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건축 탐방기 ② 대만 근대 건축 편 – 상

INTRO

중국 본토에서부터 약 1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대만은 민족적으로나 문화적, 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으나, 대만 자체의 역사는 1912년에 건국된 이후 약 1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한국이나 중국, 일본과 같이 오랜 세월을 간직한 고건축이 매우 적은 편입니다. 때문에, 현재 대만에서 볼 수 있는 오래된 건축물들은 대다수 일본에 의해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입니다.

* TMI : 대만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

이번 탐방기는 대만의 근대 시기(19세기~20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을 함께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 본 탐방기는 날짜의 순서와 관계없이 여행 중, 마주친 대만의 건축물들을 분류에 따라 소개 드립니다.

1.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용산사

용산사 정문의 모습

타이베이의 중심지인 시먼에서부터 걸어서 약 15분, 반난 라인(BL Line) 용산사 역에 내려 다다를 수 있는 용산사’.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릴 정도로 대만에서 가장 유명하고 역사가 깊은 사찰입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사찰이나, 일본의 사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중국의 사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습니다. 1738년 청나라 시절, 본토에서 이주한 푸젠 성의 이주민들에 의해 건립되어 현존하는 대만의 사찰 중 가장 오래된 사찰입니다.

용산사의 중전(대웅전)

지붕이나 담벼락, 기둥 등에는 화려하고 다양한 문양의 조각과 그림들이 장식되어 특유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용산사가 단순한 불교 사찰이 아닌 도교, 토속신앙 등 다양한 종교의 100여 명의 신을 섬기고 있는 사찰이기 때문에 각 종교에서 나타나는 신의 형태나 상징물 등이 사찰의 곳곳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용산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화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용의 장식물이 지붕이나 기둥 등에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붕의 장식은 도자기, 기둥은 구리 주조, 천장 장식 등은 목재로 되어 용산사에서 다루는 종교 각각의 이야기와 신성함 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회나 성당에서 벽화나 조각으로 교리의 내용들을 나타내는 것과 같이, 불교나 도교 역시 신성시하는 존재들을 조각이나 그림, 색상 등으로 묘사하여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종교의 교리를 전하고,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용산사의 평면도

용산사는 청나라에서 대만 본토로 이주한 한족이 ‘단수이 강(타이베이에서 한강과 같은 강)’을 따라 처음 정착한 ‘완화’ 지역에 정착하여 세운 사찰로, 이주 당시 건강과 안녕을 빌기 위해 중국 본토에 있는 ‘용산사’에서 얻은 향나무 주머니를 인근에 내걸기 시작하였고, 이곳에 1783년 사찰을 건립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습니다.

즉, 용산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닌, 대만 이주의 시작점이자 거점으로서 이주민들의 만년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서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때문에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불교 외에도 도교나 유교, 토속신앙을 모두 기리는 명소로 상징성이 높은 건축물입니다.

3진 4합식이 적용된 용산사의 구성과 각 건물의 명칭

중국 본토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용산사는 중국 고건축의 ‘3진 4합’식 궁궐 양식으로 배치가 구성되어 있지만, 지속적인 증축과 개축의 과정 중 서양의 영향을 일부 수렴하여 일반적인 중화식 사찰에서 볼 수 없는 부분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유럽식 적벽돌과 창호가 적용되어 있는 용산사의 서측 행랑
유럽식 박공지붕이 적용되어 있는 용산사의 동측 행랑 (유리건물 앞)

용산사의 중심을 기준으로 양옆의 행랑의 벽과 지붕은 유럽에서 영향을 받아 각각 석재 기단 위 적색 벽돌식으로 벽을 두르고 있으며, 서양식 박공지붕에 영향을 받은 형태의 지붕이 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용산사는 대만 사찰 건축의 표준이 되어 대만 각지의 사찰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중전(대웅전) 내부에 있는 ‘관세음보살상’

용산사의 중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오인 폭격으로 인해 소실되었는데, 중전(대웅전)에 있던 관세음 보살상은 그을림 외에 전혀 손상되지 않아 현재까지 평화와 안녕의 상징으로서 숭배하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 세월에 걸쳐 증개축이 이뤄지던 후 현재의 배치를 가지게 된 것은 1920년 천주사의 명장인 왕이순이 설계하고 건축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 소실된 이후, 1957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 현재의 용산사의 모습입니다.

중전(대웅전)의 좌측에 위치한 ‘고루(북이 있는 루)’

현재는 대만 현지인과 관광객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사찰이며, 처음 한족이 대만에 정착을 하기 시작하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대만인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타이베이 도심 속에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 용산사(longshan Temple)

– No. 211, Guangzhou St, Wanhua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853

– MRT 반난선(BL Line) 용산사역

– 오전 06시 ~ 오후 21시 45분

2. 청나라, 일제강점기, 중화민국의 이야기가 담긴 보피랴오 거리

보피랴오 거리의 광장

용산사에서 걸어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보피랴오거리’는 청나라 시기, 이민자들이 용산사를 설립하고 주변에 모여 살기 시작하며 형성된 거리로, 청나라 → 일제강점기 → 중화민국까지 3개의 시기를 거치며 각 시기의 건축적 특징과 인문적인 요소들이 융합된 장소입니다.

‘보피랴오’라는 명칭은 ‘랴오’는 중국어로 작은 오두막이나 판잣집을 의미하는데 초기 이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한 청나라 때, 이 지역은 일반적으로 행운이나 좋은 길을 의미하는 ‘푸피랴오’로 불리게 됩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 기간 동안, ‘베이피랴오’로 변경, (중국어로 ‘베이’는 ‘북쪽’을 의미) 이후 기존의 명칭인 ‘푸피랴오’와 ‘베이피랴오’의 명칭이 합쳐지게 되어 ‘보피랴오’로 굳혀지게 됩니다.

청나라 시기의 건축은 이전 한족이 통치하던 명나라 시기의 건축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고대부터 오랜 시기 중국 대륙을 다스리던 한족에 비해 중국 대륙 외곽의 이민족 출신이라는 점에 타민족을 배타적으로 여겼던 한족과 달리 주변 타민족의 국가로부터 건축적 영향을 관용적으로 받아들여 청나라만의 양식을 구현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청나라 시기의 건축양식들로 구성되어 있어, 당시의 거리의 모습과 함께 시대상과 삶의 흔적들을 함께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보피랴오 거리의 특징입니다. 목조건축이 주를 이루던 청나라 시기에서 보피랴오 거리가 생겨나던 청나라 후반에는 서양의 영향으로 인해 목조양식과 혼재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조적식과 목구조가 혼재되어 있는 모습

보피랴오 거리의 건물들을 살펴보면, 건물의 입면에서 전면으로 돌출되어 있는 기둥이나 맞벽 혹은 합벽(대만 건축 탐방기 1편 참고)으로 되어 있는 벽면은 벽돌 혹은 석재로 쌓아 올린 조적 방식이나, 대들보나 지붕과 같은 부분은 청나라의 구성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전면부의 아케이드를 충분히 확보하여 비를 피하거나 가판대를 설치하여 상점 내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등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콘크리트나 서양식으로 만든 석조 건축물들을 보피랴오 거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일부 건축물의 경우 다양한 재료나 건축방식이 혼재, 이는 여러 세월에 걸쳐 각 시기의 재료와 양식이 더해지며 나타나게 된 것으로, 초기 청나라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과 함께 보피랴오 거리의 다양한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현재의 보피랴오 거리는 20세기의 세계대전과 타이베이의 도시화로 인해 장시간 방치되어 잊히던 장소였으나, 2003년 대만 정부의 발굴 및 복원 사업을 통해 2009년 대중에게 새롭게 공개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지역주민들에게는 과거의 이야기를 간직한 추억의 거리로, 대만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대만의 문화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보피랴오 거리는 과거에 이어 현재에도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대만 초기의 역사와 이야기를 용산사와 보피랴오 거리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 보피랴오 역사 거리 (Bopiliao Historic Block)

– Lane 173, Kangding Rd, Wanhua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8

– MRT 반난선(BL Line) 용산사역에서 3분

– 오전 09시 ~ 오후 18시, 매주 월요일 휴무

OUTRO

대만 이주의 시작인 용산사부터 대만 근대기의 역사가 담긴 보피랴오 거리를 통해 대만의 초석을 살펴보았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혼란한 시기를 겪으며 역사의 굴곡이 다양한 만큼, 대만의 근대 건축물들을 살펴보면 그 속에 담겨 있는 여러 이야기들을 함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대만의 근대 건축 이야기 중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