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 속 ‘파충류 마을’의 현실판, 카사 바트요

주토피아의 영감이 된 현실 속 ‘파충류 마을’

최근 공개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주토피아 2>를 보셨나요? <주토피아 2>의 아트 디렉터 마티아스 레크너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파충류 마을’의 디자인을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에서 참고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화면 속 굽이치는 곡선과 유기적인 형태를 마주한 순간, 제 머릿속에는 지난 7월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마주했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기억이 강렬하게 되살아났습니다. 갤러리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사진들을 다시 꺼내 보며, 가우디가 설계한 수많은 걸작 중에서도 가장 생생한 생명력을 뿜어내던 공간, ‘카사 바트요’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아트 디렉터 마티아스 레크너(@zhaolimei)의 컨셉아트

 

가우디의 걸작, 카사 바트요

● 몬주익의 돌과 유리로 빚은 전설: 파사드의 비밀

 

바르셀로나의 그라시아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숨을 쉬고 있는 듯한 기묘한 건물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카사 바트요’입니다. 이 건물의 얼굴인 파사드(Facade)는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에서 가져온 사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가우디는 딱딱한 돌을 마치 점토처럼 다루어 규칙적인 표면 위에 굽이치는 물결의 형상을 조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원하는 곡선을 얻기 위해 석고 모형을 수차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빚어가며 형태를 잡았다고 전해집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건물 하부의 기둥들입니다. 뼈의 집(Casa dels ossos)이라는 별명답게 사람의 정강이뼈를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식물의 줄기를 형상화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2층 메인 홀(Main Hall)의 발코니는 무려 10미터 높이에 달하며 건물 1층 측면 끝까지 확장되어 있는데, 이 육중한 구조물을 가녀린 뼈 모양의 기둥 8개가 지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찔한 시공 에피소드가 숨어 있습니다. 가우디는 메인 홀 발코니를 만들기 위해 파사드 아랫부분 전체를 해체하고 목재 받침대만으로 건물의 하중을 버티게 했습니다. 당시 시공을 맡았던 건설업자 조셉 바요(Josep Bayó)는 공사가 진행되는 4일 내내 이 불안한 균형이 무너질까 노심초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우디의 구조적 계산은 완벽했고,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뻥 뚫린 파노라마 뷰를 가진 메인 홀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가우디가 지휘한 빛의 모자이크: 트렌카디스

 

파사드의 매력은 형태뿐만 아니라 색채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가우디는 기존 벽을 긁어내고 석회 반죽을 바른 뒤, 그 위에 깨진 타일과 유리 조각을 이어 붙이는 ‘트렌카디스(Trencadís)’ 기법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조각들의 배치 방식입니다. 가우디는 파세오 데 그라시아 거리 한복판에 서서 인부들에게 직접 색상의 배치를 지시했습니다. 지중해의 파도, 혹은 몬세라트 산의 굽이치는 형상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총 330개에 달하는 세라믹 원판과 유리 조각 하나하나의 위치를 조율한 것입니다.

 

 

이 화려한 파사드는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 ‘성 조르디’의 전설을 담고 있습니다. 성 조르디 전설은 카탈루냐 지방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화로, 사람들을 잡아먹는 포악한 용에게 공주를 제물로 바치려 할 때 기사 성 조르디가 나타나 긴 창으로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해냈다는 영웅담이죠. 가우디는 이 극적인 서사를 건축 언어로 완벽하게 치환했습니다. 지붕을 덮은 비늘 모양의 기와는 성 조르디가 무찌른 용의 등 껍질이며, 붉은색, 초록색, 파란색의 유약이 칠해져 신비로움을 더합니다. 지붕 위 십자가 탑은 용을 찌른 성 조르디의 창을, 해골 모양의 발코니는 용에게 희생당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특히 탑의 십자가 아래 붉은색 세라믹은 솟구치는 용의 피를 나타낸다는 해석도 있어, 건축물을 감상하는 내내 한 편의 영웅담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 빛과 공기의 통로: 파티오(Patio)의 그라데이션

 

화려한 외관에 감탄하며 내부로 들어서면, 건물의 심장부인 파티오가 또 다른 전율을 선사합니다. 가우디는 기존 건물의 채광과 환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이곳을 확장했습니다. 파티오의 천장은 T자 형태의 철재 구조가 지지하는 거대한 유리 채광창으로 덮여 있어, 아치형 천장을 받치는 동시에 자연광을 건물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입니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타일의 색채 그라데이션입니다. 가우디는 빛이 강한 최상층에는 짙은 코발트블루 타일을, 빛이 닿기 힘든 저층부에는 옅은 하늘색과 흰색 타일을 배치했습니다. 이는 빛의 반사율을 조절하여 어디서든 균일한 조도를 유지하기 위함이며, 이로 인해 관람객은 마치 깊은 바닷속을 부유하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 유리와 곡선이 빚어낸 지중해의 물결

 

이러한 세심함은 거주자를 위한 설계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당시 의뢰인이었던 바트요 가문의 어린 자녀들을 위해, 가우디는 집안의 모든 모서리를 날카로운 직각 대신 부드러운 곡선으로 마감했습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난간의 높이와 두께 또한 어린이의 눈높이와 손 크기에 맞춰 세밀하게 조정되었죠.

 

특히 인상적인 디테일은 계단실에 설치된 표면에 굴곡이 있는 유리 난간입니다. 이 유리는 들어오는 모든 빛을 은은하게 퍼트리는 기능적인 역할을 함과 동시에, 건너편의 타일 벽을 바라볼 때 물결치듯 굴절되는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가우디는 유리의 물성(Materiality)을 이용해 딱딱한 타일 벽을 지중해의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기능적인 안전장치인 난간조차 시각적 유희의 도구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유리를 통해 바라본 세상이 물결칠 때, 저는 그곳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가우디가 빚어낸 하나의 거대한 바다임을 실감했습니다.

 

 

신의 곡선, 그리고 공감의 건축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카사 바트요는 그 철학이 가장 극적으로, 그리고 가장 치열하게 실현된 공간이었습니다. 용의 등뼈를 형상화한 지붕부터 용의 뱃속을 연상케 하는 아치 구조, 그리고 바다를 품은 파티오까지. 파도와 빛, 그리고 전설을 품은 이 집을 보며, 우리가 설계하는 공간은 과연 누구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지,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다시금 고민해 보게 됩니다. 언젠가 바르셀로나에 가신다면, 꼭 그 일렁이는 파도 속에 직접 몸을 담궈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