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40년 만에 실현된 거장의 성당 _ 피르미니 성당
INTRO

피르미니 성당(생 피에르 성당)은 1965년 르 코르뷔지에의 죽음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있었던 설계안이었습니다. 사후 12년이 되던 해인 1973년이 되어서야 그의 제자들이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안을 최대한 재현해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해석의 차이로 인한 끊임없는 논쟁과 설계와 시공의 시간적인 간격이 컸기 때문에, 재현 방식도 변화되었고, 건축의 기술도 설계 당시에 비해 많이 발전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에 시공 단계에서도 많은 논쟁이 있었고, 공사가 시작된 지 33년만인 2006년에 드디어 르 코르뷔지에의 잠들어있던 설계안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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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Rue des Noyers, 42700 Firminy,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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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10:00 ~ 18:00 화요일 휴무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

본명은 ‘샤를에두아르 잔레그리’이며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필명은 르 꼬르뷔지에입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한 스위스 태생의 건축가이며,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현대 건축의 기초를 정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대표 작품으로는 빌라 사보아, 롱샹 성당, 유니테 다비타시옹, 라 투레트 수도원 등이 있습니다. 한국의 김중업 건축가의 스승이며, 김중업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르 꼬르뷔지에의 제자 5명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피르미니 성당에 대해 이야기 하기에 앞서 생테티엔의 피르미니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프랑스 남동부의 중심도시인 생트티엔은 역사적으로 탄광, 무기산업등이 발달한 광업과 공업이 주를 이루는 도시였습니다. 세계2차 대전 이후에 생트티엔은 예술과 산업을 이어주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주민들의 삶을 향상시키며 도시를 발전시키기로 하였고, 그 일환으로 1950년대 중반 생트티엔 외곽에 위치한 다소 낙후되어있던 피르미니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르 코르뷔지에에게 스타디움과 청소년 센터 설계를 의뢰합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제안받은 것 이상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건축을 해오며 주장한 이상적인 도시를 피르미니에 구현해보고자 하였고, 주거, 스포츠, 종교시설을 완벽하게 갖춘 복합 주거단지의 마스터플랜을 계획하며 설계안을 하나씩 실현해 나갔습니다. 문화의 집(la Masion de la Culture)을 시작으로 수영장, 마르세유에 지었던 유니테 다비타시옹과 외관은 비슷하지만 보다 발전된 유니테 다비타시옹 등을 설계하며 피르미니 지역은 유럽 최대의 르코르뷔지에 건축의 집합지가 되었습니다. (site le corbusier de firminy)

피르미니의 모든 건물이 르 코르뷔지에 생전에 지어진 것은 아닙니다. 집합주택은 르 코르뷔지에가 사망하던 해인 1965년에 시공을 시작해 그의 제자인 앙드레 보장스키가 완공했으며, 수영장 또한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를 바탕으로 1969년에 공사를 시작해 1971년에 완공하였습니다. 피르미니 성당은 다른 건물들에 비해 가장 늦게 공사가 시작되고 가장 늦게 완공된 건물입니다.

피르미니 성당은 르 코르뷔지에가 꿈꿨던 건축 집합의 일부이자, 도시 계획의 마침표를 찍는 성당으로써 큰 의미가 있습니다. 1973년에 시작한 피르미니 성당 공사는 2006년 마침내 완공되어 사후 40년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피르미니 성당은 3개의 층으로 구성된 규모가 크지 않은 성당입니다. 1,2층은 사제관으로 설계되었으며, 대부분의 공간은 3층 예배당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제관은 현재 관람객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예배당에서도 정기적인 미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특별 미사가 있을 시에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피르미니의 대표적인 공간인 예배당은 원추 모양의 끝이 잘린 형태로 주변 자연 지형의 맥락에 대응해 방위에 따라 각각 다른 기울기를 갖고 있습니다. 예배당의 상부는 원형으로 시작해 하부로 내려올수록 정방형에 가까워지는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르미니의 예배당은 르 코르뷔지에가 롱샴, 라투레트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건축 언어들과 개념들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빛 대포’와 제단의 배경이 되는 동측 벽면은 마치 별들이 반짝이는 듯한 오리온 성좌를 상징하는 작은 개구부들이 위치해 있습니다.


예배당 내부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르 코르뷔지에는 라투레트 수도원에서 예배당의 띠 창의 색채를 다르게 적용하였듯이, 피르미니 성당에도 예배당 전체를 두르는 띠 창에서 방위에 따라 색을 다르게 사용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측은 빨간색, 서측은 파란색, 남측은 녹색, 북측은 노랑색을 사용하였습니다.


예배당 내부의 건축적 산책로 개념도 예배당의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배당의 문을 열고 들어와 좌측 계단을 올라가면서부터 내부의 건축적 산책로는 시작됩니다. 예배당 내에서의 동선은 막히지 않고 건물 내벽과 복층으로 구성된 예배당 좌석 사이를 지나며 끊임없이 순환되는 동선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OUTRO

피르미니 성당은 르 코르뷔지에 사후에 그의 제자들이 불완전한 설계안을 가지고 실현시켰기에 그가 이 성당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들은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르 코르뷔지에의 마지막 종교 건축인 피르미니 성당은 롱샴성당, 라투레트 수도원 이후에 계획된 안이기에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종교 건축의 많은 생각들이 집약된 결과물이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르 코르뷔지에가 죽음으로써 그의 설계안까지 모두 잠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실현시켜 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