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맛보는 제주, 베케

INTRO

 

제주에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카페가 많다. 바다를 끼고 있거나, 오름을 바라보거나, 숲속에 자리 잡은 공간들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설계 요소이자 경험의 중심으로 다루는 공간은 여전히 드물다. 조경을 설계한 김봉찬 대표, 기획과 자문의 최정화 작가, 건축 설계와 감리의 에어루트 건축사무소가 함께 조성한 베케(BEKE)는 그런 점에서 제주라는 장소를 깊이 이해하고, 그 자연을 건축과 조경,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번역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사진을 찍기 위해 빠르게 소비되는 카페가 아니라, 천천히 걷고 머무르며 관찰하도록 설계된 정원 중심의 장소다.

 

정원을 중심으로 한 공간 구성

 

베케는 정원을 중심으로 모든 공간이 조직된 자연주의 카페다. 건축을 감싸는 투박하고 두터운 노출 콘크리트는 첫인상부터 강렬하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마감이 아니라, 거칠고 무게감 있는 표면은 제주 자연이 가진 원초적인 질감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단순히 ‘제주다움’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현무암과 바람, 시간에 의해 만들어진 제주 풍경을 현대적인 건축 언어로 치밀하게 재해석한 결과다. 인공적인 재료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식생과 빛을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풍경 속으로 스며든다.

 

 

돌무더기에서 시작된 이름, 새로운 쓰임

‘베케’라는 이름은 장기간 밭을 일구며 나온 돌무더기를 쌓아둔 곳을 뜻한다. 제주에서 돌은 늘 삶과 함께 존재해 왔다. 농사를 짓기 위해 치워야 했던 돌들은 어느새 밭의 경계를 이루고, 바람을 막는 돌담이 되었다. 베케의 돌무더기 역시 기능을 잃은 잔여물이 아니라, 새로운 쓰임을 얻는다. 아이들에게는 기어오르고 숨을 수 있는 놀이터가 되고, 작은 야생동물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된다. 이처럼 베케는 버려진 것, 남겨진 것에 새로운 관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완성해 나간다.

 

 

빛과 바람, 시간을 설계하다

베케의 공간 하루 동안 뜨고 지는 해의 각도, 빛이 콘크리트 벽면과 풀잎 위에 드리우는 그림자, 바람이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온도 변화까지 모두 공간 경험의 일부다. 이곳에서는 특정한 동선이나 시선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스럽게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열리고, 또 다른 순간에는 식물 사이로 몸을 숨기게 된다.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방식을 통합적이고 유기적으로 계획하겠다는 의도가 공간 전반에 녹아 있다.

 

 

베케는 A, B, C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C동과 주변 조경은 지하 레벨에 먼저 경관을 조성하고 그 위에 건축을 얹는 방식으로 계획되었다. 이는 건축이 땅 위에 군림하는 대신, 경관 위에 조심스럽게 놓여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방문자는 지면을 따라 걷는 동시에, 인위적으로 구성된 새로운 지형을 경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연과 건축의 경계는 흐려지고, 하나의 풍경으로 인식된다.

 

 

이곳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다. 약 30분 내외로 진행되는 도슨트 프로그램은 베케의 식물 구성, 조경의 의도, 건축적 맥락을 차분하게 설명해준다. 평소에는 지나치기 쉬운 작은 풀 한 포기, 흙의 질감, 건물의 높이와 방향까지도 이야기가 된다. 도슨트와 함께 공간을 걸으며 듣는 설명은 베케를 ‘보는 장소’에서 ‘이해하는 장소’로 바꾸어 놓는다.

 

 

정원을 소개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은 식물과 흙, 그리고 건축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방문자들은 공간 속 작은 요소들을 하나하나 인식하며, 자연과 설계가 만들어낸 균형을 체감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공간을 느끼는 감각을 확장하는 경험에 가깝다.

 

 

OUTRO

 

베케는 자연을 추구하지만, 분명 인위적으로 설계된 공간이다. 그러나 그 인위성은 자연을 통제하거나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의 한 단면을 더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한 ‘편집된 아름다움’에 가깝다. 공간의 소유자가 바뀌며 식물 대부분이 바뀌는 상황 속, 직접 클라이언트가 되어 오랜 기간 유지되고 지속하여 관리할 수 있는 정원을 만들고자 하는 김봉찬 대표의 생각에서 시작된 베케는 빛과 그림자, 식물과 콘크리트, 그리고 사람의 움직임이 겹쳐 만들어내는 장면들을 통해 제주 자연의 본질을 조용히 드러낸다. 베케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다. 걷고, 머무르고,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곳은 카페이자 정원이며, 동시에 제주라는 장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