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환학생 이야기 8편 : Epilogue

큰 호응을 받은 글도 소리소문없이 묻힌 글도 있는 시리즈였습니다. 조회수를 비교해보면 개인적인 생각이 글의 핵심이 되는 경우보다 교환학생과 관련한 정보성 글이 호응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대의 개인적인 감상은 독자의 입장에서 궁금하지 않다는 것은 다년간 블로그를 작성하면서 알고 있음에도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은 모두가 자신을 보라고 뽐내는 글들 사이에서 소수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글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큰 호응을 받기 힘든 글에도 시리즈를 중간에서 끊지 않고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렉터스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시리즈를 돌아보면 교환학생의 경험을 적어야 하는데 학기 시작이 국내와 달라 최종적으로 빌드업만 3편에 걸쳐 적은 것은 어설픈 구성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학교에서의 활동을 찍는 것은 초상권과 같은 문제가 존재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점도 개인적으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내용을 남기겠다는 목표는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여러 경험, 정보들이 담긴 시리즈였지만 최종적으로 결론을 남기지 못한다면 글을 작성한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버리는 성격의 글인 만큼 ‘그래서 교환학생은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환학생 생활을 되돌아보며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환학생 그 자체에는 큰 의미가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글 Prologue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학점을 인정받기도 힘들고 경력으로써 인정해주지도 않기 때문에 교환학생 활동 자체가 진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때문에 교환학생 활동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목표가 명확해야 합니다.

 

Unsplash의Mauro Gigli

 

제가 일본으로 넘어오기 전에 설정한 목표는 교환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경험하고 앞으로의 진로에서 유학이라는 선택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대학원 세미나에 참석하고 수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전체 발표를 하는 등의 학교 내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건축 사무소에 아르바이트 또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유가 생길 때 값싼 국내선 항공을 타고 여행도 다녔습니다.

 

깨달은 점을 크게 정리하면 3가지가 될 것 같습니다.

첫째, 국내보다 석사, 박사 학위를 인정해준다.

둘째, 삶에 대한 개념에 차이가 존재한다.

셋째, 외국인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이다.

 

국내의 대학원 진학률이 낮은 이유는 2년간 추가로 더 공부했을 때의 실질적인 메리트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건축학과의 제1의 목표인 건축사 시험을 치기 위해서는 실무경력이 필요하고 대학원에서의 학업 기간은 최대 2년만 인정하기에 남은 1년의 실무 경력을 쌓아야 하는데 이때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실무를 경험한 인원과 같은 평가를 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석사 학위가 실무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국내 건축계는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Unsplash의RUT MIIT

 

일본의 경우 캔버라 어코드에 참여하고 있지 않아 4년제 교육과정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다만 건축이라는 학문은 4년이라는 기간 안에 배우기에는 그 양이 방대하기 때문에 학부생의 대다수가 대학원을 진학하고 건축계 또한 석사 학위를 인정하며 더 나은 대우를 보장합니다. 즉, 국내에선 최종학력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대학원을 진학하는 것은 그렇게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국가에 따라 해외로 대학원을 진학할 경우 나름의 이점을 가진다고 느껴졌습니다.

 

설계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의 가장 유익한 점은 월급도 경험도 아닌 직장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그리고 일본에서의 실제 건축 설계하는 현장에서 느낀 점은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 시대 뒤떨어져 있거나 또는 현재의 흐름에 따라가기 바쁘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 건축이라는 학문을 배우기로 선택하였을 때 의식주의 하나이자 라이선스가 존재하여 최종적인 책임을 사람이 진다는 점에서 변화가 늦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AI라는 기술의 등장과 함께 건축의 예술적인 부분부터 정형화시킬 수 있는 모든 부분이 대체되며 건축 설계의 방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종래의 노하우나 실무에서의 경험이 앞으로의 방향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고 학자로서 변화의 선단에서 연구한 후 사회로 나가는 것이 조금 더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반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올해 안에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중요한 순간인 만큼 여전히 망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가능한 한 빠르게 졸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남은 교환학생 기간 동안에는 토플과 같은 해외 진학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마음을 잡았습니다.

 

Unsplash의Gene Brutty

 

해외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또는 학교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을 대할 때면 여유라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악의를 가지고 게으름 피운다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치열함 또는 독기가 덜 느껴진다는 느낌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순위와 경쟁을 의식하기 시작하여 학년이 올라갈수록 심화되어 수능에서 정점을 찍고 아주 잠깐 숨을 고른 다음 다시 달리는 것이 당연한 우리나라 사회 속에서만 지낸 인원에게서는 느끼기 힘든 감각입니다.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그저 다르다고 느껴짐과 동시에 마음속에서는 이러한 태도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실제로 다른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너무 치열한 사회 속에서 살아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습니다. 일본 또한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는 동양권의 국가이고 현재의 여유는 버블의 붕괴 이후 장시간 동안 정체가 지속되고 치열하게 살아온 세대가 점차 은퇴하면서 형성된 분위기라는 것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해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교하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수업 시간 뛰어난 발표를 하는 인원을 향한 동경하는 눈빛에서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저라는 사람 또한 저 자신이 치열하고 사는 모습에 자부심을 가지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지만 목표를 이루고 쉴 장소를 찾을 때 또는 내 아이를 위한 장소를 찾는다면 다시 그 치열한 경쟁이 만연한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Unsplash의Elijah Sargent

 

일본 사회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 세대 전에 정해진 사회규범에 발목을 잡힌 가장 동양적인 국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 속에서 서로 충돌하지 않기 위한 그리고 사회의 관점에서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규범들이 길게는 몇십 년 단위의 논의를 통해 정해져 안정적인 상태를 만들어 내었으나 결과 세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현재 이러한 규범들이 족쇄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물론 오랜 논의를 통해 시스템을 확고하게 구축하였기 때문에 본인의 생활을 이 시스템에 맞추면 편리하지는 않지만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어중간하게 디지털화된 행정 시스템들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각자 규격을 가지고 있는 제품들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는 느낌을 매번 받지만 때로는 효율만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동안에 저 자신이 정신적인 부담을 덜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조금은 힘을 빼도 될 것 같고 살아남기 위해서 잘해야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잘하고 싶으니까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그것이 지금 20살 중반 가장 급격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시기에 필요한 것인가? 라고 하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다시 그 경쟁 사회로 돌아가는 것은 무섭고 힘들고 지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졸업하고 나서의 방향을 일본으로 잡는 것은 최고의 결과를 위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Unsplash의KE ATLAS

 

마지막으로 깨달은 점은 내가 얼마나 그 문화를 알고 이해하고 있던 그리고 언어를 사용할 수 있던지와는 상관없이 1세대 외국인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이라는 점입니다. 현재의 나를 형성하는 청소년기를 어디에서 보냈는가에 따라 사회적인 부분이 결정되고 이는 행동에 말투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는 내가 고용될 때에는 영향이 적을 수 있으나 개인 사업자로 활동해야 할 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유학을 떠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이유 중 하나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정리하면 세상의 급격한 변화에 건축 또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시대에 맞춰가기 위하여 바로 사회에 뛰어들기보다는 해외에서 학업을 이어가는 것은 충분히 고려해볼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행선지로써 일본은 시대에 적합한 결과를 목표하기에는 아쉽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앞서 적은 내용들은 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인 만큼 어디까지나 반년간 교환학생을 경험한 한 명의 학생의 의견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반론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인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최종적인 결론을 희망적이고 뻔한 내용으로 마무리 짓지 않은 이유는 어느 나이대보다 큰 가치를 가지는 20대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을 내릴 때 거짓으로 혼란을 주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Unsplash의Junseong Lee

 

이 문단이 마지막 글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이 시리즈가 독자의 삶에 아주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는 글이었으면 합니다. 렉크리에이터로서의 활동은 이것이 마지막이지만 또 다른 글에서 또는 현실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합니다.

 

일본 교환학생 시리즈

1편 Prologue

2편 Basic Knowledge

3편 Preperation

4편 First Contact

5편 Mid Critique 1

6편 Mid Critique 2

7편 Daily Life

8편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