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환학생 이야기 5편 : Mid Critique 1

일본의 일반 강의식 수업

일본 대학은 중, 고등학교와 같이 ‘-교시’의 개념이 존재합니다. 수업 시간은 약 90분으로 유학생의 경우 주 10시간 이상 수강 신청해야 합니다. 다행히 건축학과의 경우 설계 수업만으로 9시간 이상을 채우기 때문에 추가로 들어야 할 수업만 고민하면 됩니다. 저는 봄학기의 경우에는 마을 재생과 관련된 수업을 들었습니다. 대학원의 경우 다양한 국적의 인원들이 존재하였고 영어만으로 학교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 보였지만 거의 모든 학부 수업은 일본어로 진행되어 어느 정도의 일본어 청해 실력이 없으면 수업을 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같이 교환학생으로 온 인원의 경우 설계 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수업은 유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24년도 1학기 시간표

 

마을 재생 수업의 경우 4명의 교수가 돌아가며 마을 재생과 관련된 테마를 풀어나가는 방식의 수업입니다. 덕분에 일반적인 강의식 수업의 여러 성향을 경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크게 3가지로 정리해 보면

 

1. 적당한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발표 자료를 활용하는 수업

2. 극단적으로 글로 가득 차 있는 발표 자료를 읽는 수업

3. 글 없이 이미지와 말로 이끌어 가는 수업

 

가장 특징적이었던 점은 최근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글로 가득 찬 수업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용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 방식은 정말 오랜만이라서 살짝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은 설계 수업에서 학생들의 발표에서도 조금씩 엿볼 수 있었습니다. 평가의 방식은 역학과 같은 일반적인 이과 계열 수업은 시험인 경우가 많았지만 제가 들은 도시 재생과 같은 매주 간단한 감상과 질문으로 출석을 체크하고 최종 과제는 레포트로 대체하는 형식의 수업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건축 설계 수업(포괄적인 관점)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중간 발표부터 마지막 패널까지 작업물에 글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습니다. 과장하지 않고 거의 절반이 글로 채워져 있던 발표 자료도 존재하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부산대학에서는 패널에 적힌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 요소로 바라보았기에 가장 먼저 건축 설계 수업의 차이를 느낀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국내에서도 어떤 성향의 교수가 모여 있는가에 따라 각 설계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지지만, 학교마다 차이를 보이는 것과는 다른 국가 간의 근본적인 차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껴졌습니다.

 

Unsplash의Nadine Shaabana

 

그러한 방향성의 차이가 느껴지는 첫 번째는 교수의 크리틱에서 ‘안된다’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속한 학년에 제한된 이야기일 수 있고 또한 규슈대학의 특징일 수 있으나 교수와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 전체적인 분위기가 개인이 하고 싶어 하는 방향을 가로막지는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최종 크리틱 이전까지는 방향을 조정하는 것을 도와주는 조언을 하고 준비한 양에 대한 지적할 때도 개인의 방향성을 가로막지는 않았습니다. 최종적으로 실무에 뛰어들었을 때 고려해야 할 현실적인 사항들 예를 들어 법적인 제한부터 경제성의 측면 등 분명하게 답이 존재하는 사항들에 대해서 일단은 보류하고 학부생 때는 자신의 이론을 세우고 자유롭게 형태를 상상하도록 권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공대 소속이지만 건물은 인문계와 같이 쓰는 아이러니

 

실제 현실에서 건축이라는 활동이 행해질 때 당연히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적인 패널들의 완성도가 높지 않은 안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정말 다양한 방향성의 작품들이 나온 것을 보며 학부생일 동안에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의 기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4년제라는 특성과 일본의 직장 문화의 특징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이 5년제인 캔버라 어코드에 참여하는 국가들과 달리 4년제이고 설계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대학원을 진학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건축을 배우는 기간이 더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적인 규제와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배울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학부 때는 조금 더 자유롭게 풀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바로 전력이 될 수 있는 경력 있는 신입을 원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갓 졸업한 신입을 회사의 성향에 맞게 키워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만큼 툴과 같은 기술적인 면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덜해 보였습니다.

 

새벽 2시경, 큐슈대학 건축학과 설계실

 

두 번째는 모형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서 집착하는 점입니다. 짧은 대지 분석 이후 바로 형태를 잡아가는 과정으로 넘어가는 데 이때 교수들은 다양한 형태를 실제 모형으로 만들어볼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창작활동에서 손을 사용하여 제작하면서 형태를 이해하는 과정 그리고 현실에 형태가 만들어졌을 때 단순히 시각적인 정보 이상의 정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모형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모형을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의 값이 비정상적인 정도로 비싸다는 점입니다. 칼이나 자와 같은 도구들은 미묘하지만, 확실한 품질의 차이를 느끼기에 국내에서도 비싸더라도 일제를 사용하지만, 본드, 종이와 같은 소모품의 가격이 기본적으로 2배 심하면 그 이상도 하니 작은 모형을 만들 때 유학생의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례를 들면 77로 부르는 3*사의 스프레이 본드 455ml의 경우 국내에서 9,000원 정도이지만 일본에서는 2,200엔 약 2만원 정도입니다. 성분의 차이도 없고 오히려 용량은 430ml로 더 적습니다. 이외에도 우드락 본드를 짜기 위한 주사기에 550엔 한화로 5,000원입니다. 참고로 해당 주사기를 산 날 점심은 컵라면이었습니다.

 

2주 식비가 날아간 모형

 

최종 모형을 만드는 학생들에게서 집착에 가까운 무언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마감 하루 전 밤새는 모습은 어느 건축학과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지만 그날 거의 전원이 모형의 내부 인테리어와 외부 조경을 한 땀 한 땀 만들고 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국내에도 모형에 힘을 쏟는 학생이 있지만 대다수의 학생이 레이저, 3D 프린터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모형을 모두 손으로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내부 가구를 만드는가 하면 외부 면 재질을 출력해서 붙이는 학생도 존재하였습니다.

 

설계 수업의 방식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담당하는 설계 교수와의 1대1 수업만 아니라 매주 꼬박꼬박 설계 교수부터 환경, 도시 교수까지 다양한 교수가 돌아가며 약 1시간 정도 각자의 관점에서 고민하면 좋을 내용들을 강의식으로 수업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 학기는 환경 분석 방법에 대한 강의가 있었고 덕분에 최종안에서 일산 분석을 통해 처마와 창의 위를 정하는 과정을 진행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국내에서도 설계 수업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를 찾아가 조언을 구해볼 수 있었지만, 설계 수업 시간에 강의를 듣고 이후 개인적으로 상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여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시스템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밤샌 날 새벽 기숙사 방에서

 

반의 구성 방식도 달랐는데 분반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각자의 강의실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큰 제도실에 각자의 자리가 모두 모여 있으며 분반 또한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닌 랜덤으로 정해지고 담당하는 교수 이외에도 자유롭게 찾아가 크리틱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체 발표로 이루어지는 1, 2차 중간 그리고 파이널 크리틱에는 각 교수가 분반에서 2명씩 대표를 뽑습니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주제가 다른 경우도 존재하고 상대평가로 인해 내부에서 파이를 나눠 먹으며 신경전이 펼쳐지는 국내와는 다르게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전체 발표를 통해 공유된 내용 또한 활용하며 설계를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절대평가라는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기에 가능한 내용이기는 합니다.

 

 

물론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최종 발표자로 선택되는 내용은 자존심의 싸움으로 한국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습니다. 최종 발표자를 공지할 때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발표자로 선정된 사람은 다른 학생으로부터 동경의 눈빛을 받습니다. 최종 발표는 거의 4시간에 걸쳐 진행되는데 모두가 피곤한 상황에서도 상당수가 남아 발표를 듣습니다. 자신이 선택되지 못했다는 분함, 질투 그러한 감정들도 분명히 보이지만 선택된 인원들에 대한 존경과 선망 또한 보인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OUTRO

이번에는 드디어 실제 수업을 듣고 경험한 내용들을 적어보았습니다. 앞서 적은 내용들은 어디까지나 유학을 위한 과정과 현실적으로 필요한 사항들에 대한 안내에 가까웠다면 이번 글이야말로 실제 교환학생을 가서 어떤 것을 느끼고 어떤 것을 배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Mid Critique은 하나로 정리할 예정이었지만 분기별로 나눠진 4학기인 탓에 이미 학기를 마치고 마감을 끝내버린 상황입니다. 프로젝트를 마무리 지었기 때문에 쌓인 이야기가 많아 최종적으로 2편으로 나누어 전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실제 제가 진행한 프로젝트와 함께 어떠한 접근을 하였고 주변에서 해당 접근에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는지와 같은 개인적인 감상을 풀어볼 예정입니다.

 

일본 교환학생 시리즈

 

1편 Prologue

2편 Basic Knowledge

3편 Preperation

4편 First Contact

5편 Mid Critique 1

6편 Mid Critique 2

7편 Daily Life

8편 Final Critique

9편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