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위한 ‘나’ 찾기 : 삶으로의 여행을 떠나다.

INTRO

건축을 잘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정작 가장 먼저 마주해야 했던 것은 공간이 아니라 ‘나’였습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른 채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따라왔습니다.

오늘 만날 최수영 건축가는 이러한 의문 속에서 도면과 프로그램에서 잠시 벗어나 삶, 마음, 경험을 탐구하는 여정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건축을 떠난 시간이 오히려 건축을 더 명확하게 보게 만든 순간들이 쌓이면서 좋은 공간은 결국 ‘좋은 나’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는 결론에 닿았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건축 외부에서 얻은 확장이 어떻게 다시 건축을 바꿨는지, 삶을 탐구한 경험이 건축가의 태도를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건축가에게 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럼, 우리 함께 ‘삶의 여행’을 떠나볼까요?

INTERVIEW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삶의 여행 디렉터 최수영 이라고 합니다.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대학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현재 교수이자 건축가로도 활동하고 계신데, 삶의 여행이라는 활동을 기획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2019년부터 시작했던 삶의 여행은 건축가로서 세상에 나누고 싶었던 메시지가 분명하였습니다. 당시 사용하지 않는 공간(임대)이 무분별하게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있었고, 앞으로의 건축은 공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모든 분야의 공통된 비전이 ‘본질에 다가가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에 앞서 조성하려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좋은 공간이 탄생되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요. 그럼 사람의 마음은 뭘까? 라는 꼬리질문을 따라 공부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마인드풀니스 영역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 모든게 흘러가듯 연결되었고 현재 건축가로서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이야기하게 된 이유입니다.

 

 

Q. 여행이나 명상 같은 건축 외 활동이 “도면 위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이었나요?

 

A. 건축을 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사고 범위의 확장과 자립입니다. 특히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연전연패’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장 누벨, 렌조피아노, 프랭크 게리, 각각 다른 길을 걸어온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건축에 계속 뜻을 두면서도 결코 전문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영역에 흥미를 갖고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도전해왔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나는 건축에 매료된 상태였지만 실제로 매일매일 어울렸던 것을 건축 분야 이외의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역으로 보다 넓은 시야와 사고를 가져다주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건축가로서 살아가려고 한다면 먼저 자신이라는 것이 확실히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안됩니다. 디자인 감각, 지력도 물론 필요합니다만 그 이전에 인간으로서 강한 정신력, 즉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삶의 방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고범위의 확장은 나만의 유니버스를 넓히게 됩니다. 유니버스가 넓어질수록 시시각각 펼쳐지느 현재(일, 관계, 감정 등)에 일대일 대응을 하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오히려 왜 그럴까 한발짝 물러나 연결성을 좇게 되고 본질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다보면 외부 요소에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의 자립심이 생기게 됩니다.

 

 

Q. 교수님에게 “좋은 공간”의 기준은 시간이 지나며 어떻게 달라졌나요?

 

A. 삶의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외형적으로 멋진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 생각했습니다. 1차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외적인 것이기에 당연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삶의 여행을 시작하면서 좋은 공간은 스토리가 있는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건축을 하면서 기획, 설계, 운영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기획 단계부터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되고 운영에 있어 컨텐츠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여기서 컨텐츠는 그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합니다. 오리지널 컨텐츠는 유일무이한 스토리이기에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훔볼트 대학도서관 단면도

 

Q. 실무·교육·기획을 모두 경험한 지금, 교수님이 바라보는 ‘오늘의 건축’은 어떤 지점에서 가장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A. 분야에 있어 다방면의 요소가 결합되어 있기에 어느 한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강조하는 부분은 WHOLE(전체의)입니다. 이는 앞서 말한 기획, 설계, 운영을 왜 동시에 생각해야 되는지로 연결됩니다. 그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하는 고민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끝의 경계를 규정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의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때 메인 설계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관찰력은 많은 학생들이 어렵게 느끼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관찰력의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은 무엇인가요?

 

A. 저는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성대로 움직이는 일상에 조금이나마 벗어나보는게 좋습니다. 드넓은 세상 속에 나를 있는 그대로 맡겨 보고 나의 시야를 계속 넓혀가면 좋겠습니다. 여행이라고 멀리 떠나는 해외여행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내여행도 좋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독서나 전시, 영화 등도 저는 여행이라고 지칭합니다.

 

 

Q. 건축을 잠시 떠나 있던 시간들이 오히려 건축을 더 명확하게 보게 만든 순간이 있었나요?

 

A. 2018년 회사에서 잠시 휴직을 하고 세계여행을 떠난 그 시간을 저는 ‘아주심기’ 라고 지칭합니다. 아주심기는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뜻입니다. 그때를 회상해보면 우선 되었던 것이 마음이 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정답을 찾으려고 떠난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돌아와 건축디자인의 다름, 무한한 가능성을 알게 됩니다. 베를린에 위치한 홈볼트 대학 도서관은 가운데 공간을 비워낸 것이 디자인의 핵심입니다. 건축에서는 보이드(VOID)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비움은 우리네 삶에 있어서도 매번 생각해봐야되는 부분인데, 결과론적으로 여유와 감동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Q. 여러 역할을 병행하시면서, 교수님께서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질문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A. 정말 많지만 한가지를 집어보자면, ‘실무와 학문을 오가며 현실과 이상의 접점을 어떻게 연결해야할까?’ 인 것 같습니다. 이를 알아가기 위해 삶의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본질이고 현실적으로 필요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현재 제가 삶의 여행을 실천하는 이유입니다.

 

 

Q. 바빠질수록 ‘생각하는 시간’이 사라지게 되는데, 교수님은 그 시간을 어떻게 지켜나가시나요?

 

A. 지금까지 경험을 토대로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쁘다고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만 집착하면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잠시 멈추어 정리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실행에 옮깁니다. 이러한 것을 반복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어떠한 결과에도 능숙하게 대응할 수 있는 내재적 힘도 가지게 됩니다. 삶의 여행에서 자문자답의 중요성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Q. 실패와 혼란이 오히려 교수님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만든 경험이 있었나요?

 

A. 사실 저는 ‘실패’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도 대부분은 실패라기보다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왜 그런가를 생각해보면, 건축이라는 일이 다른 분야에 비해 공정이 길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버티는 힘이나 끈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을 하면서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멈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자문자답을 통해 상황을 정리하는 편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음 단계의 결과가 A일 수도 있고 B일 수도 있다는 걸 미리 인지하게 되는데,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좌절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런 태도는 결국 제가 모든 일을 할 때 의도와 비전을 먼저 정리하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먼 미래의 목표를 설정해두면, 지금 겪는 혼란이나 시행착오는 그 목표로 가기 위한 수많은 단계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그래서 실패라는 말 대신 ‘다음 스텝’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건축을 하는 학생들이 가장 자주하는 고민이 내가 재능이 없는 것 같은데 이 길을 걸어나가도 되나 하는 고민이라고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잘하고 있는가?’ 라는 회의가 찾아올 때 어떻게 대응해 나가시나요?

 

A. 잘하고 있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 저는 그 기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것을 강조합니다. ‘잘하는 것’보다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것을요. 주체성을 확보할 때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끼고 주어진 일에도 흥미를 느끼며 좀 더 잘 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립으로의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이죠. ㅎㅎ

 

 

Q. 교수님이 지금의 시선에 도달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고독의 순간’이 있다면요?

 

A. 2018년 휴직 후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2주간 자문자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주동안 휴대폰도 멀리한 채 외부요소와는 완전히 단절하고 오로지 나의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질문들에만 대답을 하던 시간을 가졌습니다. 복직을 할건지, 그냥 정말 마음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흐름에 따라 대답하면서 지냈던 그 시간이 지금의 저에게 도달하게 만들었습니다.

 

 

Q. 앞으로 건축을 공부하는 젊은 세대가 먼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끼시는 ‘근본적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건축가이기 전에 유일무이한 사람으로서 나는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들을 스스로 키워나가기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자발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능동적으로 방법을 모색했으면 좋겠습니다.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자신이 속한 그룹 내에서 정체성과 특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쌓여 성취한 결과는 오늘과 내일의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삶의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스스로 방향을 잃은 사람에게 건네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A. Everyone is on their own journey, and I’m on mine. 모두가 각자의 여정에 있고 나는 내 여정에 있다.

강의 때마다 마지막 슬라이드에서 꼭 이야기하는 말인데요. 이 응원의 한마디가 많은 분들이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나의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OUTRO

인터뷰를 마치고 가장 또렷하게 남은 문장은 ‘Everyone is on their own journey, and I’m on mine. 모두가 각자의 여정에 있고 나는 내 여정에 있다.‘ 였습니다.

누구도 대신 답해줄 수 없고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삶이라는 길 위에서 우리는 늘 방황하고 때로는 흔들리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건축을 하든, 공부를 하든, 혹은 삶을 고민하든 우리가 반복해서 돌아가야 하는 지점은 ‘나의 길을 내가 걸어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인터뷰 속 이야기들이 각자의 여정을 걸어가는 분들게 조금이나마 생각의 방향과 여유가 되어드렸기를, 그리고 지금의 힘든 순간을 건너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게라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