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도의 여정 : 번역과 건축 사이_민성휘 작가

INTRO

 

이번 아티클에서는 글쓰기와 번역을 통해 건축을 새롭게 풀어내고 있는 민성휘 작가님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는 건축을 구조와 재료, 도시와 시간 사이에 흐르는 감각들을 언어로 풀어내며, 건축이 말을 건네는 방식을 고민합니다. 공간을 언어로 번역하고, 건축의 생각을 문장으로 짓는 그의 작업은 건축학도로서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글쓰기와 건축 사이에서 그가 고민해온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INTERVIEW

 

Q.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탄파쿠나’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일본 도쿄에서 건축 관련 번역과 출판 활동을 하고 있는 민성휘라고 합니다.

 

건축설계 전공자로서, 한국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일본 건축과 도시의 일상적인 면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작고 사적인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Q. 작가님께서 작업하신 번역서나 글들 가운데, ‘지금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글이나 책이 있다면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그 이유도 함께 듣고 싶습니다.

 

A. 2020년쯤 인스타그램을 시작하면서, 제가 읽은 글들을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계기 중 하나는 쿠마 켄고의 책이었는데, 사실 그전까지는 그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축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책에서 쿠마 켄고가 “건축가들이 현실 사회에서 의뢰받은 작업 속에서 상실된 상황을 마주하면서, 자신의 미학과 논리를 무능하다고 착각한다”는 식으로, 건축가의 역할에 대해 비판적으로 서술한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건축이 모든 것인 양, 그 중요성이 절대적인 것으로 주입받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건축가로서의 태도와 역할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고, 제게는 굉장히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되었어요.

 

 

Q. 번역 작업은 원문의 뜻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장 자체가 아름답게 읽히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작가님은 그 두 가지—정확한 전달과 문장의 리듬감이나 미감—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A. 정식 출판용 번역을 할 때는, 그 텍스트가 오래 남는다는 점과 독자가 원문과 병행해서 볼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둡니다. 그래서 단순히 뜻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과 독서 경험까지 고려해 번역하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균형은, 제공자(번역자)의 입장과 독자(수용자)의 입장을 동시에 의식하는 것이에요. 물론 정확한 전달은 기본이지만, 독자가 글을 자연스럽게 읽고 다음 읽을거리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번역된 책이 하나의 완결된 콘텐츠라기보다는,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요.

 

그래서 일본어 특유의 뉘앙스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고민하는 건 “어디에 어떤 각주를 넣을 것인가”, 그리고 그 각주가 독서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 정보를 더할 수 있는가예요.

 

처음에는 ‘일본어답게 번역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지금은 관점이 달라졌어요. 예를 들어, 제가 독일 작가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독일어 표현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독자가 “아, 번역 잘했네”라고 느끼기보다 그냥 ‘쓱쓱 읽히는’ 흐름을 만드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번역의 기준이에요.

 

 

Q. 예전에 작가님께서 글의 ‘구조’를 잡을 때 마치 공간을 구성하듯 생각한다고 말씀하신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건축과 글쓰기라는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작업 사이에서 작가님이 느끼시는 공통점이나 유사성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예전에 쿠마 켄고에게 건축과 글쓰기의 공통점에 대해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때 건축이 컨셉 단계부터 계획, 실시 설계, 시공까지 점점 구체화되어 가는 과정은 글쓰기의 초안 작성, 수정, 퇴고 과 정과 닮았다고 하더군요. 그런 점에서는 두 작업 모두 단계적으로 완성도를 높여간다는 구조적 인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경우엔 글을 쓸 때 처음부터 막 써내려가기보다는, 다양한 근거를 모으는 쪽에 더 가까운 방식이에요. 그래서 글쓰기와 건축 사이에 공통점도 있지만, 오히려 차이점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많아요.

 

예전에는 건축이 창의성과 디자인 중심의 작업이라고 생각했지만, 실무에 들어오면서 커뮤니케이션, 법규, 시공, 경영 등 다양한 복합 요소가 얽혀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되었어요. 그만큼 제약도 많죠. 반면 글쓰기는 외부 제약이 거의 없고, 오직 나의 창의성과 표현 방식에 달려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건축은 ‘현실 속 제약’, 글은 ‘표현의 어려움’이라는 각자의 한계를 갖고 있는 반대 성격의 작업이라고 느껴요.

 

저는 이 둘을 단순히 비교하거나 공통점을 나열하기보다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건축과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그 사이의 중간 지점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만약 글쓰기를 하지 않았다면, 건축이 지금처럼 재미있거나 건강하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오히려 번역과 글쓰기 덕분에 건축을 더 즐겁게 해석하고 확장해 갈 수 있는 여지를 얻고 있는 것 같아요.

 

 

Q. 건축설계를 공부하면서 설계의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저의 아이디어를 설득력있게 말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설명글을 쓸 때 작가님이라면 어떤 점에 집중하라고 조언해주실까요? 설득력 있게 쓰는 비결이나 글의 리듬 같은 것도 궁금합니다.

 

A. 저는 설득력 있는 글이나 설명을 쓸 때, 논리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축가와 클라이언트, 교수와 학생 같은 역할을 떠나, 기본적으로는 사람 대 사람의 소통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유머와 인간적인 끌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껴요.

 

건축이나 디자인은 자기표현의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논리적 설명과 전문성 중심의 설득 방식을 훈련받고 강조하죠. 하지만 어떤 설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는, 그 말이 얼마나 정교한가보다는 ‘그 사람이 끌리는가’가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저도 논리적인 설명에 능한 편은 아니지만, 감각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더 믿는 편이에요. 그래서 저는 글을 쓸 때도 너무 효율성과 논리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이 사람이 좀 재밌네”, “이 사람이 뭔가 끌리네” 하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쪽으로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 제가 글을 쓰면서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비유나 예시를 잘 활용하는 것이에요.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달력을 높이고, 독자가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요. 결국 중요한 건 전달의 기술이 아니라, 전달하려는 마음이 어떻게 사람에게 닿을지를 고민하는 태도인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쓸 때 비유를 정교하게 구성한다기보다는, 평소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짧게 메모해두는 방식을 자주 사용해요. 예를 들면 지금 어떤 기분인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 같은 걸 핸드폰 메모장에 3줄 정도로 간단히 적어두는 거죠. 그걸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지만, 가끔 돌아보면서 “아, 그땐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식으로 다시 꺼내보곤 해요.

 

또 저는 망상이나 엉뚱한 생각들, 그러니까 일상적인 논리에서는 조금 벗어난 감각들도 글에 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아직 잘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감각들을 글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어요.

 

비유라는 측면에서는, 쿠마 켄고의 표현 방식을 인상 깊게 생각해요. 예를 들면 도쿄의 다이칸야마와 롯폰기라는 두 지역의 개발 양상을 비교하면서, 쿠마는 이렇게 말하거든요.

 

“프로젝트가 열리면 공간은 닫힌다.”

 

즉, 프로젝트를 ‘연다’는 건 자본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그 자본이 들어올수록 공간은 더 폐쇄적이고 협소해진다는 의미예요.

 

이런 식의 간결하면서도 직관적인 표현, 그리고 모순을 담아내는 비유가 저는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껴요. 꼭 건축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설명할 때 그런 식의 사고와 표현이 유효하다는 걸 느끼고 있고, 저도 점점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작가님의 글을 보면 일상적이고 익숙한 도시를 아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인상 깊습니다. 그런 시선을 어떻게 키워오셨는지, 혹은 어떤 장면에서 “아, 이건 좀 다르게 보인다”고 느끼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A. 도시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은 사실 어떤 훈련이나 의식적인 연습의 결과라기보다는, 제 개인적인 성향과 관심사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어릴 때부터 저는 좋아하는 것에만 깊이 몰입하고, 그 외에는 큰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성격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는 조금 비적응적인 면이 있었지만, 동시에 저 자신에 대한 탐구와 관심은 끊임없이 갖고 있었죠.

 

그래서 무언가에 한 번 꽂히면 정말 반복해서 보는 스타일이에요. 좋아하는 책은 몇 권 되지 않지만 그걸 50번, 100번씩 읽고, 영화도 몇 편만 계속 돌려보는 식이죠. 그 반복을 통해 나만의 방식으로 대상에 스며들고 이해하려는 성향이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특히 도쿄라는 도시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뉴욕이나 파리 같은 도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없고, 심지어 서울보다도 도쿄에 훨씬 더 집중된 시선을 가지고 있어요. 단순히 도시의 구조나 건축을 분석하기 위한 관심이라기보다는, 그 도시에 내가 투사되어 있는 감정이나 기억, 결핍 같은 것들이 얽혀 있어서예요.

 

그래서 제가 도시를 바라볼 때, 그것은 단순히 도시 계획이나 건축학적 시각이 아니라, 저를 구성해온 개인적인 감정과 기억, 정체성의 일부를 바라보는 행위에 더 가깝다고 느껴요. 낯설게 본다기보다, 저에게 익숙한 감정을 다시 끄집어내는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반복해서 머문 감정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 것 같아요.

 

 

Q. 작가님께서 ‘탄파쿠나’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계신데, 이 이름을 선택하게 된 계기나 담겨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이 필명으로 글을 쓰는 활동은 작가님에게 어떤 정체성이나 의미로 다가오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A. 사실 이 이름의 어원은 일본어로 ‘담백하다’는 의미의 ‘탄파쿠(たんぱく)’에서 따온 건데요, 사실 일본어에서는 이 단어가 맛도 없고 멋도 없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해요. 그런 뉘앙스를 노린 건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런 모순적인 느낌도 이 이름에 담긴 것 같아요.

 

이 필명을 처음 떠올린 건 스무 살 무렵이었는데, 특히 20대 후반부터는, ‘담백함’이 제 인생의 키워드가 되었어요. 건축을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도 과하게 설명하거나 꾸미지 않고, 솔직하고 절제된 태도로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런 바람을 담아서 이 이름을 정하게 되었어요.

 

지금에와서는 더 좋은 네이밍이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탄파쿠나’라는 이름은 저 자신에게 늘 돌아가고 싶은 방향성, 그리고 담백한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한 다짐 같은 의미로 남아 있어요.

 

 

Q. 많은 건축학도들이 ‘꼭 설계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작가님처럼 글을 쓰거나 번역, 출판 같은 쪽으로 진로를 확장해가는 경우가 저희에겐 새로운 롤모델이 되거든요. 혹시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나 조언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이 질문은 사실 저도 쉽게 정리하긴 어려운 주제인데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씀드려보자면, 우리는 건축을 배운다는 과정을 통해 ‘이걸 어떻게 써먹을까’ 고민하게 되잖아요. 그게 어떤 사람에겐 목적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이상적인 건 건축 그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예를 들어 월 100만 원만 벌어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경우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건축이라는 행위를 통해 무엇을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가, 다시 말해 더 큰 목적을 위해 건축을 활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건축이 내 삶의 전부여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즐겁게 살고 싶고, 배우고 성장하고, 돈도 벌고 싶은 삶의 여러 가치 안에서 건축이 들어와 있다고 느껴요. 저는 **‘스마트한 이타심’**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요, 완전히 이타적이진 않더라도, 나의 즐거움과 타인에게의 기여가 공존할 수 있다면 그게 건강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같은 걸 하면서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정말 가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전혀 모르는 분이 “당신 글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같은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런 순간들이 “아,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었고, 이 일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건축이 목적이 되어도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단으로서 더 큰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꼭 설계만이 정답은 아니고, 다양한 방향에서 건축을 바라볼 수 있는 길은 분명 존재하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따를 필요는 전혀 없다는 점이에요. 오히려 “저 사람은 저렇게 살지만, 나는 다르게 살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만의 해석과 태도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 저는 그게 건축을 배우는 데 있어서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가장 의미 있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Q. 최근 작가님이 건축을 바라보실 때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이나 주목하는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건축을 그렇게 “엄청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이 말이 좀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건축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면 제 경우엔 30분이면 할 말이 끝날정도로 폭이 좁습니다. 그렇다고 건축이 싫다는 건 아니고, 오히려 제가 좋아하는 몇몇 건축물이나 건축가에 대해서는 굉장히 강하게 애정을 갖는 편이에요. 한두 개의 건축물, 한두 명의 건축가만 깊게 좋아하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요.

 

특히 저는 건축의 형태나 디테일, 재료에 크게 끌리는 편이 아니고, 그보다는 **건축에 얽힌 ‘이야기’나 ‘맥락’에 더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거나 후진 건축물이라도 누군가가 봉사처럼 지었다거나, 어떤 의도를 담아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건축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져요. 반대로, 아무리 화려하고 고급 자재로 지은 건축이라도 탐욕스럽게 보이면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요즘은 특히 드러나지 않는 배경과 서사를 가진 건축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면 “왜 이 클라이언트는 이 건축가에게 의뢰했을까?”, “시공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건물을 지었을까?”, “과정 중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어냈을까?” 같은 이야기 너머의 건축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죠.

 

또한, 저는 신축 중심의 건축 인식에도 의문을 갖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신축’만을 진짜 건축으로 여기고, 인테리어, 리노베이션, 재생은 건축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취급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을 포함한 해외에서는 그런 경계가 훨씬 유연하고, 재생 건축도 건축가의 중요한 영역으로 받아들여지죠.

그래서 저는 요즘, 작고 허름하더라도 잘 운영되고 긍정적인 가능성을 담고 있는 공간들에 더 눈길이 가요. 저예산이지만 설득력 있는 건축, 그리고 잘 관리되고 오래 지속되는 건축에 더 큰 가치를 두고 바라보고 있어요.

 

 

OUTRO

건축을 중심으로 하되, 그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는 민성휘 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 건축학도의 진로에 대한 고민에 작은 단서와 새로운 상상을 떠올리셨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번역자이자 기획자로, 또 담백한 시선의 건축인으로 정진해 나가실 민성휘 작가님의 행보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