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식물 : 초록빛으로 물들다

식물은 공기 정화뿐만 아니라 실내 분위기를 완전히 변화시켜주기도 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제공하기도 한다. 1인 가족이 증가하고, 심리적인 건강의 중요성이 도드라지자 반려 식물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 식물로 실내를 꾸민다는 뜻으로 식물(plant)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인 ‘플랜테리어 (planterior)’가 유행하고 있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초록빛으로 안정을 얻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개성 있는 플랜테리어를 엿볼 수 있는 각기 다른 공간 세 곳을 준비했다.

ㅣ식물과 공간, 공간과 화기의 조화

“틸테이블은 화기를 디자인할 때 공간과 식물을 염두에 두며, 식물을 디자인할 때 화기와 공간과의 조화를 생각합니다.” – 틸테이블 공식 홈페이지 소개 中

‘틸테이블’은 녹색을 띠는 청색 ‘Teal’과 모든 역사가 시작되는 곳, ‘Table’을 합친 말이다. 가드닝과 플랜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브랜드인 틸테이블은 식물에 디자인을 접목해 품종, 수형, 흙과 부자재, 화기까지의 조화를 이룬 ‘디자인 식물’을 선보인다. 이런 틸테이블만의 섬세하고 개성 있는 플랜테리어를 엿볼 수 있는 틸테이블 쇼룸에 방문했다.

틸테이블은 매년 캐치프레이즈를 설정해 그에 맞게 쇼룸을 디자인한다. 이번 캐치프레이즈는 ‘NO PLANTS, NO PLANET’으로 최근 두드러진 환경 문제에 발맞춰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연구자의 연구실’ 콘셉트로 플랜테리어를 시도했다. 환경 파괴의 원인인 인간의 무분별한 생산 활동을 비판하며 지속 가능한 소재 사용을 제시하고, 환경친화적인 개발, 식물과의 공존을 목표로 삼았다.

공간은 전체적으로 천장이 높게 설계되어 있고 이를 이용하여 식물을 높은 곳까지 배치하여, 정말 식물로 파묻힌 듯한 느낌을 준다. 미색 벽에 우거진 초록빛과 어우러진 철제 가구는 공간에 편안함을 준다. 곳곳 실내 벽에 보이는 창은 다음 공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창뿐만 아니라 위층의 낮은 벽 위로 보이는 식물들은 한층 초록빛을 더해준다.

1층에서는 식물과 화기 뿐만 아니라 가드닝에 필요한 제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틸테이블은 본래에도 화기도 자연의 일부여야 식물에게 가장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철학으로 천연 재료를 엄선해 화기를 만든다. 이번엔 콘셉트에 맞춰 도자기 생산 시설에서 발생하는 산업폐기물을 재활용한 재생 점토 화기, 플라스틱을 재활용한 화기 등 친환경 화기를 선보였다.

반 층을 올라가 오른 편을 살펴보면 1층의 식물에 뒤덮인 느낌보다는 식물을 공부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식물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식물과 잘 어울리는 생활 제품들과 틸테이블과 콜라보 한 의류를 판매하고 있다. 가드닝을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책도 함께 판매하고 있다. 꼭 가드닝이나 식물을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도 생활소품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둘러봐도 좋을 것 같다.

반 층을 올라와 한 바퀴를 돌게 될 때 거치게 되는 ‘아이디어룸’. 특정 누군가만이 연구자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한 노력을 함께할 우리 모두가 연구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중앙에는 연구 대상인듯한 돌과 이끼가 철제 가구에 담겨있고, 옆 선반에는 실험용 실린더와 비커에 식물과 흙, 돌이 담겨있다. 정말로 내가 연구자가 된 느낌을 주는, 틸테이블의 연구실 콘셉트가 가장 와닿는 공간이다.

계단의 왼편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초록빛 식물들 사이에 주황빛 철제 피크닉 테이블이 있다. 초록색과 주황색은 보색 관계이기 때문에, 대비가 더 강하게 느껴지면서 경쾌함과 활기를 불어 넣어준다. 더 왼편으로 나아가면 야외정원과 연결되어 진정한 휴식을 느끼게 해준다. 지하철역과 차도가 가까워 도시 소음이 큰 곳이지만, 그 소음이 배경이 되어 도심 속 식물과 공존하는 일상을 경험할 수 있다.

사람과 식물이 함께 쉬는 고유한 경험의 공간

플랜테리어를 담당하는 브랜드의 쇼룸을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플랜테리어가 적용된 생활 공간을 살펴보자. 언뜻 보면 식물원의 유리온실처럼 보이는 이곳은 수서동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식물관 PH’이다. 비슷한 매스 두 개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는 유리온실, 하나는 패널 외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복합문화공간인 만큼 유리로 이루어진 2층 매스는 카페 공간을 담당하며, 패널로 이루어진 4층 매스는 전시 공간과 계단실을 담당하고 있다.

입구에는 특이하게도 석재에 가게 이름이 새겨져있고, 옆 철문에 있는 돌이 문 손잡이다.

식물관 PH는 주목적이 카페가 아닌 ‘사람과 식물이 함께 쉬는 고유한 경험의 공간’이다. 단순히 음료를 주문하여 휴식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입장료를 내면 원하는 때에 음료를 제공해 준다. 도심 속에서 충분히 누리기 어려운 햇빛과 식물을 유리온실에서 마음껏 누리며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1층의 가구와 화분들은 철재로 곡선 또는 크기와 높이만 다른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곡선과 단순한 형태의 반복은 수많은 식물들의 각기 다른 잎모양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테이블의 위치 또한 식물로 둘러싸인 자리, 통창에 가까워 바깥을 즐기며 식물을 볼 수 있는 자리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천장에는 해를 떠올리는 듯한 조명이 하늘과 어우러져 있다.

1층에는 카페 공간 외에도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 있다. 식물원 속 나비정원같이 온실 내에 또 온실을 배치해 식물과 함께 하는 전시 공간을 만들어냈다. 카페 공간에 비해 비교적 작은 식물들이 작품과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쪽에 배치된 작은 외부 마당은 담장을 통해 옆 산과의 경계를 만들어주면서 아늑한 느낌을 준다.

1층과 2층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층은 ㅁ자 라운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을 내려다보면서도 ㅁ자 가운데를 통해 1층에 있는 식물들의 높이를 실감할 수 있다. 1층과 다르게 2층은 수직적으로 뻗어있는 사각기둥 사이에 사각형의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3층은 전시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던 1,2층과 달리 문을 통해 공간을 분리하였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도 시야가 자연을 향하도록 통창이 설치되어 있다. 전시를 관람하면서도 서쪽의 숲을 볼 수 있도록 큰 창문과 테라스 공간을 만들었다.

4층은 프로젝트 공간으로 현재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원래 사무실 및 다양한 세미나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3층과 다른 시야를 제공하기 위한 동쪽 도시 풍경을 관람할 수 있는 전망공간이 설치되어 있었고, 간접조명은 은은하게 햇빛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현재는 가운데에 휴식을 위한 의자가 놓여져 있지만, 원래는 우측의 전시 테이블이 가운데에 있고, 양쪽으로 의자들이 있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플랜테리어

이번 소개할 곳은 인테리어를 위한 식물이 아니라, 식용을 위한 식물로 이루어져 있다. 압구정에 위치한 ‘식물성 도산’은 스마트 팜을 운영하는 기업 엔씽(N.Thing)의 쇼룸이다. 스마트 팜이란 첨단 시설과 기술을 결합해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온실로, 외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 스마트 팜을 소비자들이 쉽게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카페에 접목시켰다.

‘식물성’의 브랜드 스토리는 독특하다. 인류의 새 미래로 비유되는 상징적 공간인 화성과 지구 사이에 있는 신선함의 별이라는 콘셉트로, 미래지향적인 방법으로 재배된 신선한 채소를 맛볼 수 있다. 식물성은 채소를 주제로 한 새로운 기술, 제품, 콘텐츠로 채소의 가치와 본질을 재조명해 세상 모든 곳에 신선함이 존재하게 한다. 이 신선함은 채소를 넘어 개인 고유의 신선함과 본질까지 퍼져나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타인의 본질도 바라보는 것이 목표이다.

눈앞에는 수경재배식물이 보이고, 내가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에는 수직 농업으로 재배된 채소가 들어간다. 맞춤 환경에서 자란 신선한 채소를 쇼룸에서 직접 보고, 구입해서 코와 입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직접 키워볼 수 있는 수경재배 키트와 스마트 팜에서 자란 채소 다발을 구입할 수 있다.

인테리어를 살펴보면 바닥과 곳곳에 놓인 돌들이 모두 붉은색이다. 이는 화성의 붉은 모래를 연상시키는 오브제이다. 재배실 앞에는 계속해서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도 볼 수 있는데, 이는 궤도를 돌고 있는 행성을 연상시킨다. 또한, 같은 색상이라도 아크릴 등으로 재료를 변경해 새로운 느낌을 준다.

ㅣ번외 : 플랜테리어가 스틸을 사랑한 이유

식물로 인테리어를 한다면 목재 가구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상외로 해당 공간들의 플랜테리어를 쭉 살펴보면 스테인리스 스틸 가구가 식물과 자주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스테인리스 스틸은 본래 날렵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화이트 벽에 스테인리스 스틸 가구를 배치한다면, 완전히 차가운 무채색의 공간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 식물을 배치한다면 공간의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뀐다. 식물의 초록빛이 공간을 더 생기있게 하면서도 무채색의 스테인리스, 화이트 벽이 초록빛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우드를 사용한다고 해서 플랜테리어에서 옥에 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간의 목적과 원하는 분위기의 차이이다. 우드를 사용하면 자연을 연상시키고, 따뜻한 빈티지 무드를 느낄 수 있다. 다만 식물의 초록빛을 살리는 것은 무채색의 배경에 식물을 배치한 것보다 덜할 것이다. 위의 세 공간은 상업적 공간이면서 식물의 색감을 살리는 것이 주목적이었기에 무채색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글을 마치며

플랜테리어 브랜드의 쇼룸, 식물과의 휴식을 위한 복합문화공간, 스마트 팜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미래지향적 카페까지 둘러보았다. 자연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고, 그 속에서 식물은 중심의 역할을 한다. 식물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와 공존하며 살아갈 것이며 우리의 삶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렇게 식물과 공존하는 삶을 추구하는 ‘플랜테리어’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중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휴식이 필요하다면 플랜테리어 속에서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물든 힐링을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