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뒤집히는 길, ECC와 서울로7017

우리는 건물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을까?

건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꺼내는 말은 대개 ‘몇 층이에요?’입니다. 층수는 건물의 크기를 가늠하는 가장 빠른 척도이고, 동시에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암묵적으로 규정하는 질서이기도 합니다. 1층은 들어오는 곳, 중간층은 일하거나 공부하는 곳, 옥상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올라가지 않는 곳. 계단은 그 층들 사이를 빠르게 오가기 위한 수단일 뿐, 거기서 오래 머물다 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시를 걷다 보면 가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되는 건물들이 있습니다.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이동하는 길 위에서 발이 멈춰버리는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멈춘 게 아니라, 가는 도중에 그 자리 자체가 목적지가 되어버린 느낌에 가깝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ECC와 서울로 7017이 저에게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두 곳은 각각 캠퍼스와 도심이라는 전혀 다른 맥락 속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걸어보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두 건물이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층이라는 경계는 반드시 필요한가? 지붕과 계단은 그냥 지나치는 곳이어야만 하는가?’

 

ECC: 강의실을 밟고 그 위에 서 있다면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완만하게 경사진 잔디밭이 길게 펼쳐집니다. 처음에는 그냥 예쁘게 꾸며놓은 조경인가 싶습니다. 그런데 그 위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느낌이 듭니다. 발아래가 흙이 아닌 것 같다는 감각. 그리고 잔디 경사면 가장자리를 따라 시선을 내리면, 유리로 된 벽 너머로 깊숙이 파인 지하 공간이 드러납니다. 알고 보면 그 잔디 언덕 전체가 건물의 지붕입니다.

 

 

ECC(Ewha Campus Complex)는 2008년에 완공된 이화여대 캠퍼스 복합단지로 캠퍼스와 도시를 잇는 지형적 계곡 개념을 만든 건물입니다.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가 설계했는데 그의 선택은 단순하면서도 파격적이었습니다. ‘올라가지 말고 내려가자.’ 땅 위에 건물을 올리는 대신 파내어 그 안에 공간을 만들고 지붕은 캠퍼스의 자연스러운 언덕이 되도록 한 것입니다. 덕분에 학생들은 그 지붕 위에서 앉고, 눕고, 책을 읽습니다. 자신이 건물 꼭대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요.

 

 

이 역발상이 만들어내는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시선의 역전입니다. 지하에 있는 강의실 학생들은 유리창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건물 안에 있으면서 하늘이 보이고, 지붕 위를 걸으면서 발밑 깊숙이 사람들이 오가는 장면이 내려다보입니다. 통상적으로 지하라고 하면 떠오르는 폐쇄적이고 어두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공간감입니다.

 

건물 양쪽으로 난 외부 계단도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닙니다. 폭이 넓고 양옆으로 건물의 단면이 길게 열려 있어서 마치 도시의 협곡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납니다. 한 걸음씩 내려갈수록 캠퍼스의 소음이 줄어들고 시야가 좁아지면서 공간이 점점 내밀하고 조용해집니다. 강의실 가는 길이 어느새 일종의 의식(儀式)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건축계에는 건축적 산책로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20세기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주창한 생각으로, 건물 안을 걷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연속된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입니다. 전공 지식 없이도 ECC를 걷다 보면 그 감각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목적지는 강의실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그 자체로 충분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서울로 7017: 도로 위를 걸을 수 있다면

 

서울역 근처를 지나다 보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길이 있습니다. 서울로 7017입니다. 1970년에 자동차 전용 고가도로로 세워진 이 구조물은, 노후화로 철거될 뻔했다가 2017년에 보행자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름의 7017은 1970년 개통과 2017년 재개장을 동시에 가리킵니다. 설계는 네덜란드 건축 사무소 MVRDV가 맡았습니다.

 

 

처음 이 길 위에 올라서면 감각이 잠깐 낯설어집니다. 지상에서 약 17미터 높이, 주변 건물들의 중간층과 눈높이가 맞춰지는 지점입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건물들의 3, 4층 창문들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고, 서울역과 남산의 실루엣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매일 지나치던 동네인데, 이 높이에서 바라보면 전혀 모르는 도시처럼 보입니다. 낯설다는 느낌이 불편한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을 처음 보는 것 같다는 신선한 감각입니다. 걷는 방향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서울로는 일직선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가지를 뻗는 구조입니다. 한쪽에서는 서울역 광장과 고층 빌딩들이 보이고, 다른 방향으로 걸으면 만리동의 낮은 지붕들과 오래된 골목이 내려다보입니다. 같은 길 위에서도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서울과 만나게 됩니다.

 

 

길 위에는 645개의 둥근 화분을 따라 228종에 달하는 식물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지며, 가을에는 잎이 붉어집니다. 차가 달리던 회색 고가 위에서 계절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 이 공간의 가장 큰 반전입니다. 사람들은 어딘가를 가기 위해 이곳을 지나치기도 하지만, 목적 없이 그냥 걸으러 오기도 합니다. 이동과 머뭄의 경계가 흐릿해진 공간입니다.

 

 

종종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과 비교되지만, 결이 조금 다릅니다. 하이라인이 폐선 철도를 미적으로 보존한 예술 공간에 가깝다면, 서울로는 낙후된 서울역 주변을 다시 연결하려는 도시 재생의 성격이 강합니다. 고가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들은 서울역, 중림동, 만리동의 오래된 골목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공중의 산책로가 계단을 통해 도시 곳곳의 지상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계단은 단순히 오르내리는 도구가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도시 층위를 연결하는 경험의 장치입니다.

 

ECC와 서울로 7017이 알려주는 것

 

ECC는 땅속으로 내려가는 건물이고, 서울로 7017은 공중으로 올라가는 산책로입니다. 하나는 조용한 캠퍼스 안에, 다른 하나는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겉으로는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공간인데, 직접 걸어보고 나면 묘하게 같은 감각을 남깁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걷는 도중에 멈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ECC의 외부 계단은 강의실로 가는 길목이지만 사람들은 잠깐 발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서울로의 산책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었는데, 어느 난간 앞에 서서 서울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지나 있습니다. 두 공간 모두 목적지가 아닌 이동의 과정을 경험으로 만드는 건물입니다.

 

두 번째는 시선의 방향을 뒤집는다는 점입니다. ECC에서는 지하에 있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보통 지하에서 하늘을 본다는 것은 어색한 조합이지만 ECC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냅니다. 서울로 7017에서는 공중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봅니다. 우리가 매일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도시를 이번에는 위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두 건물 모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시선을 한 번씩 뒤집어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보게 만듭니다.

 

멈춤을 설계하는 건축

 

두 공간을 걷고나자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좋은 건물이란 무엇인가? 튼튼한 건물인가요, 아름다운 건물인가, 아니면 편리한 건물인가? ECC와 서울로 7017은 그 질문에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답합니다. 이 두 공간은 사람들을 어딘가로 효율적으로 데려다주기보다 가는 도중에 잠깐 멈추게 만드는 데 더 공을 들인 건물들입니다. 계획에 없던 자리에서 앉아보게 만들고, 예상 못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게 만듭니다.

 

사실 층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약속입니다. 편리한 약속이지만 절대적인 규칙은 아닙니다. 지붕이 광장이 될 수 있고, 계단이 전망대가 될 수 있으며, 지하가 하늘을 담을 수 있습니다. 현대 공공 건축의 가장 흥미로운 실험들은 바로 그 약속을 다시 쓰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실험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건축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그 공간 위를 걷다가 예상하지 못했던 자리에서 발을 멈추는 순간입니다. 왜 멈췄는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뭔가 좋은 것 같은 그 느낌. 건축은 어쩌면 그 멈춤을 설계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