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와 강단을 넘나든 42년,건축학과 임종엽 교수가 전하는 이야기
INTRO
42년 동안 실무와 강단을 오가며 건축을 고민해 온 임종엽 교수.
현장에서 설계 도면을 붙들고 밤을 지새운 시간부터,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치열하게 건축을 토론해 온 날들까지. 그에게 건축은 단순한 설계가 아니라 삶을 확장해 가는 여정이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 AI가 도면을 그리고 수많은 툴이 디자인을 완성하는 지금, 교수님은 오히려 질문하는 힘, 몰입하는 태도, 그리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한다. “경쟁은 남이 아니라 나와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은 건축을 배우는 우리에게 단단한 울림을 전한다.
실무와 강단을 넘나들며 쌓아온 42년의 시간, 그 속에서 건져 올린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IEW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인하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에서 학생들과 함께 건축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는 임종엽 교수입니다.

Q. 건축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와 실무에서 교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저는 어릴 적 만화 그리는 걸 좋아했고, 만들고 그리는 걸 즐겼어요. 자연스럽게 건축을 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죠.
또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컸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유익한 흔적을 남길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실무를 하다가 교수로 오게 되었는데, 사실 실무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있습니다. 더 깊게 배우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교수라는 직업을 하면서 건축의 기본과 기초를 더 깊게 공부할 수 있었고, 건축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졌어요. 최전선에서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여전히 건축을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Q. 교수님도 학생 시절에 학기 생활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나요? 그때는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건축학과 학생들은 프로젝트 결과물로 평가받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과 비교하게 되고,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압박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어요. 남들보다 더 우수한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어요. “경쟁은 결국 남이 아니라 나와 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요.
내가 내 한계를 어디까지 넘어설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건축의 매력은 결국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과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Q. 교수님께서 학생 때 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경험은 무엇인가요?
A. 저는 규칙을 잘 지키는 편이라 범생이처럼 살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가끔 틀을 벗어나서 다른 경험을 해본 게 정말 도움이 됐습니다.
건축을 알기 위해서 무조건 건축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건축을 둘러싼 외부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음악, 미술, 여행, 사람, 사회… 다양한 맥락을 접해보는 경험이 결국 건축을 이해하는 데 큰 자산이 됩니다. 가끔은 조금 삐딱한 생각이나 행동이라도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 때 아니면 해보기 힘들거든요.

Q. 반대로 ‘학생 때 이것만은 미리 해둘 걸’ 하고 아쉬운 부분도 있으신가요?
A. 많죠. 특히 반복의 힘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실무에 들어가면 매번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것을 여러 번 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학생일 때는 오히려 자유롭게 반복할 수 있는 시기거든요.
책도 여러 권을 얕게 읽는 것보다, 한 권을 열 번 읽는 게 훨씬 깊이 있는 이해를 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반복을 통한 훈련을 학생 때 조금 더 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학생 때는 빨리 뭔가 새로운 걸 배우고 싶어서 기초를 깊게 반복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실무에선 매번 새로운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오히려 한 가지를 여러 번 훈련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지금 학생분들께는 기초를 쌓는 시간을 꼭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는 단순히 도면을 잘 그리고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만이 아니에요. “문이란 무엇인가?”, “기둥은 왜 필요한가?” 같은 기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찾아보는 힘을 말하는 겁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한 권을 여러 번 읽으며 자기만의 정의를 쌓는 게 더 큰 힘이 돼요. 그렇게 반복과 질문을 통해 쌓은 기초는 이후 실무나 연구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되어 줄 겁니다.

Q. 급변하는 AI 시대에서, 학생들이 건축을 공부할 때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A. 요즘 AI와 디자인 툴이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면서, 디자인을 더 화려하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죠. 그런데 저는 그럴수록 질문하는 힘을 강조하고 싶어요.
AI가 답을 제시할 수는 있어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건 인간의 영역입니다.
저는 이걸 “긍정적 회의주의”라고 표현해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품고, 스스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다시 질문하는 것. 이게 결국 우리를 전문가답게 만드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Q. 크리틱을 들을 때 교수님 두분의 의견이 달라서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럴 때 교수님께서 해주고싶으신 조언은?
A.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수님들의 크리틱은 좋은 단서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조합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학생 본인이에요. 두 분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혼란스러워하기보다, 그 사이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다른 의견을 만날수록 더 풍부한 사고가 가능해져요.

Q. 교수님이 생각하는 ‘성공적인 학기 생활’의 핵심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A. 한마디로 “집중과 몰입”이에요.
요즘은 해야 할 일도, 선택지도 너무 많잖아요. 그래도 학기마다 한 번쯤은 하나에 완전히 몰입해 보는 경험을 꼭 해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모든 걸 다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흐트러질 수 있어요. 선택과 집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한 가지에 깊이 빠져보는 것. 그 경험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값지고 의미 있는 배움으로 남을 겁니다.

Q. 교수님께서 지도하면서 인상 깊었던 학생의 학기 생활 패턴이 있나요?
A. 있죠. 학생들의 패턴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인상 깊었던 학생들은 관심사가 분명한 학생들이에요.
건축은 범위가 넓고 해야 할 게 많아서 쉽게 지칠 수 있는데, 관심 있는 주제를 깊게 파고드는 학생들은 눈빛부터 달라요. 실수하더라도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태도가 보일 때 가장 기대가 됩니다.
요즘 학생들은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어 방법론은 훨씬 유리해졌지만, 대신 끈기 있게 몰입하는 모습은 조금 줄어든 것 같아요. 그런데도 특정 주제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깊게 파고드는 학생들을 보면, 그 열정이 눈빛에서 느껴집니다.
학생 시절의 가장 큰 장점은 실수가 용납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시기라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거기에 몰입해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특히 인상 깊습니다.

Q. 학기 중 과제를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를 보며 ‘이건 정말 잘한다’고 느낀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저는 프로세스를 잘 지키는 학생들을 높게 평가해요.
과제를 문제의 ‘정답’을 찾듯이만 접근하면, 빨리 결론을 내리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디자인은 결론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거든요. 분석하고, 자료를 찾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단계별 흐름을 몸에 익히는 학생들이 있어요. 이런 학생들은 결과물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결국 실무에서도 문제를 접했을 때, 원인부터 대안을 찾아가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 더 강해요.
그래서 과제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가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 입장에서 학생들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어떤 점인가요?
A. 요즘 학생들을 보면 주변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모습이 보여요.
평균에 맞추려고 하거나 두드러지지 않으려는 안정감 속에서, 스스로를 제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축은 정답이 하나가 아니에요. 오히려 다양한 답을 스스로 증명해내는 과정이 중요한 학문이에요. 성적이나 평가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만의 스케치를 찾아가듯 자기 생각에 확신을 갖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게 결국 학생 시절에 시도해볼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Q. 최근 몇 년간 학생들의 수업 태도나 학업 방식에서 느낀 변화가 있으신가요?
A.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확실히 달라요.
코로나 전에는 몸으로 부딪히고 현장에 나가보는 수업, 팀으로 협업하는 경험이 많았는데, 이후에는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공동의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정보와 AI 툴은 넘쳐나는데, 오히려 자신의 시야를 좁히는 방식으로 학습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워요. 그래서 지금일수록 자기만의 생각을 유지하면서도 협업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접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건축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작업이에요.
“나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해 토론하고, 다양한 답을 찾아보는 경험을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Q. 앞으로의 건축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건축은 기술과 예술을 넘어 인간을 위한 일이에요.
시대가 급변할수록 우리가 다시 붙잡아야 하는 건 사람과 공동체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개인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지만, 결국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예요. 좋은 건축가는 타인과 교감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어요. 가까운 친구부터 낯선 사람까지, 얼마나 깊이 공감할 수 있는지가 건축가에게는 중요한 자질입니다. 기술도, 예술적 장치도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에요. 그래서 건축을 공부한다면, 사람과 교감하는 힘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OUTRO
임종엽 교수의 이야기는 단순히 건축을 공부하는 방법을 넘어, 우리가 건축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시선을 열어줍니다. AI가 도면을 그리고, 수많은 툴이 디자인을 완성하는 시대에도 그는 끝내 질문하는 힘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강조합니다.
“건축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고, 경쟁은 남이 아니라 나와 하는 것이다.”
42년의 경험 속에서 건져 올린 그의 메시지가 건축을 배우는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