을 겸하면서 무대 제작에 직접 참여해야 했기에 셋업 기간 동안 모두의 힘으로 하나의 작업을 하면서 팀원분들과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었어요. 처음으로 상상했던 디자인을 직접 시도해볼 수 있는 연출님의 지원과 예산이 있어 누군가에게 ‘내가 디자인하고 만든 무대’라고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작업들도 모두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지만 특히 이 두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Q. 무대 분야를 스스로 공부하시고 나서 직접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하셨을 때 정말 뿌듯했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작업하시면서 제일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그걸 어떻게 극복해 내셨는지도 궁금해요.
지식이 없어 아무것도 모를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건축학과를 재학하면서 무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려니 정작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얼마나 디테일하게 도면을 만들어야 하는지, 자재를 어떤 것을 사용해야 하는지, 예산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심지어는 디자인도 막막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었던 것 같습니다. 논문도 찾아 읽고 책으로도 공부를 해봤지만 이마저도 변수가 많은 실전에서 활용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희 학교에 계신 연극과 교수님께 수업 청강을 부탁드렸고, 열정 넘치시는 교수님 덕분에 제가 진행하는 뮤지컬 및 연극 무대에 대한 조언도 듣고, 위에 말했던 졸업 공연에도 참여해 보면서 지식을 쌓아갈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방법을 고안해 가느냐가 극복하는데 가장 큰 관건인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도 정보도 지식도 부족한 상태지만요(웃음). 저도 더욱 노력해서 이 문제를 완벽하게 극복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정도까지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Q. 쉽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요. 수연님은 후에 이 진로에 대해 생각해둔 목표가 있으신가요?
아직은 진로에 대한 정확한 목표를 잡지 않았습니다. 무대 디자인에서도 뮤지컬, 연극, 방송 등등 분야가 다양하다는 말을 들어 여러 경험을 통해 결정하고자 합니다. 궁극적인 목표로는 ‘많은 작품을 디자인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인데… 이건 너무 두루뭉실한 답변일까요?(웃음)
사실 정말 존경하고 닮고 싶은 교수님이 계시는데, 그 교수님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거나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수연님의 무대 이야기 정말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신가요?
어떤 진로를 희망하던 하고자 하는 열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많이 미숙하기에 무대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직업이라 할 수 있는 단계에 올라가기 위해 공부도 하고 경험도 많이 쌓고 있으니까요. 전공이 아니라서, 어려울 것 같아서, 해본 적이 없어서 등 ‘~서’라는 가정의 말로는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원하는 것을 얻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라고 하기보다는 언제든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하얀 도화지나 화이트보드라고 생각하며 저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사실 이번 인터뷰도 제가 전공자가 아니며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도전이고 경험이라는 생각에 오랜 고민 끝에 시도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전공자가 아닌데 무작정 뛰어들어도 될까? 잘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망설였던 과거의 제 자신에게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 ‘그래도 옳은 선택이었다,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 인터뷰에 응하길 잘 한 것 같습니다. 좋은 시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