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는 왜 [하얀색]일까?
INTRO

세계 곳곳의 도시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각자의 도시들을 표현하고 있다. 산토리니 또한 그들만의 색으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다. 에게해 위에 떠 있는 듯한 하얀 집들과 파란 돔 지붕. 그 풍경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산토리니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스 산토리니의 하얀색과 파란색의 조합은 단순한 멋내기가 아니다. 기후와 생활의 지혜, 종교적 상징들이 어우러져 수백 년 동안 유지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산토리니 사람들은 왜 수많은 색 중에서 흰색과 파란색을 선택했을까? 흰색과 파란색이 어떤 의미와 기능을 가졌는지, 차근차근 한번 알아보자.
Santorini’s Story
● 햇빛을 튕겨내는 흰색
그리스의 섬들은 예로부터 목재가 귀했다. 산토리니를 포함한 키클라데스 제도는 척박한 화산 지형에 울창한 숲이 자라기 어려웠고, 주민들은 주택을 지을 때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 진흙, 그리고 화산회 시멘트를 주재료로 삼았다.
하지만 이 재료들은 대체로 어두운색을 띠어, 여름철 강한 햇빛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결과적으로 실내는 숨 막힐 만큼 덥고 답답해졌고 사람들은 이러한 기후를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해법으로는 석회에 물과 약간의 바닷소금을 섞어 만든 백색 회반죽을 외벽에 입히는 방법을 택했다. 흰색은 열과 빛을 반사해 집 안을 시원하게 유지 시켰고, 마을 전체에 눈부신 청량감을 더해주었다. 이는 값이 저렴하고, 구하기 쉽고, 덧칠도 간편했기에 유지 관리에 있어서도 적합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더해진다. 1930년대 후반, 전염병을 막기 위해 당시 정부는 모든 건물을 석회칠 하도록 하였다. 석회는 강한 알칼리성으로 세균과 곰팡이를 억제하는 성질이 있어, 당시엔 천연의 살균제이자 방역 도료로 여겨졌다. 이러한 조치는 위생을 지키는 동시에, 산토리니 특유의 ‘하얀 마을’ 풍경을 더욱 더 굳혀주었다.

● 바다와 하늘을 담은 파란색
산토리니를 비롯한 키클라데스 제도에서는 흰색과 파란색이 지배적인 색이지만, 곳곳에는 빨간색, 초록색, 분홍색 등 다른 색들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있는 집과 예배당의 문, 덧문, 돔 위를 덮은 지붕들은 여전히 선명한 파란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옛날 그리스 가정에서는 ‘룰라키’라고 하는 세탁용 청색 가루를 널리 사용했다. 활석 가루 형태의 이 세척제는 값이 싸고, 그리스 전역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어부들은 배를 칠한 뒤 남은 것들로 집의 문과 창틀을 칠했고, 이렇게 칠해진 파란색은 흰 벽과 놀라울 만큼 잘 어울렸다. 주민들은 석회 회반죽에 이 파란 가루를 섞어 다양한 색조를 만들어냈고, 이는 곧 마을 경관의 일부가 되었다.

이 두 색이 진정한 ‘섬의 표준’이 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당시 정권은 모든 건물을 흰색과 파란색으로 칠하거나 다시 칠하도록 명령했는데, 이는 애국심을 고취하고 민족주의적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정책은 단순한 색채 규제가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가 사랑하는 그리스 섬의 상징적 풍경을 완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 색과 형태가 만드는 마을의 경관
산토리니의 경관은 개별 건물의 디자인보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건축 작품처럼 느껴지는 데서 빛을 발한다. 절벽 위에 자리한 집들은 도시계획도면에 따라 엄격하게 배열된 것이 아니라,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비슷한 형태와 색채의 반복 덕분에, 불규칙 속에서도 놀라운 통일감이 생긴다.

산토리니의 건물들을 살펴보면 평지붕과 함께 둥근 돔, 부드럽게 마감된 곡선 벽체라는 공통된 언어를 공유하고 있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면 흰색 벽 위에 그림자들이 드리워지고, 이 그림자들은 곡선과 직선을 따라 부드럽게 이어진다. 이 빛과 그림자의 변화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의 표정을 바꾸며 시각적으로 살아있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파란색 돔과 창틀이 더해지면, 마을은 하늘과 바닷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듯한 인상을 준다. 멀리서 보면 건물의 끝과 하늘의 경계가 사라져, 마치 하얀 파도 위에 파란 포인트들이 흩어져 있는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색과 형태의 조합은 마을 전체를 하나의 ‘건축적 패턴’으로 만들고 보는 이들에게 조화와 연속성을 동시에 느끼게끔 한다.
산토리니의 매력은 화려한 개별 건물에 있지 않다. 그 대신 반복과 변주로 이루어진 색채와 형태의 네트워크가 마을 전체를 감싸며, 이를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경관 속에서 건축이, 건축 속에서 경관이 녹아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OUTRO
산토리니의 흰색과 파란색은 단순한 미관이 아니라, 기후에 적응한 지혜와 생활의 흔적, 그리고 세대를 이어온 문화적 상징이 담긴 결과물이다.
이 색채는 개별 건물의 장식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하나의 건축적 질서로 묶는 규칙이 되었고, 이는 오늘날 전 세계가 인정하는 도시 브랜드로 성장했다.
도시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그 정체성을 지키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산토리니는 그 해답을 색채와 형태의 조화 속에서 보여준다.
그 답은 ‘특별한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맥락을 존중하고, 그것을 현재의 삶과 연결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