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작가가 꿈꾸던 미술관

INTRO

출처: METALOCUS

 

건축가가 설계한 미술관은 언제나 예술 작가들에게 만족스러웠을까요? 예술작가는 작품과 관람객의 상호작용을 생각하고, 건축가는 공간의 상호작용을 먼저 생각합니다. 이렇게 예술작가와 건축가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미술관의 구성요소에 대한 생각이 어긋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작가로서 이론을 펼쳐낸 예술가가 있습니다. 바로 스위스의 큐레이터이자 개념 미술 작가인 ‘레미 차우크(Rémy Zaugg)’입니다.

 

레미 차우크가 꿈꾸던 미술관

출처 : Bernerzeitung / GALERIE NORDENHAKE

 

레미 차우크(Rémy Zaugg)는 스위스 화가로서, 주로 단어와 문장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며 이에 대한 지각을 주제로 사용해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와 더불어 작품 지각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예술 작품과 관람객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의 일환으로 예술 작품을 전시하기 적합한 건축 환경에 대해 생각하였고, 이를 정리해 [내가 꿈꾸는 미술관, 혹은 작품과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책을 엮어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작품을 효과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은 어떤 형태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다이어그램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 바닥과 벽

출처 : muenchen.dev / 직접 촬영

 

전시공간의 바닥은 평평해야 합니다. 바닥에 굴곡이나 장애물이 있게 되면 작품에 안정적인 자세로 몰입하기 힘들어질 겁니다. 또한 작품에 집중하며 자연스레 이동하다 보면 다칠 위험도 있습니다. 사소한 위험들을 신경 쓰려고 하다 보면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기는 힘들어지겠죠? 이렇게 평평한 바닥은 관람객들이 작품에 오롯이 집중하여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벽은 온전히 흰색이고 평평해야 하며, 바닥과의 접합부나 벽과 벽이 만나는 곳에 틈새가 없어야 합니다. 작은 틈마저도 안정적인 바탕 가운데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몰입을 가져가는 요소가 되어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 천장

출처 : tumblr(el laberinto)

 

일반적으로 천장은 작품 관람 시, 시야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출입구에 서서 전체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보이는 천장이 기울어져 있는 등 바닥, 벽과 다른 형상을 띠게 된다면 어떨까요?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져 설치된 예술 작품에 돌아가야 할 시선이 빼앗기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장은 눈에 띄지 않고 볼 필요가 없도록 만들어야 하고, 벽과 같은 재료로 구성되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수직으로 교차해야 합니다.

 

출처 : JOOSUNGDESIGNLAB PORTFOLIO

 

그러나 여러 장치가 설치/해체가 반복되어야 하는 미술관의 특성상, 천장이 벽과 같은 재료로 마감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미술관들은 불투명한 유리나 격자 천장 마감처럼 완전히 똑같은 재료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색감을 맞춰주는 등의 여러 방법을 통해 이질감을 줄이는 방식으로 레미 차우크의 이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 공간의 비례

출처: 내가 꿈꾸는 미술관, 혹은 작품과 사람들을 위한 공간

 

자우크는 감상을 위해서 관람자가 머무르도록 유도하는 정방형 공간을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정방형 공간은 네 개의 벽이 동일하고 하나의 중심을 강요한다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출처 : 내가 꿈꾸는 미술관, 혹은 작품과 사람들을 위한 공간

 

그래서 장방형 형태 중 정방형 두 개를 포갠 것과 유사한 형태의 전시장 모델이 하나의 중심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과 감상자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며 더 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즉, 전시장은 정해진 동선을 유발(중심 강요) 하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하며, 작품과 관람자가 각각의 중심에 있을 수 있는 공간 비례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습니다.

 

  • 출입구

출처 : 내가 꿈꾸는 미술관, 혹은 작품과 사람들을 위한 공간

 

만약 장방형의 평면에서 짧은 벽의 중심에 출입구가 위치한다면, 그 벽의 양옆은 작품을 전시하기에 공간이 협소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출입구의 배치 때문에 발생되는 대칭은 권위적인 공간을 구성하게 되면서 전시된 작품들 간의 서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피해야 합니다. 따라서, 전시 공간의 출입구는 벽의 중심이 아닌, 벽 모퉁이와 중심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여야 합니다.

 

출처 : sammlung goets

 

또한 작품은 결국 개인의 감상을 위해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출입구 역시 이에 반응하여 개인을 위한 크기로 만들어져야 하며, 작품 감상에 있어서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문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 조명

출처 : 국립현대미술관 트위터

 

작품은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며 자신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전시 공간 안에서 감상되어야 하는 작품의 성격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요,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전시 공간의 조명은 균일하게 구성되어 작품과 관람객에게 같은 조명을 제공해야 합니다. 만약 작품과 관람객이 동일하게 조명을 받지 못한다면,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상호작용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실의 배치

출처 : 내가 꿈꾸는 미술관, 혹은 작품과 사람들을 위한 공간

 

레미 차우크의 활동 시기에 해당하는 기존의 연속 순로 형식(선형 모델)으로 미술관이 구성된다면 관람객들의 작품 순서가 정해져 버리게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시간 순서대로 관람이 진행되는 박물관과 달리, 시간 순서가 상관이 없는 미술관에서는 관람 순서대로 작품들의 의미가 의도치 않게 엮여 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내가 꿈꾸는 미술관, 혹은 작품과 사람들을 위한 공간

 

레미 차우크는 이러한 문제점이 있는 선형 모델을 대신할 미술관 다이어그램을 제시했습니다. 각각의 전시장이 독립된 입구를 가지고 전체 전시장을 하나의 미술관으로 묶는 구성입니다. 미술관 영역과 전시장 영역 사이의 공간을 ‘역공간’이라고 칭한다면, 이 역공간은 전시가 없으므로, 이동의 영역이 되며 정해진 동선이 없는 네트워크적인 움직임으로 구성됩니다. 이는 역공간에서 전시장에 들어가게 되면 이동하기 위해 움직이는 관람객들에서 벗어나 보고자 하는 전시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출처 : IKIDANE / architecturalmoleskine

 

레미 차우크가 제안하는 미술관은 네트워크적인 움직임의 공간인 역공간과 전시장들의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전시장이 미술관 내에 순서 없이 배열되어 관람자들이 자유롭게 관람 순서를 만들어내는 미술관을 바랐던 것입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같은 경우, SANNA에서 직접 레미 차우크를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평면이 차우크가 제시한 다이어그램과 매우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차우크의 이론을 참고했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습니다.

 

OUTRO

이렇게 자세하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펼쳐냈지만, 책 제목에 ‘꿈꾸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등 레미 차우크는 그가 그린 미술관에 대하여 일부 자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현 가능성을 의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꽤 지난 지금, 현대의 건축가들의 그의 이론을 이해하며 자신들의 방식으로 현실 속에 실현해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최근에 방문했던 미술관의 모습은 어땠나요? 작품에 집중하느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요? 그렇다면 오히려 레미 차우그의 생각을 잘 실현시킨 미술관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미술관의 노력도 살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