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조각하는 프레임, 당신의 방엔 어떤 창이 있나요

네모난 도시 속, 세 가지 모양의 창을 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프레임 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주하는 스마트폰의 작은 사각형, 사무실 책상 위의 답답한 모니터, 그리고 퇴근길 지하철의 획일화된 유리창까지. 이렇듯 현대인의 시선은 단조로운 네모난 틀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눈을 돌려 우리가 머무는 ‘공간’의 프레임은 어떨까요?

 

건축에서 프레임, 즉 창문과 문은 단순히 실내를 환기하거나 밖을 내다보기 위해 뚫어 놓은 물리적인 구멍이 아닙니다. 그것은 건축가가 의도한 방식대로 바깥의 풍경을 내부로 끌어들이고, 또 편집하기 위한 정교한 큐레이션 도구입니다. 동양 건축에서는 이를 차경(借景), 다시 말해 자연의 풍경을 공간 안으로 빌려온다고 표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건축물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프레임에 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국적인 정원의 뷰파인더가 되어주는 수원의 ‘월화원’, 투명한 유리를 통해 근대의 파노라마 뷰를 완성한 북촌의 ‘백인제 가옥’, 마지막으로 비움과 여백으로 하늘을 담아낸 안국의 ‘운현궁’입니다. 똑같은 풍경이라도, 어떤 액자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질감과 온도가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지금부터 공간이 풍경을 재단하는 세 가지 시선의 궤적을 따라가 봅니다.

 

수원 월화원 : 창으로 조각해 낸 영남 정원의 소우주

월화원의 모습

 

도심 한복판, 아파트 단지 사이에 숨겨지듯 자리한 수원의 월화원(粵華苑)은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을 훌쩍 건너뛴 듯한 강렬한 대비를 선사합니다. 이곳은 2003년 경기도와 중국 광둥성이 체결한 우호 교류 협약의 일환으로 조성된 중국식 영남(嶺南) 정원입니다.

 

월화원의 가장 큰 건축적 특징은 ‘인공적으로 빚어낸 거대한 자연’을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흙을 쌓아 올려 산의 형태를 모방한 가산(假山)을 만들고 그 주위로 인공 호수를 배치했으며, 물 위에는 배를 본떠 만든 독특한 정자를 띄웠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건물을 얹는 한국 전통 정원과 달리, 월화원은 담장 안에 완벽한 소우주를 창조해 냅니다.

 

월화원의 마당

 

그리고 이 방대한 소우주를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바로 누창(漏窓)이라는 프레임입니다. 하얀 가루로 마감된 벽면과 푸른 벽돌이 어우러진 담장 곳곳에는 원형, 부채꼴, 활짝 핀 꽃잎 모양 등 다채로운 기하학적 형태의 창들이 뚫려 있습니다. 이 창들은 단순히 장식을 넘어, 관람객이 정원을 거니는 동선에 따라 쉼 없이 나타나며 건너편의 풍경을 마치 잘 짜인 한 폭의 그림처럼 오려냅니다. 원형 창을 통해 정자를 엿보고, 물결 모양의 창을 통해 흔들리는 나뭇잎을 관찰하는 경험은 낯설고도 신선한 시각적 유희를 제공합니다.

 

월화원의 만월문

 

특히 공간과 공간을 잇는 만월문(滿月門) 앞에 서면 월화원이 추구하는 프레임 미학의 정수를 엿볼 수 있습니다. 보름달을 닮은 만월문 너머로 네모난 창문이 보이고, 다시 그 너머로 날렵한 정자의 지붕 선이 겹쳐 보이는 중첩된 프레임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액자 속에 또 다른 액자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치밀한 설계는, 평면적인 공간의 깊이감을 극대화하며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응시하게 만듭니다. 월화원의 창은 풍경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로 다듬어 우리의 시야에 들이미는 적극적인 큐레이터입니다.

 

북촌 백인제 가옥 : 유리와 복도가 빚어낸 근대의 파노라마

백인제 가옥의 정문

 

수원에서 고전적이고 기하학적인 시선의 유도를 경험했다면, 발걸음을 북촌으로 옮겨 1913년경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백인제 가옥에 당도해 봅니다. 북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너른 대지 위에 자리 잡은 이곳은,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근대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당시 상류층 주택의 낯선 시선을 보여줍니다.

 

백인제 가옥이 풍경을 들이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건축적 파격을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는 ‘복도로 연결된 공간’이며, 둘째는 ‘유리의 적극적인 도입’입니다. 전통적인 한옥은 사랑채(바깥주인의 공간)와 안채(안주인의 공간)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 이동하려면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백인제 가옥은 이 두 공간을 내부 복도로 길게 연결함으로써 문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집 안 전체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백인제 가옥의 유리창

 

이 긴 복도의 바깥쪽 면을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투명한 유리창입니다. 과거 한옥의 창호문은 반투명한 한지로 덮여 있어, 바깥의 풍경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2월의 매서운 추위를 감수하고 문을 활짝 열어젖혀야 했습니다. 하지만 유리의 등장은 공간과 자연이 맺는 관계를 완전히 뒤바꿨습니다. 경성박람회를 통해 들어온 압록강 흑송으로 뼈대를 세우고 붉은 벽돌을 덧댄 이 웅장한 가옥 안에서, 집주인은 닫힌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겨울 햇살과 넉넉한 정원의 풍경을 따뜻하게 독점할 수 있었습니다.

 

백인제 가옥의 마당과 복도

 

마루 복도의 끝에 서서 소실점을 향해 길게 늘어선 유리 창문들을 바라보면, 마치 영화 필름이 이어져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연속된 프레임을 통해 정원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또한 조선시대 전통 한옥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2층 규모의 사랑채는 지면에만 머물러 있던 전통의 시선을 수직적으로 끌어올려 북촌 일대를 내려다보는 조감도 형태의 새로운 프레임을 완성했습니다. 백인제 가옥은 안과 밖의 물리적 경계를 투명하게 지워내며, 근대라는 시대가 풍경을 받아들이는 세련된 방식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안국 운현궁 : 창살이 빚어낸 그림자와 비움의 캔버스

안국 운현궁의 정문

 

창을 통해 풍경을 자르고 유리를 도구 삼아 시야를 끝없이 확장하는 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였던 안국동의 운현궁입니다. 화려하고 역동적인 앞선 두 공간과 달리, 왕실 문화의 장엄함과 사대부 가옥의 절제미가 공존하는 운현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프레임은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닙니다. 이곳의 창문과 구조는 풍경을 탐하기보다 철저히 빛을 거르는 필터이자 비움을 위한 캔버스로 작용합니다.

 

운현궁의 이로당

 

가장 시선을 끄는 곳은 안채 역할을 하던 이로당(二老堂)입니다. 이곳은 외부의 시선을 완벽히 차단하기 위해 건물이 마당을 네모반듯하게 에워싸고 있는 폐쇄적인 ‘ㅁ’자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이 고요한 중정(안마당) 한가운데 서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면, 사방의 날렵한 처마 선이 모여 하늘을 정확히 네모난 모양으로 반듯하게 잘라내고 있습니다. 시선이 닿는 곳은 오직 구름이 조용히 흘러가는 캔버스 같은 하늘뿐입니다. 땅의 번잡함과 권력의 암투는 가리고, 하늘의 무한함만을 오롯이 담아낸 이 거대한 지붕 프레임은 동양 건축 특유의 ‘비움과 여백의 미학’을 묵직하게 전달합니다.

 

운현궁의 문

 

또한 운현궁 각 건물에 정갈하게 달린 문창살의 정교한 패턴을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아자(亞) 살, 만자(卍) 살 등 일정한 규칙으로 단정하게 교차하는 나무 창살은 빛이 스며드는 순간 진정한 가치를 발휘합니다. 늦은 오후, 차가운 겨울의 햇살이 창살을 통과해 텅 빈 방 안의 한지 장판 위로 떨어질 때 빛은 기하학적인 그림자 패턴으로 변모하여 공간을 채웁니다. 화려한 바깥 풍경을 좇는 대신 방 안으로 길어지고 짧아지는 그림자의 궤적을 가만히 바라보게 만드는 것. 운현궁의 프레임은 내면의 고요한 사색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침묵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의 방에는 어떤 프레임이 있나요?

 

수원의 월화원, 북촌의 백인제 가옥, 그리고 안국의 운현궁. 이번 글에서 소개한 세가지 공간은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건축 철학을 품고 지어졌지만, ‘프레임’이라는 건축적 장치를 통해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고 자연과 소통하는 방식을 치밀하게 조율했다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월화원의 기하학적인 창이 밋밋한 일상에 이색적인 감각을 환기하는 탐험이라면 백인제 가옥의 파노라마 유리창은 자연을 한 폭의 병풍처럼 소유하려는 근대적 욕망의 발현이며, 운현궁의 네모난 하늘과 단정한 창살 그림자는 내면을 지긋이 응시하는 정적인 휴식입니다. 똑같은 풍경일지라도 어떤 액자를 통해, 어떤 각도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감각적 경험이 됩니다.

 

이번 주말, 늘 똑같은 빌딩 숲의 획일화된 유리창에서 벗어나 이 세 곳 중 한 곳의 프레임 앞에 서보는 것은 어떨까요? 건축가가 조용히 건네는 시선에 동참해 창틀 너머를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나의 일상을 담아내고 있는 프레임은 과연 어떤 모양과 크기를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