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건축‘에 대하여 : 정해욱 대표 인터뷰 2편

’가상-건축‘에 대하여 : 정해욱 대표 인터뷰 2편

정해욱 대표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공업디자인을, 독일 슈테델슐레에서 건축 석사를 전공했다. 조앤파트너스와 독일 schneider+schumacher를 거쳐 현재는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Milan)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연주와 함께 미드데이(Midday)라는 디자인 스튜디오의 공동대표이며 AAPK라는 건축가 집단에 소속되어 <가상-건축 Architecture as Fabulated Reality>를 출판했다.

본 인터뷰는 AAPK와 가상성 담론을 다룬 1편에 이어서 정해욱 대표님의 건축관과 미드데이의 활동을 다룬다.

에스테틱

진: 책에서는 에스테틱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여러 담론들을 건축가 개인의 에스테틱 페티쉬를 위한 알리바이라고 하셨어요.

정: 네. 그렇게 되어버렸죠. 심지어 더 그렇게 되어버렸죠.

진: 에스테틱에 대한 관점으로 고 정기용 건축가님을 재조명한 텍스트가 인상 깊었습니다. 모두가 정기용 건축가님에 대해서 사회적이고 민주적이라는 등의 윤리적인 관점을 취하시는데 특이하게 조형을 짚으시고 더 주목하셨어요.

정: 네. 누가 봐도 초창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조형 언어를 굉장히 적극적으로 차용을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의미에 집중해요. 저는 이게 인간의 사회적 본능 같아요. 과거의 예를 들면, ‘이 아이는 용모가 단정하니까 공부를 잘할 것 같아’ 같은 게 대표적이죠. 보이는 미에 의미가 있고 둘이 서로 상관있을 거라 믿어요. 물론 이제는 이 둘이 상관없을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요. 하지만 과거에는 두발 불량이나 문신 등을 하게 될 때까지 되게 많은 감정적인 도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던 거거든요. 바꿔서 말하면 미적인 효과를 얻기가 굉장히 어렵던 시절에는 작은 미적인 효과가 되게 많은 상징을 갖게 되고, 사람들은 그거에 대해서 해석과 의미 부여를 많이 하게 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건축에서도 그러한 조형 행위가 되게 무겁던 시절이 있던 거예요. 건물에다가 뭐를 하면 그게 되게 크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거에 대해서 다들 이 얘기 저 얘기 쏟아내고요. 그중에서 순진한 사람들은 그렇게 2차적으로 쏟아낸 비평에 진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겠죠. 하지만 이게 과거의 얘기가 된 이유는, 요즘엔 디지털 덕분에 어떤 형태를 만들고, 그 형태를 생산하고, 그 형태를 소비하는 것이 너무 쉬워진 세상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윤리고 뭐고 다 떠나서 ‘내가 이 형태를 좋아하는 것’ 밖에 남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 해석이 가능해진 거죠. 이건 시대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진: 동감합니다. 아돌프 로스가 쓴 ‘장식과 범죄’에서도 장식에 들어가는 과한 노동력과 재원들이 국민 경제에 피해를 끼치는 범죄라는 되게 윤리적인 주장도 있지만 장식을 문신에 비유하며 문신하는 사람은 범죄자이거나 잠재적으로 그렇게 될 사람들이라고도 했어요. 가만 읽어보면 로스는 당시의 장식 미학이 싫었던 것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에 관해 논하는 책이더라고요.

정: 네 맞아요. 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직 아름다움의 효과만 추구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던 문화는 어디에나 다 있는 것 같아요. 이론화되고 텍스트가 되어서 쌓여야지만 고차원적이라고 이해하던 것은 동서양 어디에나 지배계층에선 당연히 있었던 문화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아름다움은 늘 멸시 혹은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 같고요. 이제 이런 관점이 해체가 되는 과정에서 건축가는 드디어 에스테틱을 떼어놓고 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사실은 “아돌프는 그냥 자기가 그거 하고 싶었던 거잖아”라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예전보다 더 대놓고 얘기하는 것이 이제는 더 알맞은 해석일 수 있는 거죠.

진: 한편에서는 윤리를 에스테틱만 강조하면 유미주의에 다다른다든가 건축가는 왜 남의 돈으로 패션쇼를 하냐는 사회적인 압박에 부딪힐 수 있지 않을까요?

정: 사실 윤리가 없는 분야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건축만큼은 윤리가 견인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러면 오히려 자신의 에스테틱적 욕망을 윤리로 가장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되죠. 제가 생각하는 에스테틱이라는 것은, 내가 행하는 에스테틱적 효과를 내가 직시하고 통제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내가 어떤 에스테틱적인 효과를 내놓고 “윤리가 드라이빙 한 거야”라고 얘기하면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거죠.

디자인과 건축

진: 공업디자인을 전공하시다가 조앤파트너스 건축사사무소로 취업하시고 그 후에 독일의 슈테델슐레로 유학하셨는데 공업디자인을 전공할 때부터 건축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정: 학부 때부터 건축에 관심이 있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잘못된 생각일 수 있는데, 디자인적인 태도로 부딪히는 거라면 결과물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판타지가 있었어요. 지금은 맞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내가 건물을 디자인하면 왜 안되냐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래서 건물을 만드는 곳을 가서 내 태도를 가지고 건물을 디자인해 봐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공업 디자인이라는 분야 안에는 구체적으로 제품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 공공 환경 디자인 등 여러 가지 분야가 있지만 이게 한 학과 안에서 존재하잖아요. 특정 전문지식이 다양한 형식의 결과물로 이어지죠. 그런데 건축만 학과와 결과물의 형식이 붙어있어요. 그래서 건물을 디자인하려면 건축학과를 가야 돼요. 근데 나머지 모든 것들은 디자인하려면 디자인과를 가면 돼요. 물론, 아닌 디자인과도 있습니다만… 그런 차이로 인해, 저는 건축학과가 특이하다고 봤어요.

진: 말씀하신 것처럼 건축학과를 나와서 다른 디자인계에서 활동하는, 이를테면 버질 아블로 같은 사람이 꽤 있는데 그 반대는 잘 없는 것 같아요.

정: 버질 아블로가 정말 훌륭한 패션 디자이너였다면 그 반대도 반드시 생겨야죠. 그거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겠지만 아마 현실적으로 어려울 겁니다. 왜냐면 이 분야는 보수적이니까요. 그럼에도 그것이 가능해지는 게 가장 멋진 일일 것 같고요. 그게 어렵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이 분야가 다루는 매체가 너무너무 무거운 게 유일한 원인인 것 같아요. 많은 인프라와 협력이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기존의 사회적인 체제에서 검증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걸 이끌어 갈 책임을 부여받을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 같거든요. 개인의 능력의 문제는 아닙니다.

진: 몇몇 분들은 타 분야의 디자인보다 건축가로서의 우월의식을 갖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우월의식도 타 분야의 디자이너를 수용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까요?

정: 우월의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제가 요즘 이탈리아 와서 더 느끼는 건데, 서양에서는 사회적으로 영향을 많이 미치는 무언가에 있어 그것의 형태를 결정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있어요. 한국에서는 그것의 형태를 결정하는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되게 오래전부터 형태를 누가 결정했는지 따졌어요. 왜냐면 형태란 질서를 반영하는 무언가이고 그 질서 안에는 이데아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이것은 독특한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 형태를 결정하는 사람이 건축가에요. 이걸 이해하지 않으면 현재 건축 문화를 설명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제가 데이비드 치퍼필드 사무소에서 데이비드보다 도면을 직접 더 많이 그리고 있지만 그럼에도 건축가는 데이비드잖아요. 이 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왔어요. 게다가 과거에는 가장 첨단의 인공 구축물이 건축물이었죠. 그러다 보니 건축가들이 스스로 굉장한 엘리트라고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엘리트였고요. 근데 한국에는 그런 게 전통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낯설어 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오늘날에 와서 타 분야보다 더 우월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 건축은 서양에서 나왔으니깐 그들이 최초로 기원을 두는 비트루비우스의 건축 10서에도 결국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관해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알베르티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전통이라 어떻게 보면 건축은 본질적으로 스펙타클의 서사이자 표상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죠.

미드데이

진: SNS 계정에서 미드데이에 관해 건축과 건물 모두 관심이 있어서 모두 하고 싶다는 글을 봤습니다. 미드데이로서 건축을 한다는 의미는 전시나 아카데믹 활동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 그것보다는 건물과 장소와 공간에 대해서 생각을 쌓는 행위일 것 같아요. 그다음 거기에 기반한 창작을 하겠죠. 건축적인 생각으로부터 파생되는 창작 활동인데 결과적으로 건물이 아닐 수도 있는 걸 생각합니다. 말장난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예를 들어 볼게요. 배틀그라운드 같은 디지털 공간을 게임 디자이너가 아니라 건축가가 디자인하면 뭐가 달라질까 질문해봐요. 차이가 없어도 상관없지만, 굳이 차이가 있을 거라고 가정하고 상상을 추적해 나가다 보면 남는 것들이 몇 가지 있을 것 같거든요? 그것을 꿰다 보면 재밌는 게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지점을 포착해보고 싶네요. 그렇게 해서 “건축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질까? 달라질 게 없더라”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고 “이렇게 해보니 우리가 이런 걸 얻게 된 것 같아”라는 결론도 날 수 있고요.

진: 그러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미드데이로서 하신 작업이 있으시나요?

정: 저희가 처음으로 한 일은 이미 지어진 건물에 대한 건축적 컨설팅과 퍼블리싱입니다. 해당 건물을 설계한 팀에게 가서 미드데이가 이것을 건축적으로 좀 더 보완하면 상대도 좋고 저희도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어요. 내부적으로 리서치를 먼저 하고, 그 자료를 저희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아카이브하고, 그다음에 새로운 시점으로 건축적인 드로잉을 다시 넣어서 책으로 만드는 것까지, 총 3단계로 이루어진 프로젝트였어요. 아마 올해 초에는 책이 나올 거예요.

특히 이 책에 대해서는, 지어진 건물을 직접 디자인한 사람의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니라 저희 미드데이가 외부자의 시선에서 독해를 하는 책이에요. 그 독해는 창작을 통해서 이루어지고요. 그래서 저희의 드로잉과 다이어그램과 글로 채워져 있는 건축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어진 건물을 읽고 다시 건축을 하는 거예요. 건물에서 건축을 만들어낸다는 말을 떠올려보고, 여기서 떠오른 프로젝트의 구조를 저희가 한 번 실천해 봤어요. 그 건축적 행위의 결과물은 건물이 아니라 책인 것이죠. 결과물의 형식은 열려있어요. 그게 저희가 생각하는 건축 활동이에요. 꼭 담론적이지도 않고요, 꼭 아카데믹하지도 않아요. 그냥 창작 활동이에요. 그게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건축적인 태도를 가진 작업들을 아카데미에만 한정을 하면, 생존에는 유리하더라도 한계가 많아요. 이를 테면, 학생들이 봤을 때 뭔가 재밌는 작업을 하고 있는 교수님들이 되게 많아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교직이라는 기반을 떼는 순간 그 작업을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결국 그러한 프로젝트는 아카데미에 귀속되는데, 그러면 모든 학생들이 교수가 되지 못하면 그런 작업들을 못한다는 말이 되잖아요. 학생들이 온갖 것에 대한 채워지지 않은 창작의 갈증이 있는데, 그 창작의 원동력을 교수가 되지 않더라도 사회에 나가서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으면, 그것이 또 직업이 되면 너무 좋지 않나요? 결국은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프로젝트의 롤 모델들이 계속 생겨나다 보면,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이 굳이 건물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도, 자신이 갖고 있는 창작적인 원동력을 갖고 세상에 여러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 프로젝트의 이면에는 이러한 꿈이 있습니다.

소감문

디서플린으로서 건축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관점이 생겼다. 정해욱 대표님께서는 나의 건축 공부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변곡점을 찍어주셨다. 정해욱 대표님과 개인적인 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AAPK의 ‘가상-건축’에서 대표님의 에세이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건축을 배우면서 간지러웠던 지점이 모두 시원하게 긁혔다. 이에 꼭 찾아뵈어 직접 말씀을 듣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를 손가락에 담아 인스타그램 DM을 보낸 것이 본 인터뷰의 계기다. 마침 대표님께서는 밀라노에서 일하시다 잠깐 귀국했던 참이었고 어린 학생의 용기에 선뜻 시간을 내어주셨다. 감사를 넘어 영광스럽다.

평생 공부에 든든한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대표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