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가장 극적으로 조각하는 방법, 유리

현대 건축의 투명한 프레임이 자연을 큐레이션하는 법

서울식물원의 내부

 

일상의 환기가 절실해지는 바쁜 날, 우리는 본능적으로 탁 트인 시야와 따뜻한 볕을 갈망합니다. 흥미롭게도 건축의 역사는 빛을 다루는 방식의 진화와 궤를 같이합니다. 거친 외부 환경으로부터 인간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건축의 제1원칙이었던 과거에는 단단하고 두꺼운 벽을 세워 자연과 실내를 단절시키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판유리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고 철골 구조가 발전하면서, 건축은 유리라는 새로운 매개를 통해 자연을 적극적으로 실내로 끌어들이는 연결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창을 열어 바깥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감상하던 차경(借景)의 미학은 오늘날 거대한 유리와 철골을 만나 공간 전체로 계절을 들여오는 거대한 스케일로 확장되었습니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을 과감히 허물고 얇고 투명한 지붕을 얹은 현대의 온실 공간들은, 도시의 소음과 궂은 날씨는 완벽하게 차단하면서도 자연이 뿜어내는 채광과 생동감은 온전히 허락합니다.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 자연 친화적 설계)이 주목받는 현대 도시에서,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조각하고 있는 두 곳의 거대 온실로 걸음을 옮겨봅니다.

 

가장 가벼운 지붕이 품은 거대한 생태계, 서울식물원

서울 식물원의 외경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에 자리 잡은 서울식물원은 총면적 50만 4,000㎡로 축구장 70개 크기에 달하는 방대한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휴식을 위한 공원과 식물을 연구하고 전시하는 식물원이 결합된 대한민국 최초의 도심형 보타닉 공원(Botanic Park)으로, 이곳의 핵심은 외부 기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사계절 내내 관람이 가능한 거대한 실내 온실입니다.

 

서울 식물원 내부

 

온실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관람객은 기존의 식물원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탁 트인 개방감에 압도됩니다. 그 비밀은 뒤집힌 돔(Dome) 형태의 실험적인 건축 설계에 숨어 있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유리 온실들은 눈과 비를 흘려보내기 위해 중앙이 가장 높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낮아지는 볼록한 돔 형태를 띠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식물원은 천장의 가장자리가 가장 높고 중심부로 갈수록 오목하게 낮아지는, 마치 넓은 접시를 뒤집어 놓은 듯한 역발상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이 구조적 변화는 내부 동선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천장이 가장 높은 온실의 가장자리를 따라 키가 큰 교목들을 둥글게 배치함으로써, 관람객이 걷는 중앙부의 시야를 가리지 않고 시원하게 확보한 것입니다.

 

서울 식물원 내부에서 본 유리 외벽

 

이러한 혁신적인 형태를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은 유리가 아닌, ETFE(초극박막불소수지필름)라는 최첨단 신소재입니다. 무게가 일반 유리의 100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가벼운 이 특수 필름 덕분에, 중력을 거슬러 아래로 움푹 꺼진 거대한 지붕을 최소한의 철골 기둥만으로 안전하게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ETFE는 식물의 광합성에 필수적인 자외선과 가시광선의 투과율이 일반 유리보다 최대 20%나 높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채광을 어떠한 왜곡 없이 온전히 실내로 들입니다. 덕분에 하늘에서 내려다본 온실의 지붕은 뼈대를 이루는 하얀 철골 구조와 투명한 ETFE 필름이 어우러져,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정교한 식물 세포의 단면을 연상시킵니다.

 

유리 외벽로 인하여 외부 환경에 관계없이 일정한 환경을 구축하는 실내

 

관람의 백미는 온실 상부를 가로지르는 스카이워크입니다. 지상에서 식물의 뿌리와 줄기를 관찰하던 관람객은 스카이워크에 올라 키 큰 열대 식물의 수관(Canopy)을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입체적인 동선을 경험하게 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오목한 천장 중심부로 모여든 빗물을 지하 탱크에 저장해 조경수로 재활용하는 친환경 순환 시스템까지 갖춤으로ㅆ 완벽하게 통제되고 큐레이션된 도심 속 생태계를 완성합니다. 습하고 묵직한 열대의 공기에서 건조하고 바스락거리는 지중해의 빛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도심 한가운데 완벽하게 통제된 작은 지구를 산책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일률을 이식한 도심 속 생태계, 더현대 서울 사운즈 포레스트

서울 더 현대 사운트 포레스트

 

마곡의 서울식물원이 식물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한 온실이라면, 현대 도시에서 가장 자본 집약적인 상업 건축물 한가운데 자리 잡은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사운즈 포레스트(Sounds Forest)는 사람을 위해 설계된 1,000평 규모의 거대한 실내 숲입니다.

 

오랜 시간 백화점이라는 상업 공간에는 이른바 그루엔 효과(Gruen Effect)를 노린 암묵적인 건축 규칙이 존재했습니다. 창문과 시계를 없애 고객이 외부의 시간과 날씨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직 화려한 인공조명 아래에서 소비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폐쇄적인 공간 설계입니다.

 

사운드 포레스트의 내부 모습

 

하지만 사운즈 포레스트는 이 굳건한 상업 공간의 문법을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고객을 건물 내부에 가두는 대신, 건물의 꼭대기 지붕을 과감히 뚫어버리고 최고 높이 20여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유리 채광창을 얹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 영감을 받은 우아한 파고라(Pergola) 철골 구조 아래로 자연 채광이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빽빽하게 들어서야 할 5층 매장 공간을 비워내고, 하중을 견디는 특수 설계를 통해 수백 톤의 진짜 흙을 덮은 뒤 50여 그루의 천연 나무를 심었습니다. 인공조명 대신 태양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그림자가 실내에 드리우는 풍경은, 상업 공간이 방문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파격적인 쉼의 형태입니다.

 

사운드 포레스트의 내부 모습

 

조경은 언제나 관람객에게 후각과 청각을 아우르는 공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운즈 포레스트는 훌륭한 조경의 예시를 보여줍니다. 사운즈 포레스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풋풋한 풀내음과 젖은 흙냄새가 코끝을 스칩니다. 유리를 통과해 들어오는 햇살의 밀도에 맞춰, 비가 오거나 흐린 날에는 차분한 선율을, 볕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맑은 날에는 경쾌한 리듬을 공간에 채웁니다. 자연을 철저히 배척하던 공간이 되려 투명한 지붕을 통해 날씨의 변화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감각할 수 있는 휴식처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유리가 우리의 일상에 건네는 다정한 초대장

 

마곡의 오목한 식물 세포 지붕과 여의도의 거대한 실내 숲.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탄생한 이 두 공간은 차가운 콘크리트 빌딩 속에서 투명함이라는 건축적 장치가 현대인의 일상을 얼마나 쾌적하게 바꿀 수 있는지 증명합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건물의 단단한 벽은 밖을 밀어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투명한 창과 거대한 유리 천장은 미세먼지와 차가운 바람 같은 도시의 피로 요소는 걸러내면서도, 생명을 틔우는 볕과 자연의 일률만을 공간 안으로 조심스레 끌어들이는 훌륭한 필터 역할을 합니다.

 

 

늘 쫓기듯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 시야를 가로막는 무채색의 네모난 모니터 프레임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번 주말에는 햇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이 투명하고 거대한 뷰파인더 속으로 여유로운 걸음을 옮겨보시기를 권합니다. 가장 따뜻한 빛과 가장 온전한 형태의 휴식이 유리 천장 아래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