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패션, 두 학문이 공유하는 디자인 이야기

INTRO

건축과 패션은 표면상으로는 독립적이고 개별적 영역인 것처럼 보입니다. 건축은 공간을 만들고 구조하며, 패션은 신체를 감싸고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이 두 분야는 상호보완적이며 긴밀히 연결된 디자인 언어를 공유합니다.

 

패션은 신체를 위한 ‘포터블 쉘터(portable shelter)’ 역할을 하고, 건축은 인간을 위한 물리적 공간이지만, 두 가지 모두 비례와 스케일, 형태와 기능, 그리고 정체성의 표현이라는 공통의 디자인 원칙 등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이번 아티클은 서로 독립된 영역으로 분류하는 건축과 패션의 교차점을 탐색하고 두 영역이 상호보완적으로 실현되는 사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좌)도면 제작 과정 / (우) 의류 제작 과정 (출처 : PIXABAY)

 

공통된 디자인 원칙

건축은 대규모의 영속적인 구조물을 다루며, 패션은 개인의 신체에 맞춘 일시적인 의복을 디자인합니다. 건축은 기능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중시하며, 패션은 건축보다 더 미적이고 현재의 트렌드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은 두 분야가 서로를 보완하고 영감을 주는 기반이 됩니다.

 

● 보호의 기능

 

건축은 인류가 자연현상과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하고자 만들어진 피신처에서 시작되었으며, 이는 안전성을 요구하는 보호의 기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식(패션의 원초적인 개념)은 거친 기후와 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육체적,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착용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즉 건축과 패션 모두 ‘위험을 대처’하는 본능이라는개념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좌) 원시적 복식 형태 / (우) 원시적 동굴 형태(출처 : PIXABAY)

 

● 비례와 스케일

 

건축과 패션 모두 비례와 스케일을 중요시합니다. 건축에서는 인간의 움직임과 공간 경험을 고려하여 설계하며, 패션에서는 착용자의 신체를 고려하여 의복을 디자인합니다. 두 분야 모두 균형과 조화를 통해 시각적 흥미를 유도합니다.

 

(좌) 레오나르도 다빈치 인체치수(출처 : WIKIPEDIA) / (우) 스케일을 통한 도면 제작 과정(출처 : PIXABAY)

 

예를 들어, 기원전 벽화 속 이집트인의 의복은 마치 피라미드를 닮은 삼각형입니다. 그리스 시대의 신전 형태와 강대 조각상에서 나타나는 옷의 모양은 공통적으로 수직선을 강조한 형태로 절제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 자기표현의 욕구

 

건축은 공간 설계와 재료, 형태를 통해 거주자나 사용자의 삶의 방식, 감정,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마치 패션이 옷과 소재, 색채, 실루엣을 통해 개인 정체성과 문화적 배경을 표현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는 건축과 패션이 모두 ‘비언어적 시각 언어’로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패션은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이론에서도 언급되듯이 색상, 질감, 장식 등이 개인의 성격이나 사회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기호 체계입니다. 건축 또한, 아방가르드나 표현주의 같은 디자인 철학 아래 설계자의 창의성과 시대정신, 문화적 태도를 공간으로 형상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두 분야는 매체와 규모는 다르지만, 모두 ‘자기표현’이라는 같은 목적을 지닌 예술적 언어입니다.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 피라미드(출처 : UNSPLASH)

 

결국 건축과 패션은 모두 ‘자기 자신을 세상에 보여주는 방식’으로서, 하나는 우리의 삶이 펼쳐지는 공간을, 다른 하나는 우리의 몸을 표현의 장으로 삼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개성과 정체성, 그리고 시대적 맥락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하고 소통하려는 욕망을 반영합니다.

 

● 인간 중심의 디자인

 

건축에서는 조명, 온도, 동선, 인체공학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공간 사용자에게 최적의 신체적·감정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는 마치 패션에서 착용자의 체형, 움직임, 감정 상태를 고려한 옷을 설계하듯이, 사용자의 필요와 맥락을 깊이 연구하고 반영하는 방법입니다. 두 분야 모두 초기 기획 단계부터 사용자를 참여시키고,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며 반복적으로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는 인간 중심 디자인이 중시하는 원칙을 자연스럽게 따르는 것입니다.

 

심리적인 관점에서, 패션 분야에서는 착용자의 일상적 움직임, 사회적 상호작용, 심리적 편안함 등을 고려하며 옷의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합니다. 이는 건축이 사람들의 심리 상태, 사회적 맥락, 공동체 유대를 고려해 공공 공간이나 주거 공간을 계획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디자인 워크샵 (출처 : UNSPLASH)

 

또한 건축과 패션 모두 협업을 통해 더 섬세하고 포괄적인 디자인을 완성합니다. 예컨대, 건축에서는 사용자 워크숍과 참여 설계(Participatory Design)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요구를 반영하며, 패션에서는 실제 착용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반응형·적응형 디자인(adaptive fashion)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두 분야는 최종적으로 ‘인간을 위한, 인간 중심의 디자인’이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사용자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드는 해답을 창의적으로 구현합니다.

 

● 예술이 아닌 문제해결 과정

 

건축과 패션은 종종 예술로 오해되기 쉽지만, 엄밀히 말하면 두 분야 모두 ‘기능이 주가 되는 디자인’ 영역입니다. 미적 감각이 중요하지만, 건축은 무엇보다 안전, 구조, 예산, 공간 활용 같은 실용적 요소를 최우선에 둡니다. 예컨대, 빌딩이 아름답게 설계되더라도 무너지면 안 되며, 비용 내에서 지어져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예술이 아닌, ‘설계된 목적’을 실현하는 실용적 활동입니다.

 

패션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옷은 착용자의 체형, 움직임, 날씨, 문화적 환경 등을 고려하여 제작되어야 하며, 단지 시각적 아름다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한 포럼 참가자는 “Fashion is NOT art. It’s design. Design pursues aesthetics and functionality in equal priority”라고 단언하며, 디자인은 심미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전문 분야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옷은 입는 사람의 편의와 사회적 규범을 충족해야 하므로, 순수한 예술이라기보다는 충실한 기능성을 갖춘 ‘적용이 가능한 디자인’입니다.

 

종종 건축과 패션은 예술로 포장되지만, 실제로 두 분야는 ‘문제를 해결하는 목적’과 ‘사용자 중심의 기능성’을 앞세우는 실천적 활동입니다. 예술이 감정과 주제를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건축과 패션은 ‘누가, 어디서, 어떻게 쓰냐?’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디자인입니다. 따라서 이 둘은 예술의 일부 특성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예술이 아니다’라고 보는 관점이 타당합니다.

 

건축과 패션의 협업 사례

건축과 패션은 단순히 미적 요소를 교환하는 수준을 넘어서, 공간, 구조, 메시지, 경험까지 공유하며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 협업의 사례들은 두 분야가 독립적인 존재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 루이비통과 프랭크 게리의 협업

 

2024년 아트바젤 파리에서 루이비통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 손을 잡고 특별한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이번 전시는 파리의 상징적인 공간 그랑팔레에서 열렸으며, 프랭크 게리의 독창적인 건축적 미학과 루이비통의 역사를 결합한 새로운 차원의 협업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좌)디즈니 콘서트홀 / (우) 구겐하임 미술관 (출처 : WIKIPEDIA)

 

프랭크 게리는 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루이비통 재단을 설계한 현대 건축계에서 대표적인 건축가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곡선을 살린 비정형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니콜라스 제스키에르는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브랜드의 예술적 실험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아트바젤 (출처 : WIKIPEDIA)

 

프랭크 게리와 니콜라스 제스키에르가 협업한 공간은 전시장의 공간을 하나의 예술적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제품 전시를 넘어, 패션과 건축, 예술이 하나로 융합된 새로운 경험을 제시하며, 패션을 넘어선 예술적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루이비통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브랜드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과 혁신을 동시에 표현하는 브랜드의 유연한 창의성을 보여줬습니다. 아트바젤이라는 세계적인 예술 무대에서 패션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경험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건축 디자인과 함께 선보인 대표적인 협업 작품은 프랭크 게리가 재해석한 백입니다. 그의 건축물을 포함한 작품들에서 영감 받은 협업 작품들이 카퓌신 백에 담겨있습니다. 카퓌신은 1854년 파리의 루뇌브 드 카퓌신 거리에 문을 연 루이비통의 첫 번째 매장에 대한 경의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백입니다.

 

● 막스마라와 RPBW 사무소의 협업

 

2015년, 뉴욕 맨해튼에 새롭게 개관한 휘트니 미술관은 심미적, 기능적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미술관의 개관 기념으로 막스마라는 RPBW와 협력해 미술관의 건축적 요소를 담아낸 가방을 만들었습니다. 휘트니 백은 단순한 패션 아이템을 넘어 건축과 패션의 경계를 허문 혁신적인 제품입니다.

 

(좌) 휘트니 미술관 / (우) 막스마라 브랜드 매장 ( 출처: WIKIPEDIA)

 

휘트니 백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적 특징은 미술관 외관의 모듈식 요소에서 영감을 받은 리브드(Ribbed) 디자인입니다. 10주년을 맞아 다시 주목받는 알류미늄 컬러의 휘트니 백은 미술관 외관의 메탈릭한 느낌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특히 레드 컬러의 나파(nappa) 소재로 안감을 제작해 외부의 차가운 메탈릭함과 내부의 따뜻한 컬러가 대비를 이루며 미적 감각을 한층 높였습니다.

 

● 프라다와 OMA 램콜하스의 협업

 

(좌) 프라다 브랜드 스토어 / (우) OMA 렘 콜하스 ( 출처: WIKIPEDIA)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프라다(PRADA)는 건축과 예술을 도구로 패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브랜드입니다. 이런 프라다는 OMA의 수장 램콜하스와 25년이 넘는 협업을 통해, 패션과 건축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해 왔습니다. 이들은 건축을 통해 패션의 경계를 확장하고, 예술적 탐구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공간을 찬조해 브랜드의 철학을 구체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콜하스의 접근범은 프라다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며, 패션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프라다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9년 서울 경희궁 앞에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가 있습니다. 이름처럼 건물은 회전가능한 독특한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내부에서 ‘움직이는 스커트(Skirt)‘ 컬렉션과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과 패션이 융합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이벤트 특징에 따라 건축의 물리성을 상호작용 매개로 활용하였습니다. 공간 변형은 콘텐츠 변경과 동기화되어, 방문객이 보는 방향, 벽과 천장이 어떤 모습인지, 동선은 어떻게 형성되는지 등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그날의 프로그램과 연동되었습니다. 즉, 패션 전시라면 시각 중심의 구조, 영화 상영이라면 암막과 좌석 설계가 필요한 구조, 설치 예술이라면 조형적 설치가 어울리는 벽면 구성 등, 건축이 콘텐츠의 요구에 따라 스스로 변신했습니다.

 

OUTRO

혁신적인 공간이자 하나의 패션 퍼포먼스로 자리한 Prada Transformer처럼, 건축과 패션은 표면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을 위한 쉼터’라는 근본 목적을 지향합니다. 즉, 두 분야 모두 형태의 실험성과 구조적 언어를 통해 문화적 메시지를 형상화하며, 고정된 경계를 허무는 매체로 작동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플리츠, 드레이핑, 입체적 조형 같은 패션의 언어가 건축 공간에, 반대로 테크토닉한 구조미학이 의복에 스며드는 사례를 다방면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패션이 건축적 사고를 차용해 구조와 공간을 재정의하듯, 건축 또한 패션적 감각을 통해 “입는 건축”의 가능성을 실험해가는 중입니다. 이렇듯 패션과 건축은 서로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내며, 향후 디자인의 지평을 더욱 풍부하게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