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건축 탐방기 ① 대만 로컬 건축편

대만 건축 탐방기 ① 대만 로컬 건축편

한국에서 남서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약 2시간 반 거리에 떨어져 있는 ‘대만(타이완)’. 중화민족이 중국 본토로부터 이주하여 형성된 이곳은 기존 원주민부터 유럽열강의 식민지, 중화민족,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다양한 문화와 영향이 끼쳐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들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건축은 지역 문화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과연 대만에서는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지 살펴보기 위해 대만으로 가보았습니다.

ABOUT TAIWAN

한국(부산)에서 대만(타이베이)의 거리

먼저 대만은 남중국해에 위치한 36,000㎢ 면적, 약 2천 3백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섬나라로, 섬의 북쪽에 위치한 ‘타이베이’를 수도로 삼고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중국에서 이주한 ‘한족’이 대다수로 언어, 문자, 종교 등 중화권 문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대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부터, 17세기의 네덜란드의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외래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19세기에는 일본제국의 식민통치로 현대화를 진행하며, 일본식의 건축물과 도시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계대전 이후에는 중국 본토에서부터 이주한 한족의 문화가 스며들며 원주민, 식민지시대와 함께 다양한 문화와 양식이 뒤섞여 현재의 대만을 만들어 낸 것이 대만의 특징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대만의 건축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본 탐방기는 날짜의 순서와 관계없이 여행 중, 마주친 대만의 건축물들을 분류에 따라 소개드립니다.

* 로컬 편, 과거 편, 현대 편으로 이어집니다.

FLY to TAIWAN

김해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의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출발, 약 2시간 반 정도의 비행 후면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 도착합니다.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타이베이 중앙역까지는 공항철도를 타고 약 45분을 이동하게 됩니다.

타이베이 공항철도의 창을 통해 처음 마주하는 대만 타이베이의 모습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과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모습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GATE of Taipei : 타이베이 중앙역

타이베이 중앙역의 메인 입구

타이베이에 도달하면 가장 먼저 방문자들을 맞이하는 ‘타이베이 중앙역’은 MRT(타이베이 지하철) 노선을 포함하여, 보통열차, 고속열차가 정차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하루 평균 65만여 명의 열차 탑승객이 오가는 거대한 시설입니다.

1989년 개장할 당시의 타이베이 중앙역

1891년 처음 역이 신설된 이후, 1989년까지 총 5번의 변화로 지금과 같은 외관을 가지게 되었고, 2010년 리모델링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89년 새롭게 재건축을 하며, 타이베이 개발에 방해가 되었던 지상의 기차선로를 모두 지하에 재배치하며 지상에서 자유로운 평면과 배치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외관은 직사각형의 평면을 따라 거대한 경사지붕의 형태로 구성되어 중화권에서 쉽게 묘사되는 거대하고 상징적이며 대칭을 이루는 형태의 양식으로 건축되어 있습니다.

타이페이 중앙역 개념 다이어그램 (출처 : 대만 관광청)
역 중앙의 실내 광장과 유리지붕

수많은 이용객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타이베이 중앙역의 내부는 가운데 실내 광장을 두고 이를 중점으로 ‘ㅁ’자로 공간을 둘러 광장에서 모여 각 구역으로 뻗어 나아갈 수 있는 구성으로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실내 광장에는 거대한 천창을 두어 거대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1층 실내광장에서 바라본 타이베이 중앙역

1층 실내 광장의 매표소를 제외한 모든 철도 시설들은 지하에 배치하고 1층~2층에는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이 입점하여 기차역을 방문한 방문객들이 열차를 이용하기 위한 이용객들과 동선이 겹쳐서 혼선이 발생되지 않도록 구성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만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이고 복잡한 지하의 교통 시설들과 달리, 1층과 2층의 지상 공간에서는 보다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타이베이 중앙역에는 한 가지 진풍경을 볼 수 있는데, 넓은 공간에 비해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나 쉼터가 없어 1층의 실내 광장이나 역의 여기저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바닥에 그냥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장시간 의자를 점유하는 사람들 때문에 의자를 없앴다고 하나, 방문객들이 다소 불편을 느끼게 된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중국? 일본? 유럽? 건축의 비빔밥과 같은 대만 건축

대만은 지리적으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 지역으로, 비가 자주내리고 연중 흐린 날이 많은 나라입니다. 또한 인도양과 태평양이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중국이나 일본, 해상 무역로를 이용하는 유럽까지 다양한 국가의 영향을 받아와 이들의 특색이 융합되어 대만만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타이베이의 중심지 ‘시먼(Ximen)’의 길거리

때문에 대만의 특정한 양식이 나타나는 건축물이 아닌, 로컬 건축물들을 살펴보면 중국이나 홍콩에서 본 듯한 모습이나, 일본의 모습 혹은 간간히 유럽의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현대 대만의 로컬 건축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19세기 말 ~ 20세기 중순의 일본의 강제 통치 시절이로서, 일본으로 인한 도시 및 건축에서의 현대화가 이뤄지게 되었고 기존 전통 중국 방식의 건축과 도시 구성에서 중국(대만) + 현대도시계획이 혼용된 도시 구성으로 점차 바뀌게 됩니다.

1) 도시의 구성

위의 지도들을 확인해보면 전통 중국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던 청나라 말기 (19세기 말)에서는 도시의 구획이 다소 정비가 되어 있지 않고, 도시를 두르고 있던 성벽의 안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어 현대의 도시와 달리 폐쇄적인 형태의 도시로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일제는 대만을 점거하면서 기존 전통 중국식의 도시 구획을 대수선하게 됩니다.

일제는 이시기 독일로부터 현대적인 건축방식과 도시 구성 방식을 채택하여 식민지인 조선과 대만에서 도시화의 실험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일제는 대만 타이베이의 시가지에 기하학적인 패턴의 도시 구조와 함께 수도, 철도, 통신망, 위생시설 등의 도시 기반시설들을 마련하였고, 현재 대만의 기본적인 기반 시설 또한 당시 건설된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1930년에 들어서는 주도로와 간선도로가 구분되고, 각 도로가 교차되는 지점에는 회전방식의 교차로 시스템이 구축, 철도망 또한 구체화되며 현대 도시 체계로 상당부분 접어들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1952년 일제로부터 광복 이후의 지도를 살펴보면 주도로와 간선도로에서부터 뻗어져 나온 길과 골목들이 설치된 것 이외 일제 때에 형성된 도시의 형태가 어느 정도 자리 잡히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죠.

현재의 타이베이 중앙역 인근 지도의 모습

현재의 지도와 함께 살펴보면, 1930년 일제가 작성한 도시 구성에서 큰 변화가 없이 타이베이 중앙역과 중앙역의 아래를 지나는 주도로, 도로가 교차되는 교차로까지 9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통해 현대의 대만 건축은 일본으로부터의 많은 영향을 받아 현재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지도에서의 노란 주(main)도로와 현대 지도에서의 노란 주도로가 일치한다)

이러한 과정으로 대만의 도시 구성(레이아웃)은 기존 대만에 있던 전통 중국식 도시 구성에 유럽에서부터 영향을 받은 일본이 도시의 재구성을 하게 됨으로서, 중국 + 유럽 + 일본의 영향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2) 합벽건축 & 맞벽건축 그리고 샹젤리제 in Taiwan

타이베이의 중심지 ‘시먼(Ximen)’의 길거리

대만에 처음 도착하여 길거리를 보았을 때 매우 인상 깊었던 것은 길거리에 있는 상당수의 건물들이 ‘합벽건축’과 ‘맞벽건축’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였습니다. 여기서 ‘합벽건축’과 ‘맞벽건축’이란, 도시미관 등을 고려하여 인접하고 있는 두 개 이상의 건축물이 50cm 이하로 근접하고 있거나, 붙어있는 형식을 의미합니다.

맞벽건축과 (좌), 합벽건축 (우)

한국에서는 ‘민법’에서 이웃 간의 관계를 고려하여 대지경계선에서부터 최소 50cm를 이격시켜야 하는데, ‘맞벽 건축’은 50cm 이내로 건축한 것이며, ‘합벽 건축’은 두 건물을 붙여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건축은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을 줄여 가로구획을 정리하며 동시에 토지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외에도 옥외 광고를 위한 용도나, 도시화로 인해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측면으로도 적용되었으며 유럽이나, 아메리카, 동아시아 등 각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맞벽, 합벽 건축으로 지어진 건물들과 저층부의 보행 공간

다시 돌아가서 대만의 길거리들을 보면 저층건물부터 고층건물까지 대다수가 맞벽 혹은 합벽 건축 방식으로 건축되어 있고, 보행로 확보를 위한 건축한계선이 있는 한국의 건축과 달리, 보행로를 건물의 저층부에 확보한 후, 중층부~상층부가 그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양식은 최신식 대만의 현대건축에서도, 백년이 지난 근대 건축에서도 나타나는데, 이는 대만의 지리적 요인과 근대화의 과정에서 나타난 도시화 정책에 의한 영향으로서 나타나는 양식입니다.

먼저 지리적인 요인으로서 해양성 기후인 대만은 날씨가 흐린 날이 잦고, 비가 자주 내려 도시 생활에 불편한 점이 발생, 이에 적응하여 저층부에 보행로를 만드는 것으로 비가 갑자기 내리더라도 거리의 건물이 비를 막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도시가 구성되었습니다. 실제 대만을 방문하였을 때에도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외에는 비를 맞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현대에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물은 이를 보다 활용하여, 저층부의 층고를 높여 입점하는 상가들이 눈에 잘 보일 수 있게 유도하며,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곳을 ‘캔틸레버(cantilever)’를 통해 개방함으로서 미관적인 부분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일제 강점기 시기, 대만에 설치되었던 일본의 건축국은 새로운 일본(식민지 대만)의 거리를 보다 계획적이고 우수한 형태로 형성하고자 하였고, 당대 유명한 프랑스의 ‘샹젤리제 거리를 참고하는 ‘샹젤리제 샘플링 프로젝트’를 시행하게 됩니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처럼 구성하기 위해 앞서 말한 ‘맞벽 건축’, ‘합벽 건축’을 통한 가로 구획의 획일화를 하며, 도시의 미관을 정비하였고, 바로크 양식의 디자인을 적용하여 화려하고 세련된 도시를 구축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타이페이의 중심거리였던 ‘중산(中山)’ 거리에서 시작되어 타이페이의 여기저기에 적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OUTRO

여러 과정을 통해 대만은 대만만의 고유한 스타일과 스토리를 형성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과거의 모습과 현대의 모습을 골고루 갖춘 도시가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과 비슷하게 식민지 시대와 국공내전을 겪었고, 21세기에 접어들어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매우 현대적인 도시를 구성하게 된 대만.

여행을 다니며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로컬의 이야기들이 어쩌면 도시의 랜드마크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고, 우리에게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대만의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