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입은 서울: 2026 국제정원박람회
서울숲이라는 선택

도시 안에서 자연을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오래 생각해온 분이라면, 2026 국제정원박람회가 서울숲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예감하셨을 것입니다. 올해 박람회는 5월 1일부터 10월 27일까지, 서울숲과 한강, 성수동, 뚝섬대정원을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 ‘서울숲 그랜드가든’을 중심으로 약 15만 평 규모로 펼쳐집니다. 주제는 ‘Seoul, Green Culture’. 단순한 정원 전시를 넘어, 초록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상적 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작년의 박람회를 다녀오셨던 분이라면, 올해 장소에 대해 한층 더 기대가 크셨을 것입니다. 지난해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박람회는 여러 의미에서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기존에 차로로 활용하던 넓은 아스팔트 도로가 주 보행로가 되다 보니, 발 아래의 딱딱하고 단조로운 포장면이 정원과 숲이 주는 감각적 분위기를 자꾸 깨뜨렸습니다. 아무리 정성스럽게 조성된 정원이 양옆에 펼쳐져 있어도, 걷는 경험 자체가 공간의 결과 어긋나면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올해 서울숲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장소 변경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다양한 포장재를 활용해 보행로 자체가 감상의 흐름을 해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계획되어 있었고, 걷는 내내 공간과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주제와 장소가 서로를 단단하게 뒷받침할 때 공간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몇 배로 증폭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면을 향해 열린 공간, 발길이 머무는 정원

이번 박람회에는 다채로운 아이디어가 실제 공간으로 구현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가득했습니다. 도면 위에서 다듬어진 상상력이 흙과 식물, 자재, 빛과 그늘을 통해 실제 공간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쳤을지 작품 하나하나가 깊은 밀도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호수 바로 앞에 자리한 두 작품, 〈숲으로 가는 길〉과 〈Seoul Sojourn: 서울에서 잠시 머물다〉였습니다. 두 작품은 위치부터 구성까지 호수의 수면을 향해 정교하게 열려 있었습니다. 방문객이 의도치 않게 수면 쪽으로 시선과 발걸음을 이끌리게 되고, 어느 순간 자신이 호수와 마주 앉아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단순히 보기 좋은 것을 넘어, 공간이 사람의 움직임과 감각을 어떻게 이끌 수 있는지, 동선과 시선의 관계를 얼마나 섬세하게 조율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정원이었습니다. 좋은 공간 안에서 방문객들은 거부감 없이 그저 편안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공간에 녹아들게 만드는 그 투명한 매력이 정원 곳곳에 스며있었습니다.
한여름에도 서늘한 녹음, 모두를 위한 쉼터

박람회가 야외에서 열린다고 하면 가장 먼저 날씨 걱정이 앞설 수 있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초여름 햇살이 이미 제법 따가운 시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막상 서울숲 안으로 들어서면 그 걱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집니다. 촘촘하게 우거진 수목들이 만들어내는 짙은 녹음은 실질적으로 체감 온도를 기분 좋게 내려줍니다. 바람 한 줄기에도 서늘함이 실려오고, 한낮에도 그늘 아래 앉으면 오히려 선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수목의 밀도와 빛, 바람의 흐름을 고려한 식재와 공간 배치가 어떤 쾌적함을 만들어내는지를 이 공간에서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따가운 햇볕을 피해 이 공간에 더 오래 머물며 정원을 즐깁니다.

공간 중앙의 야외무대 옆으로는 탁 트인 잔디밭이 펼쳐져 있어, 돗자리 하나만 챙겨도 훌륭한 나들이 장소가 완성됩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커플, 둘러앉아 도시락을 나누는 친구 모임까지. 어떤 조합으로 찾아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공간이 거기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것, 그것이 잘 만들어진 공공 정원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합니다.
도시가 초록을 배우는 방식

박람회를 다 걷고 나와 돌아보면, 한 가지 감각이 선명하게 남습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자연을 단순히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서울숲 그랜드가든’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의 집합이 아닙니다. 도시의 인프라와 녹지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자연이 어떤 형태로 스며들 수 있는지를 실제로 걷고 느끼며 확인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방문객들이 복잡한 설계의 원리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저 정원 속에 푹 빠져 일상의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박람회는 제 역할을 다한 셈입니다. 이번 박람회의 여러 작품들이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그것을 해내고 있었습니다.

박람회는 공간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하지만, 함께 준비된 프로그램들도 방문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다문화가족, 장애인 등 다양한 관람객을 위한 맞춤형 도슨트 투어가 마련되어 있어 누구든 자신의 눈높이에서 공간을 이해할 수 있고, 음악회와 라이브 공연,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이어집니다. 정원을 거닐다 문득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공간의 감각을 한 겹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박람회는 10월 27일까지 계속됩니다. 서울이 초록으로 물드는 이 계절, 10월이 끝나기 전 꼭 한번 직접 두 발로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