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文), 성(成) 탐방기

발행
2023.10.06

 

성균관(成均館) (서울 문묘(文廟))

‘문묘(文廟)’는 공자와 여러 성현을 모신 사당이며, ‘성균관(成均館)(서울 문묘(文廟))’는 1398년(태조 7)에 처음 지어졌다.

 

향교와 서원

성균관은 국립 중앙 향교에 해당한다.

 

조선의 고등 교육기관에는 국립인 ‘향교’와 사립인 ‘서원’이 있었다. 향교는 도시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원은 도시 밖 농촌에 두는 것이 관례였다. 두 교육기관 모두 유교의 성현을 모시는 ‘제향(祭香) 공간’과 교육을 담당하는 ‘강학(講學) 공간’을 갖추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배치에 차이가 있었다.

 

성균관의 배치도 (좌), 병산서원의 배치도 (우)

 

향교(성균관)는 ‘전묘후학’로 제향 공간이 앞쪽에 위치하고 강학 공간이 뒤쪽에 배치였으며, 서원(병산서원)은 ‘전학후묘’로 강학 공간이 앞쪽에 위치하며 제향 공간이 뒤쪽에 배치되었다.

 

성균관의 입구

탕평비석과 하마비

탕평비석

 

1742년(영조 18) 사도세자의 성균관 입학을 기념하여 당시 국왕이었던 영조가 직접 글씨를 내렸다고 한다. 앞으로 고위 공무 운이 되어야 할 유생들에게 잘 생각하라고 성균관 앞에 세웠다고 합니다.

 

하마비

 

그리고 그 옆에는 “높고 낮은 모든 사람은 이곳에서부터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공자를 모시는 성역이니 모두 말에서 내려 예의를 갖추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하마비는 다른 하마비보다 크기가 무척 크다고 한다.

 

동삼문과 동문

 

성균관(서울 문묘)에는 문이 많은데 말들이 다니는 말문과 학생들이 드나들었던 문인 동문, 국왕이 드나들던 동삼문, 제례 등 행사에 사용되었던 정문 (신)삼문 등 많은 문이 존재한다.

 

제향 공간

대성전(大成殿)

대성전(大成殿)

 

공자에 제향하는 시설, 유교를 가르치는 모든 시설에는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건물이다.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문묘 행사를 거행하는 곳이다. 건물은 앞 5칸, 옆면 4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다포식 공포를 사용하고 있다. 건물은 장대석으로 쌓은 월대에 세워있다.

 

대성전 현판(출처 : 문화재청)

 

대정전의 현판 글씨는 석봉(石峯) 한호(韓濩)의 친필인데 아주 익숙하지 않는가 바로 조선 명필 한석봉의 글씨이다.

 

대성전 앞마당

 

대성전 앞마당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선비 정신을 대표하는 수목들을 심어 정원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앞마당의 묘정비각 비문은 문묘를 창건하고 고쳐 지은 연혁을 기록한 것이다.

 

  • (신) 삼문

 

제례 등의 행사에 사용되었던 정문,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 문으로 나오도록 했으며, 가운데 문은 성현들의 넋이 드나드는 상징적인 문으로 대성전 앞쪽에 위치한다.

 

  • 동무와 서무

 

서무의 전경

 

제사 공간, 현인들의 위패를 나누어 모셨던 곳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1년 중건되었다. 각각 11간(間)으로서 맞배지붕 양식이다. 동무 앞 복도는 회랑을 형성하고 있다.

 

수복청, 제기고

 

그 이외에 제향 공간에는 전사청, 대성전 서쪽에 위치하여 제사 음식을 차리는 공간, 수복청, 하급 관원들의 관청, 제기고, 제사용 그릇을 보관하는 제기고 등의 부속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강학 공간

명륜당(明倫堂)

명륜당의 전경과 명륜당의 현판
좌측 협실의 모습

 

문묘에서 교육을 담당하던 공간의 중심이 되는 강당 건물이다.

 

‘전묘후학’의 배치로 대성전 뒤에 위치한 명륜당은 중앙에 강당, 좌우에 협실을 두었는데, 강당은 정면 3간(間) 측면 3간(間)이고, 좌우 협실은 각각 정면 3간 반(間半) 측면 2간(間)이다.

 

명륜당 내부 현판

 

강당은 넓은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강당 천정은 서까래와 보가 들여다보이는 연등천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고 작은 현판들이 걸려 있다. 대성전과 동일하게 장대석 쌓기 기단을 쌓고 기단 전면에는 월대(月臺)가 위치한다.

 

  • 동재와 서재

 

동재의 북 (출처 : 문화재청)과 동재 툇마루의 모습

 

동재와 은행나무의 모습

 

명륜당 앞에는 동재와 서재가 자리 잡고 있는데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유생 중 상급생들이 머물렀던 기숙사이다. 동재의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작은 북이 달려 있다. 북을 한번 치면 침상에서 일어나고, 두 번 치면 의관을 정제하고 글을 읽으며, 세 번 치면 진사식당에 모여 식사하였다고 한다.

 

  • 은행나무

 

명륜당 앞 은행나무

 

성균관 하면 또 은행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명륜당의 500년 된 은행나무에는 전설이 있다. 500년 전 성균관 유생들이 제사를 지낸 후 이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명륜당 은행나무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 ‘임하필기’에는 문묘 앞에 마주하게 심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면 냄새가 났는데, 한 관원이 제사를 지낸 후론 열매가 맺히지 않았다고 쓰여 있다. 그 후로 성이 바뀌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어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 비천당

 

비천당의 전경

 

작은 방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툇마루로 이어져 있다. 유생들의 학습장소였으며 임금이 성균관에 친림하여 과거를 시행할 때 시험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기타 부속 공간

존경각과 육일각

좌측의 존경각과 우측의 육일각

 

존경각은 책을 보관해 두던 건물로 지금의 도서관과 비슷한 역할을 하였으며, 육일각은 무기고로 활과 화살들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 정록청

 

명륜당 구역에 속한 부서로서 유생들의 학적 관리나 각종 시험과 서무의 관리 및 유생들의 생활 감독을 했던 장소이다.

 

  • 향관청, 동월랑, 서월랑

 

향관청, 동월랑과 서월랑

 

제사에 사용하는 향과 축문을 보관하던 곳이며 좌우에 동월랑과 서월랑은 성균관의 감사를 담당하는 감찰 집사들이 사용하던 건물이다.

 

 

성균관(서울 문묘)은 조선시대에 걸쳐 사용하게 되는 건축 구성을 집약해서 보여 주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진 성균관을 볼 때면 서울 도심 한 가운데 이러한 곳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성균관(서울 문묘)의 매력은 가을이 되면 그 빛이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 느낄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유생들이 공부했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가을에 방문하면 더 좋겠지만 한 번쯤 방문해 보면서 유생들의 얼을 느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성균관(成均館) (서울 문묘(文廟))

 

  • 사적 제143호(1964년 11월 10일 지정)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3가 53번지

  • 문묘 관람 시간

하절기(3~10월) 09:00 ~ 18:00

동절기(11~2월) 09:00 ~ 17:00

 

2023.10.06 · 읽는 시간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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