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무목적이 목적이라고요?

발행
2023.09.12

INTRO

나는 이번에 2019년 서울특별시 건축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던 ‘무목적(無目的)’빌딩을 보기 위해 서촌 누하동을 방문했다. 무목적이라니 이름부터 호기심이 막 생기지 않는가? 여기서 말하는 무목적은 무슨 뜻일까? 지금부터 같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서촌과 무목적

오랜만에 방문한 서촌은 여전히 조용하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전통이 남아있는 단독주택들, 한옥 담벼락 곳곳에 위치한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까지도 참 아기자기하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네인 서촌. 인왕산이 보이는 멋진 동네라서 일까 서촌은 조선시대 때부터 근현대에 와서도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장소이다. 대표적으로 인왕제색도를 그린 화가 정선과 독창적인 글씨체인 추사체의 대가 김정희. 또한 근현대 화가 이중섭과 윤동주 시인도 모두 서촌 주민이었다니. 이곳 서촌은 그 자체로 역사가 있고 예술과 낭 만이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촌은 상대적으로 높은 건물들이 적고 골목이 많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곳 서촌에는 옛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융합되고 있는데 무목적 건물은 이러한 서촌의 지역적 특징을 고려하여 새로운 것들이 옛 것들을 해치지 않고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서 이질적으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일부러 거친 콘크리트로 마감했다거나 골목을 이어주는 지하통로를 만들었다는 부분 등 많은 곳에서 이러한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무목적 건물

서울시 종로구 누하동 22. 원래 이곳은 LPG 판매소였다고 한다. 도시가스가 없었던 이 동네에 꼭 필요했던 LPG 저장소. 그 기억을 가져간다는 의미에서 원래 기존 건물의 재료였던 콘크리트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다만 주변 오래된 건물들과 서촌 분위기에 잘 녹아들기 위해 일부러 두껍게 만든 콘크리트 외벽에 고압 살수 장치로 물을 쏘아 상처를 내는 치핑(chipping)공법을 사용해 마감했다. 수압의 크기에 따라 벽면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났고 그렇게 오래된 새 건물이 탄생하게 되었다.

 

건물 내/외벽의 상처들

 

이 건물의 또 재미있는 점은 바로 지하를 통해 반대쪽 골목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존에는 반대쪽을 가려면 길을 빙 둘러 갔어야 했는데 이 건물 지하에 통로를 내어 반대쪽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써 주민들이 더 편리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었다.

 

건축가는 작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길을 걷다 자연스럽게 이 빌딩으로 들어오고, 물 흐르듯 배회하게 된다는 뜻에서 ‘무목적’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렇다면 정말 무목적이라는 목적을 이룬 셈이다. 실제로 이곳에 방문해서 답사하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지하 통로를 왔다 갔다 하며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지하 통로 덕분에 불을 수월하게 진압하기도 했었다니 참 유용하고 고마운 건물이다.

 

왼쪽부터 차례로 1층 통로 입구, 지하 통로, 반대편 골목의 모습

 

서촌은 인왕산 경치가 보이는 동네로 함부로 풍경을 가리는 대형 건축물을 지을 수 없도록 서울시에서 지구 단위 계획과 심의를 통해 규제하고 있다. 그로 인해 무목적 빌딩도 3층 건물과 4층 건물을 나란히 붙인 맞벽 건축물이 되었고 그 덕분에 약간은 복잡하지만 보는 곳마다 느낌이 다 다른 재미있는 공간들이 많이 생겨났다.

 

다양한 각들이 생기는 모습

 

 

실내공간 소개

지금 현재 이 건물 1층에는 패션 관련 서적을 판매하는 THE PHRASE와 편집숍 Thimbloon이 있고 2층에는 STUDIO OFF-BEAT 스튜디오, 3층에는 무목적 갤러리가 그리고 4층에는 대충유원지라는 카페가 위치해 있다.

 

입구의 표지판

 

3층 중정과 갤러리 풍경

 

3층 무목적 갤러리에서는 재미있는 전시들이 자주 열리니 무목적을 가게 된다면 한번 가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현재는 YUMIN SHIN 작가님의 DANCE DANCE DANCE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3층에도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큰 창이 있어 서촌의 멋진 풍경들을 볼 수가 있었다. 3층에는 4층과 옥상까지 이어지는 중정이 위치해 있는데 자칫 복잡하고 답답할 수 있는 건물에서 중정을 통해 개방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참 세심한 건축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4층 카페 대충유원지와 옥상 전망대에서는 인왕산의 모습과 서촌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바라보는 순간 넋을 놓게 되는 풍경. 왜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찾아오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문득 시간이 지나도 서촌의 이 풍경과 인왕산은 변하지 않고 오래 남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OUTRO

 

이번에 무목적 빌딩을 답사하면서 배려하는 건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돋보이지 않아도 서로 어울려 조화롭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려고 애쓰지 않고 비워둠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다는 것. 목적지에 다다를 것 같으면서도 다시 새로운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 무목적은 그러한 예상 밖의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다. 무목적 빌딩은 우리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닐까? 이처럼 때로는 목적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겨보자고.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순간들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2023.09.12 · 읽는 시간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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