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기지에 찾아온 소중한 평화 ‘평화문화진지’

들어가는 말

처음 방문하는 평화문화진지의 첫인상은 이름 그대로 참 평화롭다는 것이었다. 넓은 부지를 길게 가르는 목재 파사드는 도봉산의 경치를 가리지 않고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져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했는데 이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웃음소리, 지나가는 전철 소리, 여유롭게 대화하는 사람들의 소리들이 모여서 이 공간을 평화롭게 만들고 있었다.

평화문화진지의 역사

이 장소는 과거 조선시대 때 누원(다락원)으로 당시 나랏일로 여행하는 관리들이 쉬거나 잠을 잘 수 있는 공공 숙박시설로 사용되었다. 이 장소가 서울 북쪽을 잇는 통로로써 예로부터 많은 기록들이 남아있는 중요한 길목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북한군의 재침공을 대비하여 유사시 서울 도심으로 가는 길목을 끊는 목적으로 대전차 방호시설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 위에는 시민 아파트가 지어졌는데 당시 서울의 인구 집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민 아파트 건설 정책과 군사 정책이 결합되면서 1층은 군사시설, 2층부터 4층까지는 180세대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형태를 취하는 독특한 시설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시민아파트는 2004년 안전진단 등급에서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철거되었고, 결국 1층 군사시설만 남은 채 10년 이상 방치되었다.

이곳을 더 이상 방치하고 싶지 않았던 마을 주민들의 요구로 2014년 7월 대전차 방호시설의 문화공간 재생 방안이 논의되었고 2016년 12월에 대전차방호시설 리모델링을 위한 협약이 체결되고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렇게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대전차 방호시설은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되었고 지금은 평화의 상징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었다.

자료 출처 : 평화문화진지 홈페이지

평화문화진지 공간 소개

기존의 대전차 방호시설은 ㄷ자 모양의 작전 공간(전차 위장 공간/사격 공간)과 지원시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공간에서 지원시설을 비우고 전면에 새 공간을 마련하여 ㅁ자 모양의 건물로 바꾸는 것이 평화문화진지 공간설계의 기본 방향이었다. ㅁ자 가운데의 중정은 옛 군사시설과 새 문화창작 시설 사이에 만들어졌다. 중정끼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그 위로 옥상휴게공간도 서로 이어지게 설계되었다. 중정마다 옥상휴게공간으로 갈 수 있는 계단이 위치해 전체적으로 연결된 공간이 완성되었다. 옥상은 또 신설도로 보행로로 이어지고 군사시설이었던 지하통로는 신설도로 하부를 통해 중랑천으로 연결되었다. “분리에서 통합으로”라는 평화의 메시지가 공간의 설계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 출처 : 코어 건축 사무소/ 평화문화진지 홈페이지>

답사기

1. 입구&베를린 장벽

도봉산역 1-1번 출구로 나와 쭉 걸어가면 보이는 평화문화기지. 넓은 들판과 도봉산 그리고 길쭉하게 이어지는 목재 파사드가 어우러져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앞쪽에는 새로 만들어진 창작 공간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작품 활동이나 문화수업 등을 진행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창작공간 사이사이에 뒤쪽으로 통하는 공간으로 ㅁ자 중정과 옥상을 갈 수 있다.

왼쪽 사진에서 보이는 베를린 장벽은 2016년 독일의 개인 사업가 ‘엘마어 프로스트’가 무상 기증한 5개 중 3개다. 그는 지금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 장벽을 기증하면서 한국의 통일과 평화를 염원했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은 ‘평화울림터’로 이어지는 입구이자 통로 공간으로 천정에 초입에서 보았던 상징물처럼 알록달록한 컬러로 꾸며져 있었다.

2. 평화울림터

‘평화울림터’는 공공기관 최초로 별도의 음향시설 없이 소리 반사 효과만으로 공연이 가능한 자연친화적 공연시설이다. 원형 형태의 공연장은 지상에서 움푹 들어가 있었다. 가운데에 있는 소리 반사판 위에 서서 말을 하면 소리가 공간에서 울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평화울림터’로 내려가는 진입로 ‘평화의 물길’. 중앙에 설치된 19개의 포신은 6.25 전쟁의 당사자인 남과 북을 포함한 19개 나라들을 상징하며 반으로 절개된 포신은 무기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3. 중정&옥상

이곳이 바로 기존의 대전차 방호시설의 작전 공간과 창작공간 사이에 중정으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이곳은 새로 지어진 창작공간에 비해 세월의 흔적이 잘 보였다. 폭이 넓지 않았음에도 연결된 구조에 천장이 개방되어 있어서 그런지 답답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래된 콘크리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예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소인 것 같다. 중정마다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철제 계단이 있어서 공간 이동이 자유로운 것도 재미있는 요소이다.

옥상도 전부 이어져 산책하기 좋도록 되어있었다. 아래의 사진들은 반대쪽 건물 벽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4. 진지한 책방&전시

이곳에서는 주민들을 위한 ‘진지한 책방’이 운영되고 있다. 다양한 책들이 있어서 가족끼리 함께 와서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은 공간이다. 안쪽에는 평화문화진지 역사와 관련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주민들이 이곳을 방문해서 전시를 보고 이 지역과 평화문화진지라는 공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된 것 같아서 좋았다.

글을 마무리하며

이번 평화문화진지를 조사하고 또 답사하면서 이런 사례가 정말 좋은 도시 재생의 사례라고 느끼게 되었다.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를 가진 대전차방호시설이 주민들을 위한 쉼터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들었고 또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함께했다. 그 덕분에 이제 이곳은 주민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울려펴지는 평화의 상징 같은 공간이 되었다. 예전의 모습이 남아있는 평화문화진지를 보면서 우리는 과거에 이곳이 전쟁을 위한 군사시설이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