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tecture & Texture 유리편 : 서울식물원

Architecture & Texture

건축은 무엇인가?

어떤 건축가에게 건축은 이론이다. 어떤 이에게는 공간이다. 어떤 이에게는 형태다. 어떤 이에게는 삶을 담는 그릇이거나 시대정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헤르조그 앤 드 뫼롱에게 건축은 “건축”이다. 이 말은 건축의 현실성과 물질성을 뜻한다. 건축은 콘크리트이고, 유리며, 벽돌이고 나무이다. 그들에게 건축은 형상학이 아니라 물질학이며, 구체적으로는 재료인 것이다.

_건축을 시로 변화시킨 연금술사

건축은 뼈대가 되는 구조체를 기본으로 공간이 만들어지며, 그 공간을 둘러싼 벽들과 외피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새로운 실체를 만들어낸다. 좋은 공간을 바탕으로 좋은 외관을 입었을 때 비로소 건축은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Architecture & Texture 두 번째 이야기, 유리

유리는 우리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다. 기술력이 발전함에 따라 작은 주택부터 시작하여 고층빌딩까지 유리가 사용되는 건축물의 규모는 나날이 커지며 비정형적인 자유로운 디자인이 가능해졌다.

이번 시간은 유리가 사용된 건축물, 서울식물원과 그 속에 숨어진 이야기 그리고 유리에 대해 알아보자.

글을 시작하며

유리는 빛을 투과하거나, 반사하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우리는 유리를 통해서 안전하게 보호된 곳에서 그 너머의 공간을 바라보는 연출이 가능한 것이다. 공간을 물리적으로 구분하면서 시각적으로는 내외부를 연결하여 공간의 확장성을 얻는다.

이처럼 공간은 내외부를 단순히 벽 하나로 구분하는 것이 아닌 안과 밖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완전하게 단절된 공간은 외부를 끌어들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흐름을 볼 수 없어,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이 된다. 유리를 통해 공간에 외부가 채워지는 것은 단순히 풍경이 아닌, 시간과 기억을 담아두는 행위인 것이다.

산업 공예인, 건축가 김찬중

“우리나라에서의 건축적인 새로운 시도는 매우 적은 편이다.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매번 검증된 로테크 과정과 검증된 기법으로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는 건축적인 의미와 개념에만 중점을 두고 설계하는 풍토가 강하다. 그로 인해 디자인으로 차별화가 어려워지기 시작해 국내에서는 어떤 건축가의 작품인지 구분이 어려운 수준이다.”

_월간 디자인 김찬중 인터뷰 中

이런 상황 속 김찬중 건축가는 본인만의 색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그의 특징 독특한 형태에서 온다. 눈에 튀는 디자인과 선을 넘지 않는 담백함이 더해져 한국 건축물에선 느끼기 힘든 재미라는 요소를 더한다.

“논리는 명쾌해도 해석은 각자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애매함을 주는 것을 좋아해요. 자기 완결성이 강한 건축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피식 웃을 수 있는 그런 건물이 좋아요.”

_월간 디자인 김찬중 인터뷰 中

위 인터뷰 내용처럼 그의 건축물은 내 마음대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느껴져 편안하다. 하지만 눈길을 이끌며 때로는 손이 가기도 하고 무슨 건물일까 하는 의문과 질문이 생긴다.

늘 일상과 도시 속에서 함께 하는 건축물은 너무 튀어도 안되고 얼굴이 찌푸려져서도 안된다. 적당한 독특함과 적당한 의문들이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적당한 호기심을 만들어낸다.

적당한 호기심을 멀리서 사람을 불러오기도 하며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언뜻 식물원인 것을 생겼다는 것을 듣고 온 이용객도 아무 정보 없이 지나가다 발견한 이들도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는 것, 그것이 적당한 호기심이 지닌 힘이다.

공원을 완성하는 꽃 한 송이

서울 식물원은 공원과 식물원이 합쳐진 형태인 싱가포르 보타닉 공원을 표방하고 면적은 축구장 70배 크기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진입로인 열린 숲에서 이어지는 야외정원 주제원과 습지원 그리고 식물원을 대표하는 공간, 한송이의 꽃 식물문화센터로 총 네 군데로 구성되어있다.

열린 숲으로 들어와 주제원에서 바라본 식물문화센터는 그곳에 나무와 풀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건물의 형태는 마치 연꽃의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 더욱 거대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서울 식물원 식물문화센터

식물문화센터는 축구장 1개 규모의 넓이와 아파트 8층에 해당하는 높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온실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개방감이 다가오며 매우 입체적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내부에는 열대와 지중해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식물만 자라나고 있는 것 아니라 세계 12개의 도시의 문화가 각 챕터마다 표현되어 있다. 이는 단순히 식물원이 아닌 문화를 품은 라이프스타일적인 공간인 것이다.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식물과 12개의 도시 모습들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만드는 품은 공간이 된 것이다.

열대관 조성

식물문화센터는 크게 지중해관과 열대관으로 나뉘어 있다. 입장하면 열대관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열대관은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곳곳에 수공간과 폭포, 벽 위에는 미스트를 뿌려 적정 습도 60-70%를 유지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습도가 체감된다.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 설계된 요소지만 그 덕분에 관람객은 공간을 3D에서 4D로 느껴지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지중해관 조성

ⓒKim yongseong 식물문화센터 내부

열대관을 따라 돌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중해관에 도착한다. 지중해관은 열대관보다 더 큰 식물들이 자라기 때문에 천장고가 5m 더 높다. 습도도 더 낮으며 분위기 또한 지중해에 해당되는 도시들로 꾸며져 있어 전혀 색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3차원으로 연결하다

열대관을 시작하여 지중해 관을 지나게 되면 오목한 건물의 중심부로 향하여 스카이 워크로 통하는 계단을 들어간다. 계단은 내부는 마치 식물을 나노 단위로 보았을 때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식물문화센터 내부에는 층이 나눠있지 않다. 그 덕에 3차원을 가로지르는 스카이워크가 만들어져 볼륨감 있는 공간을 지면이 아닌 공중에서 색다른 시선으로 경험할 수 있다. 식물을 올려다보며 관람을 하다가, 식물을 내려다보며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관람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하이라이트이다.

식물문화센터의 중심, 지붕

식물문화센터의 핵심은 지붕이다. 일반 지붕과는 다르게 중심부가 움푹 들어간 접시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 중심부를 기준으로 그려진 식물세포막 패턴은 식물문화센터가 가진 형태의 정체성을 잡아주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기하학적으로 설계된 천장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8등분이 되어있다. 그곳에는 친환경 설계가 적용되어 있는데 빗물을 받아뒀다가 필터링 시스템을 통하여 다시 활용하고 있으며 태양광과 지열로 냉난방을 해결했다. 천장의 마감재는 유리가 아닌 ETFE라는 필름재를 선택하여 유리보다 15~20% 높은 투과율과 유리의 1% 정도로 가볍기 때문에 조금 더 자유로운 디자인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중심부는 건물의 코어가 위치해있으며 그곳에는 비를 모아서 필터링 후 조경수로 재활용한다. 또 중심부를 기준으로 천장고가 바깥쪽으로 높아지는 형태이기 때문에 관람객의 시선은 자연스레 바깥으로 향하게 된다. 이는 “내부를 다 구경하시고 외부 공원을 보세요” 건축가가 설계한 의도를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글을 마치며

공간을 채우는 방법

유리는 물리적으로 공간을 구분함과 동시에 시각적으로는 유리 너머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른 재료들과 달리 유독 돋보이지 않는 재료이다. 하지만 특성을 가진 소재와 조합, 다양한 색상, 질감, 기술의 발전 등으로 자유로움은 표현으로 인한 비정형, 초고층 빌딩의 커튼월 등 무수히 다양하 가능성을 품은 재료이다.

오늘날 유리가 사용되지 않은 건물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설계된 곳을 제외하곤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우리가 보고 있는 거의 모든 건물을 유리가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유리 건축물이 존재하지만 같은 표정을 짓는 유리는 하나도 없다.

외부에 사용된 유리는 풍경을 반사하며 아름다움을 퍼트린다. 내부에서 바라보는 유리는 단순히 풍경만이 아닌 낮과 밤,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둥실둥실 떠다니며 여행하는 구름들 그리고 그 밑에 지는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변하는 것을 보며 하루하루를 공간에 담는다. 그것들은 차곡차곡 쌓여 계절을 변화시키며 시간이 흘러가고 있음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공간에 시간의 모습을 담아내는 재료, 유리는 우리 삶 속에 시간이 투과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재료이다.

“본 아티클은 LECTUS의 창작활동지원 프로젝트인 렉-크레이션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