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도의 미국 1년 생활기
INTRO
건축은 도면 위에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도시는 발걸음으로 체감되고, 건물은 그 안에서 살아내며 비로소 다르게 다가온다.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은 단순히 새로운 건물을 ‘보는’경험을 넘어, 도시와 건축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몸으로 느끼게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실제 삶 속에서 작동하는 건축 사이의 간극이 드러나기도 한다.
건축학도로서 해외에서 보낸 1년은 어떤 고민을 남겼을까. 그리고 그 경험은 앞으로의 건축 공부와 진로에 어떤 영감을 주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미국에서 1년간 생활하며 마주한 건축의 모습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곽유진님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려 한다.
INTERVIEW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울산대학교 건축학과에 재학 중인 곽유진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배서진 기자님을 통해 저의 1년간 미국에서의 짧지만 특별했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눌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Q. 작년 1년동안 미국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오셨는데 어떤 계기로 다녀오셨는지 알고 싶어요!
A. 솔직히 말하면,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아마 건축을 공부하는 대부분의 학우분들도 느껴봤을 것 같은데, 열심히 과제를 하다 보면 ‘이게 내 길이 맞나?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맞나?’하는 고민이 들 때가 있잖아요? 저도 그 시기에 딱 부딪혔습니다.
그래서 잠시 멈추고 싶었어요. 그냥 쉬기만 하기엔 아깝고, 의미있는 경험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건축이 아닌 다른 일을 경험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1년간 미국의 한 모빌리티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인생의 방향을 다시 점검해 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어요.

Q. 유학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도움이 되었던 것들이 있었다면 어떤 게 있었나요?
A. 사실 저는 유학보다 인턴십에 가까웠습니다. 미국 인턴십은 흔히 알고 있는 워킹홀리데이랑은 조금 달라요. 단순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아니라, 정식 직원으로서 대우를 받고 업무를 배우는 문화교류형 인턴입니다.
저는 J-1 비자 전형으로 지원했는데, 이게 서류도 복잡하고 절차도 많씁니다. 대학생 신분이면 J-1 인턴이나 J-1 트레이너로 지원할 수 있는데, 이 과정을 혼자 준비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스폰서 기관과 에이전시를 통해 큰 비용을 지불해야 했어요. 게다가 대사관 인터뷰도 통과해야 해서 합격률도 높지 않고,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도 모든 과정을 거쳐 결국 합격해서 미국 땅을 밟았을 때의 뿌듯함과 안도감은 정말 뭐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아, 드디어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거든요.

Q. 모빌리티 회사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건축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나요?
A. 제가 맡았던 일은 주로 제품 품질 관리와 재고 및 물자 관리였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차체 제작에 필요한 원자재를 주문하고, 재고를 확인하고, 완제품이 출하하는 과정을 관리하는 일이었죠. 실수 하나에 수억 원이 날아갈 수도 있어서 늘 긴장하며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건축 전공자가 왜 자동차 회사로 갔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거예요. 사실 저는 울산 출신이라 모빌리티 산업이 낯설지 않았고, 아버지도 이 분야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또 20살 때부터 인력사무소에 등록해 여러 일을 해봤던 경험 덕분에 심사 과정에서 제 이력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물론 직접적으로 건축과 연관된 일은 아니었지만, 사무직으로서의 기본기, 업무처리 능력, 고객사 응대, 꼼꼼함 같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나중에 공장이나 산업 시설 설계를 맡게 된다면 지금의 경험이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인턴 생활 외에도 여러 건축물들을 보며 돌아다니셨잖아요, 그 중 기억에 남는 장소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A. 네, 정말 많습니다. 그 중 두 가지를 뽑자면요.
첫째는 제가 머물렀던 회사 숙소입니다. 미국 영화에서 보던 평범한 주택 아파트 단지였는데, 사실 제게는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건물이었으니까요. 더 흥미로웠던 건, 같은 시공사가 지은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집마다 구조가 조금 씩 달랐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른 숙소에 방문할 때마다 ‘왜 여긴 화장실이 저기에 있지?’, ‘우리 숙소 배치가 훨씬 나은 것 같네’ 하면서 작은 건축가 놀이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이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낯선 환경이 제 시선을 바꿔 놓은 거죠.


둘째는 너무나 유명한 미즈 반 데어 로에의 판스워스 하우스입니다. 사실 미국에 오면서 저는 건축 생각을 아예 안 하려고 했습니다. 건축에 지쳐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시카고 여행을 하면서 건물들을 보다 보니 결국 판스워스 하우스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숲 속을 걷다 흰 구조체가 나무 사이로 드러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고 ‘아, 내가 이래서 건축을 좋아했지’ 하는 감정이 되살아났습니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건물에 들어가고, 외벽을 만지고, 사진을 찍으면서 건축이 주는 설렘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미국 생활 동안 건축 버킷리스트를 작성했고, 다시 열정적으로 건축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Q. 낙수장에 다녀오시고 교내 뉴스레터에서 기행문을 작성하셨던 걸 봤어요! 특히 낙수장이 인상 깊었던 부분은 어떤 부분 이였나요?


A. 저에게 낙수장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건축을 시작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1학년 때 처음으로 유명 건축물을 분석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제가 낙수장을 맡았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설계와 건축에 몰입하게 되었고, 그래서 미국에 가면 꼭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14시간을 운전해 도착했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은 건물이라기보다는 정말 예술 작품 같았습니다. 색감, 창호, 가구, 조명, 목재 디테일까지… 모든 것이 치밀했고, 동시에 자연과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있었습니다. 판스워스나 리틀 아일랜드 같은 건물들이 멋지다는 감탄을 주었다면, 낙수장은 저에게 존재 자체가 예술인 건축을 보여준, 경외에 가까운 경험이었습니다.
Q. 건축적인 부분에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유진님이 느낀 차이점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어요!


A. 가장 큰 건 규모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도 많고, 기술도 좋습니다.
한국은 땅이 좁아서 건물을 높고 빽빽하게 짓지만, 미국은 땅이 넓다 보니 건물을 낮고 넓게 짓습니다. 그리고 콘크리트를 구하기 어려워서 목조 건축이나 벽돌 마감이 많습니다.
태도에서도 차이가 큽니다. 한국은 건축에 큰 비용을 쓰는 경우가 드물고, 경제성과 효율성을 우선시 합니다. 반면에 미국은 자원과 자본이 풍부하다 보니 새로운 시도나 실험적인 디자인도 과감히 실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건축은 조금 소극적이고, 미국 건축은 자유롭고 대범하다고 느꼈습니다.
Q. 1년간의 해외생활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이 무엇인가요?

A. 저는 망설임 없이 여유로움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늘 긴장 속에서 살다 보니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잃곤 했는데, 미국에서는 단순히 하늘이 예쁘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더라고요. 도시든 숲이든, 붉게 물든 광활한 하늘을 볼 때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그래, 나는 살아있구나’ 라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저에겐 그것만으로도 큰 선물이었습니다.
Q. 1년간의 휴학을 끝내시고 이제 복학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돌아와서 달라졌다고 느끼시는 게 있나요?
A. 네, 확실히 발상의 폭이 넓어졌다는 걸 느낍니다. 한국에서는 단순히 매스에서 매력을 찾고, 작은 포인트로 차별성을 주는 건물들이 많습니다. 반면 미국에서 본 건축물들은 겉에서부터 자유롭게 자기 개성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제를 하면서도 더 과감하게 시도해보려 합니다. 물론 가끔 ‘이건 너무 과하다’ 라는 피드백을 듣기도 하지만, 직접 보고 느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게 되더라고요. 저는 지금 우리 건축이 조금 더 과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유진님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A. 일단은 졸업할 때까지 후회 없이 설계를 즐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물론 비자 문제가 가장 큰 변수가 되겠지만, 제가 느꼈던 그 자유와 여유를 다시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미국의 시골 호숫가에 작은 가구 공방을 열고, 가끔 건축 답사를 다니며 사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유학을 원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아직 어릴 때만 가능한 도전들이 있습니다.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면 부모님의 지원도, 시간을 내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단순히 여행만 하는 것도 좋지만, 인턴이나 유학처럼 그 나라의 일상까지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은 훨씬 더 값집니다.
망설이고 있다면,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꼭 도전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경험은 분명 건축학도인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겁니다. 긴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OUTRO
곽유진님의 1년은 건축에서 잠시 멀어진 것처럼 보여도, 결국 건축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든 여정이었다. 미국의 일상 속에서 만난 작은 차이들은 단순한 건축 답사를 넘어 삶의 태도까지 바꾸어 놓았다.
건축을 공부하다 보면 흔히 ‘정답’에 맞추려는 습관 속에서 스스로의 열정을 잃을 때가 있다. 하지만 곽유진님의 이야기는 건축을 떠나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순간조차 결국 건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나의 건축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로 확장될 수 있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이 질문을 붙들며 조금 더 용기 있게, 조금 더 자유롭게 건축을 펼쳐나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