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공공성: 틈을 만드는 철학

당신의 공간은 어디서 끝나나요?

우리는 대개 현관문을 닫는 순간 ‘나의 공간’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 도시에서 건축의 역할은 그 문 안쪽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건축은 사유 재산인 동시에, 도시의 풍경을 결정하고 타인과 조우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공공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높은 담장을 쌓고 있으며, 도시 속의 우리는 더 외로워진 것 같습니다. 아파트 단지는 거대한 섬이 되었고, 이웃과의 조우는 침묵만 흐르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한정되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선 ‘건축적 장치’가 우리를 분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담장

 

건축의 공공성과 사회적 역할

건축은 과연 집주인의 만족만을 위한 ‘사적 자산’일까요? 건물 하나가 지어지면 그 건물은 수십 년간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행인들의 걸음걸이를 바꾸며, 누군가에게는 비를 피할 처마가 되어줍니다.

 

건축은 태생적으로 이중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자산이자 안식처인 ‘사적 공간’이지만, 그 건물이 땅에 세워지는 순간 도시의 얼굴을 나타내는 ‘공적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일 걷는 거리의 분위기, 머무르고 싶은 공원도 사실은 건축물들이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 청계천을 둘러싼 고층 건축물들

 

● 사적 공간의 집합이 만드는 공공의 풍경

 

현대 건축에서 ‘공공성’이란 단순히 시청이나 광장 같은 공공기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진정한 공공성은 사적인 건축물이 도시와 만나는 ‘경계부’에서 탄생합니다. 건물의 1층을 담장으로 막는 대신 투명한 유리로 설계해 거리의 시야를 확보하거나, 건물의 일부를 비워 행인들이 비를 피하거나 쉴 수 있는 처마를 제공하는 것들이 모여 도시의 공공성을 형성합니다.

 

영등포 지역에 위치한 ‘생각공장 당산’은 선큰광장, 도시 산책로 등 사용자 중심의 차별화된 공간을 설계한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선큰광장의 경우 ‘길’과 ‘광장’을 연결해 도시의 흐름을 연장시키고 지역 커뮤니티와의 접근성을 강화하며 공공건축의 좋은 예시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생각공장 당산’의 선큰광장

 

▲ ‘생각공장 당산’ 1층 공공공간

 

● ‘제3의 장소’가 만드는 사회적 안전망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집과 일터를 제외하고, 사람들이 조건 없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제 3의 장소’라고 명명했습니다. 과거 우리에게 나무 아래 평상이 그 역할을 했다면,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스타벅스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과거 만남의 장소 : 나무 아래 평상

 

스타벅스는 누구나 비용만 지불하면 눈치 보지 않고 머물며 책을 읽거나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도시의 거실 역할을 자처해왔습니다. 실제로 스타벅스가 들어선 동네의 유동 인구가 늘어나고 치안이 좋아지는 현상은 ‘도시의 공공성’이 민간 자본을 통해서도 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 현재 만남의 장소 : 스타벅스

 

하지만 건축의 사회적 역할은 여기서 한 걸은 더 나아가야 합니다. 상업 공간인 스타벅스가 ‘구매력 있는 시민’에게만 선택적 공공성을 제공한다면, 진정한 건축적 공공성은 ‘구매력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을 지향해야 합니다. 커피 한 잔을 사지 않아도 잠시 다리를 쉼터 삼을 수 있는 공공도서관의 로비, 노인들이 소외되지 않고 계절의 변화를 즐길 수 있는 열린 벤치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 용산역 계단 쉼터

 

● 모두를 품은 건축의 언어

 

공공성을 논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가치는 ‘포용성’입니다. 특정 소수만을 위한 특별한 설계가 아니라, 건축이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체적 조건, 연령, 언어와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공간을 향유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것에서 건축의 사회적 역할은 완성됩니다.

 

●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건축의 확장

 

이제 건축의 공공성은 단순히 ‘공간의 나눔’을 넘어 ‘시간의 나눔’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인구 구조의 변화와 기후 위기 속에서, 건축은 더 이상 한 번 지어지면 고정된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따라 용도를 바꾸고, 에너지를 생산하며 지역 공동체를 담아내는 ‘유연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 이상적인 공공건축(AI 생성이미지)

 

이러한 공공성의 철학은 다음 칼럼에서 이어질 ‘도시재생’의 핵심 동력이 됩니다. 낡고 버려진 공간에 공공성을 수혈하여 장소성을 되살리고, 그렇게 살아난 공간은 다시 ‘1인 가구’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삶을 담아냅니다.

 

결국 건축의 공공성이란, 개인의 파편화된 삶을 도시라는 커다란 유기체 속에서 부드럽게 연결하는 ‘이음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건축의 공공성은 무엇인가요?

미래의 건축가와 건축학도들이 마주해야 할 질문은 ‘얼마나 화려한 건물을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이 건물이 도시의 공공성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한 줄의 벽과 한 평의 공간이 ‘우리’라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건축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사회적 책임입니다.

 

▲ 부르라렌 미디어 도서관(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