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공간, 마시는 시간
INTRO

서울의 어느 골목을 걷든, 카페 하나쯤은 눈에 들어온다. 커피를 마시는 건 더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하루에 두세 잔의 커피를 마시고, 각기 다른 카페를 들르며 다양한 분위기와 향미를 경험한다. 커피는 일상이고, 카페는 그 일상을 구성하는 풍경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공간’은 언제부터 이렇게 쉽게 소비되고, 빠르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카페는 단지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의 작업실이자 쇼룸, 또 하나의 거실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공간들을 소비하며, 이미지로 기억하거나 잊는다.
이런 풍경 속에서, 북유럽 오슬로에서 날아온 작은 커피 브랜드 푸글렌이 서울에 첫 매장을 열었다. 조용한 골목, 낮은 천장, 잔잔한 조명, 그리고 부드러운 라이트 로스트 커피 한 잔. 푸글렌은 커피 그 자체보다, 커피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공간이 삶과 맺는 관계를 이야기한다.
푸글렌 서울 (fuglen coffee)
· 위치 : 서울 마포구 상수동 145-4 · 운영시간 : 월-일 08:00~01:0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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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에서 온 커피 한 잔, 서울 골목에 스며들다


2023년 가을,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낯설고도 새로운 공간 하나가 문을 열었다. ‘푸글렌(Fuglen)’, 196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시작된 이 커피 브랜드는 도쿄와 후쿠오카, 자카르타를 거쳐 마침내 서울에 상륙했다.

푸글렌은 단순히 스페셜티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시간의 리듬, 공간의 온도, 그리고 일상을 대하는 태도를 전하는 곳이다. 라이트 로스팅 방식으로 볶은 원두는 본연의 산미와 깔끔한 맛을 드러내며, 강한 쓴맛에 익숙한 이들에겐 낯설 수 있지만, 감각에 열린 요즘 세대에겐 또다른 취향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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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과 서울, 커피를 대하는 두 개의 풍경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커피 소비 대국이다. 그러나 이들의 커피는 단지 각성제가 아니다. 친구와의 대화, 가족과의 저녁, 혼자만의 사색 속에서도 커피는 늘 함께한다.
스웨덴에는 ‘휘카(fika)’라는 문화가 있다.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곁들여 즐기는 이 짧은 시간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관계를 나누고 삶의 여백을 음미하는 정서적 의식이다. 커피는 그저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장치에 가깝다.
서울은 다르다. 우리는 하루에 2~3잔의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이 잔들은 한 곳에서 반복되지 않는다. 다양한 카페를 오가며, 각기 다른 분위기와 메뉴를 향유한다.
커피는 곧 공간을 경험하는 이유가 되었고, 카페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장소, 혹은 하루의 틈을 채우는 임시 작업실이 되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은 커피 문화의 다양성과 활력을 만들어냈지만, 그 이면에는 공간의 소모와 트랜드의 소진이라는 그림자도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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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글렌이 선택한 방식: 공간은 느리게, 그리고 오래


푸글렌 서울은 서울의 수많은 카페와는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이곳은 빠른 회전율이나 유동인구 중심의 입지를 피하고, 골목 안 조용한 자리에서 ‘오래 머무는 공간’이 되기를 선택했다.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칵테일을 서빙하는 이곳은 하루 두 번 조명이 바뀐다. 조도 변화는 단순한 분위기 전환을 넘어서, 공간이 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드러낸다. 내부는 북유럽 중후기 빈티지 가구로 채워졌고, 높은 밀도로 배열된 좌석이 아닌 여백 많은 배치가 인상적이다. 이곳은 ‘들르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일하는 사람들이다.


푸글렌은 프랜차이즈 확장을 하지 않는다. 브랜드가 유지되려면 일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신념 아래, 서울 매장에서도 직원들의 노동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업무의 강도를 낮추기 위해 인력을 넉넉히 배치하고, 구성원이 브랜드의 철학을 이해하며 공간과 함께 나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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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드를 소비하는 도시, 사라지지 않을 공간을 위해


원목 가구라 사람들의 흔적이 더 진하게 묻을 것 같다.
서울에는 매일 새로운 카페가 생기고, 또 빠르게 사라진다. 카페는 콘텐츠가 되고, SNS 이미지 속에서 소비되며, 짧은 주기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또 다른 감성으로 대체된다. 이처럼 빠르게 닳고 마모되는 도시 공간에서, 푸글렌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마시는 커피의 공간은, 기억될 수 있는가?”
지속 가능한 공간이란, 단순히 친환경 자재를 쓰거나, 제로 웨이스트 운영을 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공간이 사람과 함께 나이 들 수 있는가, 브랜드의 철학을 실천하는 시간이 그 안에서 축적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푸글렌은 그저 북유럽 커피 문화를 옮겨온 것이 아니다. 도시 속에서 공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 무엇이 남고, 무엇이 소멸되는지를 되묻는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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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멈추게 한 커피 한 잔

푸글렌 서울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루에 몇 잔의 커피를 마시는가? 그리고 그 커피를 어디에서 마셨는지, 얼마나 기억하는가?
카페는 넘쳐나고, 커피는 일상이다. 그러나 어떤 공간은 잊히고, 어떤 공간은 남는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공간이 나에게 어떻게 말을 걸었는가일지도 모른다.
푸글렌은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존재하며,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 일상에 스며든다. 지속 가능한 공간이란 어쩌면, 그렇게 조용히 오래 머무는 것 아닐까.
OUTRO
푸글렌 서울은 단지 커피를 파는 매장이 아니다. 그들은 빠르게 닳고 마모되는 도시의 흐름에 질문을 던진다.

“이 공간은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을까?”
“당신이 커피를 마시는 이 순간은 기억될 수 있는가?”
서울의 카페들은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끊임없이 새로워지지만, 때론 너무 쉽게 사라진다. 인테리어는 빠르게 교체되고, 브랜드는 리뉴얼되고, 공간은 ‘소비된 감성’으로 남는다. 그와 달리, 푸글렌은 시간과 함께 나이 드는 방식을 택했다. 조도와 동선, 재료와 관계, 그리고 일하는 사람의 표정까지 모든 요소가 ‘오래 머무는 공간’을 위한 선택이었다. 커피 한 잔이 곧 정서적 리듬이 되고, 공간은 그 리듬을 받아들이는 그릇이 되었다.
지속가능한 공간이란 결국,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여백을 품고, 삶의 변화에 반응하며 천천히 익어가는 곳 아닐까. 커피가 일상이 되었듯, 공간 또한 일상이 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