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건축 맛보기 ⑤ 헤드마크 박물관(Hedmark Museum)

시간과 공간의 재구성, 헤드마크 박물관(Hedmark Museum)

헤드마크 박물관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헤드마크 박물관(Hedmark Museum)은 노르웨이 하마르(Hamar)에 위치한 역사 유적지로, 1500년대 대화재가 발생한 후 오랜 시간 폐허로 방치된 곳입니다. 이후 농장으로 사용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지만, 보존을 위해 시민과 시가 나서면서 성채 보존과 활용을 위한 기금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스베레 펜(Sverre Fehn)이 설계를 맡아, 1967년 박물관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건축가는 해당 프로젝트 속에서 지난 도시 역사를 기억하고 유적을 보존하면서도 미래세대를 위한 새로운 교육의 장을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훼손된 유적을 어설프게 복원하기보다는 격변의 시간이 건축안에 온전히 담겨 후대에 전달되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북유럽 건축 맛보기 시리즈의 다섯 번째, 헤드마크 박물관(Hedmark Museum)을 통해 중세의 유적과 현대의 건축이 섬세하게 맞닿아 있는 지점들을 맛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건축은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가?

헤드마크 박물관 입면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헤드마크 박물관이 자리한 하마르는 중세 노르웨이의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 13세기에 건립된 수도원과 대성당은 당시 종교적, 교육적 역할을 수행했으나 16세기 종교계혁 이후 점차 쇠퇴하며 폐허가 되었습니다. 방치된 건축물 속에서 건축가가 선택한 접근 방법은 단순히 건물 본래의 형태적 되돌림이 아니라 현대적 건축 요소의 개입을 통한 서로 다른 시간의 장면을 읽히게끔 하는 것이었습니다.

 

헤드마크 박물관 1, 2층 평면도 (출처 : ArchEyes)

 

본격적인 건축 맛보기에 앞서 헤드마크 박물관의 평면을 가볍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박물관은 13세기 유적과 15세기 성의 유적을 보관하는 U자형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방문객은 중세부터 20세기까지 노르웨이의 농촌 역사를 연대순을 이행할 수 있도록 동선이 계획되었습니다. 이 공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경사로입니다. 평면을 살펴보면 각 공간과 층을 가로지르며 동선을 만드는 경사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방문객에게 유동적이고 끊임없는 경험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헤드마크 박물관 진입 램프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헤드마크 박물관은 평면에서 보았던 긴 콘크리트 램프로 시작됩니다. 방문객은 꺾어지는 경사로를 따라 걸으며 내부에 진입하기에 앞서 건물의 외관과 입면, 그리고 자연의 풍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점진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헤드마크 박물관 램프와 전경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이 콘크리트 램프는 훼손된 유적의 형태를 그대로 이용한 방식으로, 사이사이를 관통하며 관람객이 다양한 눈높이에서 유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동선 설계는 단순히 유적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 유적과 함께 ‘경험하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헤드마크 박물관 콘크리트 계단과 석조 벽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이곳에서 사용된 핵심 재료 중 하나가 바로 콘크리트입니다. 중세의 거친 석조 벽과 대비되는 매끄러운 콘크리트 구조물을 통해 내부에 진입함과 동시에 두 시간대의 공존을 경험하게 됩니다. 유사한 색감과 텍스쳐로 보이나 전혀 다른 질감과 형태를 통해 재료의 성질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개구부를 감싸는 목재 프레임과 유리창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나무와 유리 또한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건축 재료입니다. 투명한 유리의 사용은 유적지의 형태를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재료의 투명성을 통해 빛을 내부로 삽입하는 창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내부에서 만날 수 있는 유적의 형태는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목재 구조의 지붕과 콘크리트 내부 공간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또한 자칫하면 차갑고 무거워 보일 수 있는 현대의 콘크리트와 역사적 역할의 석조 벽을 모두 덮는 목재 구조의 지붕으로 감싸지고 있습니다. 또한 목재 기둥의 바닥은 브레킷으로 지탱되는 작은 틈이 있어 구조물이 놓인 표면 위로 약간의 레벨 차를 두고 있어 가벼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헤드마크 박물관 전시물 및 내부 공간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콘크리트와 석조 벽, 목조 지붕, 폐허가 된 유적물이 모두 건축적 요소가 되어 함께 어우러지며, 각각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극적인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건축물을 형태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되돌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섬세하고 인상적인 방식으로 제안된 사례입니다.

 

박물관 주변 산책로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헤드마크 박물관 자체는 크지 않아 둘러보는 데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는 편이니, 이곳에 방문하였다면 주변의 건축물 또한 함께 둘러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강가 주변의 산책로와 곳곳에 그대로 보존된 건축물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되어줍니다.

 

하마르 대성당 유적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하마르 대성당 유적(Cathedral Ruins in Hamar)입니다. 1125년에 지어진 하마르의 대성당으로,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먼 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시민들의 정신적 구심점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스웨덴과의 전쟁 중 불에 타 폐허가 되었고, 이후 1987년 공모전을 통해 셸 룬(Kjell Lund)과 닐스 슬라토(Nills Slaatto)의 설계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마르 대성당 유적 내부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로마네스크 양식의 육중한 중세성당을 감싸는 강철과 유리의 투명한 건물은 물성의 대비와 성당의 건축적 확장을 통해 끊겼던 시간을 다시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건축가들이 해석한 ‘보존’의 개념은 단순히 보호되어야 하는 유적의 의미를 넘어 다양한 주민 행사와 공연이 개최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로, 대성당이 다시금 도시 정신의 중심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헤드마크 박물관의 어느 한 장면 (출처 : 렉-크레이터 서윤지)

 

노르웨이 하마르의 해드마크 박물관은 단순한 복원 작업을 넘어, 새로운 건축적 개입이 과거의 흔적을 어떻게 보존하고 강조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스베레 펜의 설계는 유적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관람객들에게 보다 깊이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을 제안하였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기존의 유적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면서도 옛 중세건물의 평면적 부조합을 해결하는 혁신적 건축 아이디어로 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최고의 건축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사물의 움직임과 시간의 관계는 기묘한 현상이다. 만약 시간이라는 요소를 제거하면, 우리는 오히려 사물을 움직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양한 사물들은 서로에 대한 배치와 방향 속에서 반응하며 소통하기 시작한다. 총알은 방패와 도끼와 상호적인 대화를 나눈다. 공간은 방문객이 떠난 후에도 고요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물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며, 고유한 고독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속된다. – 스베레 페인”

 

헤드마크 박물관(Hedmark Museum) 맛보기 정보

 

• 헤드마크 박물관 주소 : Strandvegen 100, 2315 Hamar, Norway

• 운영 시간 : 2025년 기준

– 6/3 ~ 6/16 | 11:00 – 16:00 (월요일 휴무)

– 6/17 ~ 8/10 | 10:00 – 17:00

– 8/11 ~ 8/31 | 11:00 – 16:00 (월요일 휴무)

• 입장료 : 2025년 기준

– 성인 : NOK 165,-

– 학생 및 장애인 : NOK 145,-

– 16-25세 : NOK 145,-

– 6-15세 : NOK 75,-

– 6세 이하 : 무료

 

* 가이드투어 등 자세한 정보는 하단의 공식 웹사이트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헤드마크 박물관 : https://domkirkeodden.no/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