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도가 읽어야 할 6가지 에세이 ① 편 : 복잡성과 모순의 미학

INTRO

건축은 오랫동안 질서, 순수성, 통일성, 명료성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해 왔다. 그러나 도시는 언제나 그보다 더 복잡했고, 인간의 삶은 언제나 그보다 더 모순적이었다. 로버트 벤투리의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는 바로 이 간극을 정면으로 응시한 책이다. 196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이후 16개 언어로 번역되며 건축 담론의 핵심 텍스트가 되었고, 모더니즘의 순수주의를 비판하는 “비단순한 건축을 위한 부드러운 선언”으로 읽혀 왔다.

이 글은 건축학도가 반드시 읽어야 할 에세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로서, 로버트 벤투리가 누구인지에서 출발해 그가 왜 복잡성과 모순을 옹호했는지, 그리고 그 사유가 오늘날 건축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한다. 특히 벤투리가 제시한 7가지의 핵심 개념을 따라가며, 이 책이 단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전문이 아니라 건축을 더 넓고 더 깊게 읽기 위한 인식론적 전환점이었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robert venturi의 vanna venturi house 모습 (출처:archdaily)

 

1P: Robert Venturi 그는 누구인가?

로버트 벤투리(1925–2018)는 미국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활동한 건축가이자 이론가, 교육자였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쳤고, 이후 로마의 아메리칸 아카데미 펠로우를 거쳤으며,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에서 건축 이론을 가르쳤다. 그는 에로 사리넨, 루이스 칸, 오스카 스토노로프의 사무실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이후 자신의 작업을 통해 20세기 후반 건축 담론을 재편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벤투리는 흔히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불리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단순히 반(反)모더니스트로 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근대 건축의 성취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삶의 다층성과 도시의 혼종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고 보았다. 프리츠커상은 벤투리를 “현대 건축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구해낸 인물”이라고 소개하며, 그가 글과 건축 양쪽에서 동시대 건축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한다. 다시 말해 벤투리는 근대 건축을 부정한 인물이 아니라, 근대 건축의 언어를 더 복합적이고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비틀어 확장한 인물이었다.

그의 유명한 문구인 “Less is a bore”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Less is more”를 겨냥한 반박으로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 말의 핵심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그것은 건축이 지나치게 정제될 때 오히려 현실을 잃고, 인간적 경험의 풍부함을 소거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벤투리는 건축을 하나의 완벽한 명제가 아니라, 충돌하는 가치와 층위가 공존하는 열린 체계로 이해했다.

 

robert venturi의모습 (출처:via venturiscottbrown )

 

2P: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는 어떤 책인가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는 벤투리의 첫 번째 책이며, 그의 사유를 가장 응축된 형태로 보여주는 이론서다. 이 책은 1966년 MoMA에서 출간되었고, 이후 건축 이론과 비평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자리 잡았다. 프리츠커상 소개문에 따르면, 이 책에서 벤투리는 “Main Street도 거의 괜찮지 않은가?”라고 묻고, 건조한 추상성과 순수한 통일성보다 “지저분한 생명력(messy vitality)”을 더 옹호했다.

이 책은 특정 양식을 제안하는 설계 지침서가 아니다. 오히려 벤투리는 역사적 사례, 도시의 풍경, 매너리즘과 바로크, 르코르뷔지에와 알바 알토, 그리고 익명의 일상적 건축을 가로지르며 건축을 읽는 새로운 태도를 제시한다. 그는 건축이 하나의 명쾌한 질서로 환원될 수 없으며, 오히려 서로 충돌하는 요구를 조직하는 과정 속에서 깊이를 획득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의 핵심은 형식적 장식의 복귀가 아니라, 의미와 경험의 복수성을 건축 내부에 다시 들여오는 데 있다.

벤투리는 명료성과 단일성의 미학을 넘어서, 풍부함과 애매함, 중첩과 긴장을 강조했다. MoMA는 이 책을 “비단순한 건축을 위한 부드러운 선언”이라 소개하며, 근대 건축의 순수주의에 대한 반란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 문헌 중 하나로 평가한다. 이 표현은 중요하다. 벤투리의 목표는 파괴가 아니라 수정이며, 부정이 아니라 확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이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의 모습 (출처:architecturalrecord )

 

3P: Both-And(양자공존) | 하나가 아니라 동시에 둘

벤투리 사유의 핵심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면, 건축은 “either-or”가 아니라 “both-and”의 예술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좋은 건축은 하나의 원리만을 순수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충하는 가치들을 동시에 붙들 수 있어야 한다. 내부와 외부, 질서와 예외, 구조와 장식, 규모의 통일과 부분의 자율성이 상호 배제되지 않고 복합적으로 공존할 때, 건축은 비로소 현실의 복잡성을 닮게 된다.

이 양자공존은 타협이나 우유부단함과 다르다. 벤투리에게 Both-And는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조직 능력을 요구한다. 단순한 체계는 하나의 규칙만 따르면 되지만, 복합적인 체계는 서로 다른 논리를 동시에 유지하면서도 전체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벤투리가 옹호하는 복잡성은 무질서가 아니라, 다수의 질서가 충돌하면서도 공존하는 상태에 가깝다.

 

오늘날 건축학도가 이 개념에서 배워야 할 점은 분명하다. 설계는 언제나 하나의 정답을 향해 수렴하는 과정이 아니라, 프로그램, 장소성, 구조, 경제성, 상징성, 사용자 경험 같은 서로 다른 요구를 중층적으로 조율하는 과정이다. 벤투리의 Both-And는 바로 이 설계의 실제 조건을 이론의 언어로 정당화한다. 다시 말해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해 제거하지 말고, 그것을 견디고 조직할 수 있는 형식적 지능을 요구하는 것이다.

 

Both-And의 대표적인 사례 Hawksrnoor St. George, Bloornsbufy의모습 (출처:LRB)

 

4P: Ambiguity(모호성) | 의미가 하나로 닫히지 않을 때

벤투리는 건축을 하나의 완벽한 명제가 아니라, 충돌하는 가치와 층위가 공존하는 열린 체계로 이해했다. 벤투리는 건축에서 모호성을 결함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모호성은 불분명함, 불완전함, 해석의 실패로 여겨지지만, 벤투리에게 모호성은 오히려 풍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상태다. 하나의 공간이 두 가지 방식으로 읽히고, 하나의 입면이 서로 다른 규모 체계를 동시에 드러내며, 하나의 요소가 구조이면서 상징일 수 있을 때, 건축은 단선적 의미를 넘어서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모호성이 단순히 혼란을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벤투리는 애매함 속에서 건축적 긴장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명쾌한 체계는 즉각적으로 이해되지만, 곧 소진된다. 반면 모호한 건축은 보는 이를 머물게 하고, 다시 읽게 하며, 부분과 전체 사이의 관계를 재조정하도록 만든다. 이처럼 모호성은 건축을 소비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해석되는 사건으로 바꾼다.

 

건축 교육의 측면에서도 이 개념은 유효하다. 학생들은 종종 컨셉의 명료성을 지나치게 강박적으로 추구한 나머지, 실제 공간이 지닐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스스로 제거하곤 한다. 그러나 좋은 건축은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정한 여백과 중층성을 통해 사용자와 비평가, 도시의 시간에 의해 계속 재독해될 수 있는 상태를 남긴다. 벤투리의 모호성은 바로 이 열린 건축의 태도를 요청한다.

 

Ambiguity의 대표 예 빌라 사보아의 평면 모습 (출처: archi-monarch )

 

5P: Double-Functioning Element(이중 기능 요소) | 하나의 요소가 두 가지 역할을 할 때

벤투리의 논의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개념은 이중 기능 요소다. 이는 하나의 건축 요소가 두 가지 이상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상태를 뜻한다. 예컨대 벽이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구조체이면서 상징적 표면이 되고, 계단이 수직 동선이면서 동시에 공간의 중심 장치가 되며, 입면의 장식이 단지 시각적 효과를 넘어 규모와 진입의 질서를 매개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이 개념은 근대 건축이 자주 선호했던 기능의 단일 대응 관계를 넘어선다. 모더니즘의 언어에서 하나의 요소는 가능한 한 명쾌하게 자신의 기능을 드러내야 했다. 그러나 벤투리는 실제 건축에서 요소들이 늘 그렇게 순수하게 분리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오히려 건축의 풍부함은 하나의 요소가 동시에 여러 층위에서 작동할 때 발생한다. 기능, 구조, 상징, 기억, 도시적 맥락이 중첩될 때 건축은 더 밀도 높은 의미를 획득한다.

이중 기능 요소는 특히 제한된 조건 속에서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예산이 작거나 면적이 협소한 프로젝트일수록 하나의 요소가 다층적으로 기능해야 설계의 밀도가 높아진다. 따라서 이 개념은 단지 역사적 비평 용어가 아니라, 오늘날의 실천적 설계 전략으로도 읽을 수 있다. 좋은 디테일은 아름다운 디테일이기 이전에, 복수의 역할을 정교하게 접속시키는 디테일이라는 점에서 벤투리의 시선은 여전히 유효하다.

 

Double-Functioning Element의 대표적인 예 사글라다 파밀리아의 단면 모습 (출처:bernardsmith)

 

6P: Contradiction Adapted(적응된 모순) | 모순을 제거하지 않고 흡수하는 건축

벤투리는 건축이 마주하는 모순 가운데 일부는 완전히 해소될 수 없다고 보았다. 대지의 제약, 프로그램의 충돌, 구조적 요구, 도시적 맥락, 사용자의 기대는 종종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이때 적응된 모순이란 이러한 상충 관계를 억지로 지워버리는 대신, 건축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조정하며 하나의 체계로 흡수하는 방식을 뜻한다.

중요한 것은 적응이 굴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것은 현실 조건을 설계의 재료로 전환하는 적극적 태도다. 순수한 도식은 조건이 단순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프로젝트는 거의 언제나 불완전한 조건 위에서 이루어진다. 벤투리는 바로 이 불완전성 속에서 건축이 더 지적이고 더 정교해질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의 도시 재생, 리노베이션, 복합 프로그램 건축에서도 이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기존 구조와 새로운 사용이 충돌할 때, 법규와 장소의 기억이 부딪칠 때, 좋은 건축은 둘 중 하나를 삭제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요구를 번역하고 조정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다. 벤투리의 적응된 모순은 현대 건축이 현실과 맞붙는 가장 생산적인 방식 중 하나다.

 

Contradiction Adapted 대표적인 예 찬디가르의 평면 (출처:archaic-studio)

 

7P: Contradiction Juxtaposed(병치된 모순) | 충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기

적응된 모순이 상충하는 조건을 흡수하여 조직하는 방식이라면, 병치된 모순은 그 충돌을 하나의 건축 안에서 병렬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에 가깝다. 벤투리는 건축이 모든 대립을 봉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때로는 서로 다른 체계가 긴장 상태 그대로 공존할 때 더 강한 표현과 의미가 생긴다. 다시 말해 건축은 매끈한 합의의 산물이 아니라, 통제된 충돌의 장이 될 수 있다.

이 병치는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면성과 비대칭성의 충돌, 기념비성과 일상성의 충돌, 추상적 형식과 구체적 상징의 충돌, 큰 스케일의 질서와 작은 스케일의 파편적 요소의 충돌이 모두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이 모순이 우연한 불협화음이 아니라, 건축가가 의식적으로 구성한 긴장이라는 점이다. 벤투리는 이러한 긴장이 건축을 더 두껍고 더 기억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고 보았다.

 

이 개념은 오늘날 시각 문화가 지나치게 매끄러운 이미지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 매끈하고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건물 이미지와 달리, 병치된 모순을 품은 건축은 보는 이를 잠시 멈추게 한다. 그 건축은 쉽게 봉합되지 않는 질문을 남기며, 사용 과정 속에서 계속 새로운 독해를 낳는다. 벤투리가 말한 복잡성은 바로 이러한 해석의 잔여를 남기는 건축의 힘과 연결된다.

 

Contradiction Juxtaposed의 대표적인 예 Mill Owners’ Association Building 모습 (출처:Archaily)

 

8P: Inside and Outside(안과 밖) | 내부와 외부의 차이가 건축을 만든다

벤투리는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에서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건축의 핵심적인 모순이 드러나는 지점으로 본다. 그는 근대 건축이 자주 건물을 “안에서 밖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한 단일한 유기체처럼 설명하려 했지만, 실제 건축에서는 내부와 외부가 결코 완전히 같을 수 없다고 보았다. 검색 가능한 책 요약과 발췌 자료에서도 벤투리는 “inside is different from the outside”라고 말하며, 이 차이 자체가 건축적 사건이 된다고 설명된다.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 건축은 단순히 내부 기능이 외피에 그대로 투명하게 드러난 결과물이 아니라, 내부의 요구와 외부의 질서가 서로 협상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실내 공간은 사용, 동선, 채광, 체류 경험의 논리를 따르고, 외부 형태는 도시 맥락, 상징성, 거리에서의 표정, 스카이라인과의 관계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벽은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안과 밖이 서로 다른 요구를 교환하는 두께이자 매개 장치가 된다.

 

벤투리는 바로 이 차이에서 건축의 깊이가 발생한다고 본다. 만약 내부와 외부가 완전히 일치해야 한다는 강박이 지배하면, 건축은 지나치게 도식적이거나 설명적인 형식으로 수렴하기 쉽다. 반대로 내부와 외부의 차이를 인정하면, 건축은 하나의 기능적 도표를 넘어서 복수의 읽기를 허용하게 된다. 외부는 도시를 향한 얼굴이 되고, 내부는 삶이 조직되는 세계가 되며, 건축은 그 둘이 만나는 접면에서 비로소 독자적인 형식을 얻는다.

 

Inside and Outside의 대표적인 예 First Unitarian Church 모습 (출처:researchgate)

 

9P: Simplification or Picturesqueness | 단순화인가, 그림 같은 효과인가

벤투리는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에서 건축이 빠지기 쉬운 두 가지 유혹으로 ‘과도한 단순화’와 ‘피상적인 picturesque함’을 지적한다. 책의 핵심 장 가운데 하나도 바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vs. Simplification or Picturesqueness”로 구성되어 있으며, 벤투리는 노골적인 단순화가 결국 밋밋한 건축을 만든다고 비판한다. 검색 가능한 발췌본에는 그의 대표적 문장인 “Blatant simplification means bland architecture”와 “Less is a bore”가 함께 제시되며, 이는 단순함 자체보다 현실의 복잡성을 삭제하는 태도를 겨냥한 말로 읽힌다.

 

여기서 벤투리가 말하는 simplification은 단지 형태를 간결하게 만드는 절제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요구와 의미, 맥락과 긴장을 하나의 질서로 억지로 환원해버리는 태도에 가깝다. 이런 단순화는 표면적으로는 명쾌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건축이 다루어야 할 도시의 복잡성, 프로그램의 다층성, 역사적 기억의 두께를 지워버린다. 반대로 그가 경계한 picturesqueness 역시 단순한 다양성의 찬양이 아니다. 그것은 복잡성을 진지한 구조적 문제로 다루지 않고, 시각적으로만 흥미로운 장면이나 장식적 효과로 대체하는 피상성을 가리킨다.

 

이 점에서 벤투리의 입장은 매우 정교하다. 그는 단순한 기하학적 순수주의에도 반대했지만, 단지 그림처럼 보이는 효과적인 구성만으로 건축이 풍부해진다고도 믿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가 옹호한 복잡성은 이미지의 화려함이 아니라, 상충하는 조건을 실제로 조직하는 건축적 밀도다. 2016년 학술 리뷰에서도 이 장은 벤투리가 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뿐 아니라 르코르뷔지에, 알바 알토, 루이스 칸 등의 작업에서 복잡성과 모순의 태도를 읽어냈다는 점을 강조한다

 

Simplification or Picturesqueness 의 대표적인 예 Church of Three Crosses (출처:alvaraalto )

 

10P: The Difficult Whole(어려운 전체) | 전체는 단순한 통일이 아니다

벤투리의 가장 중요한 통찰 가운데 하나는 “전체”에 대한 재정의다. 그는 좋은 건축의 전체성이 부분들을 완벽하게 종속시키는 매끈한 통일성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서로 다른 요소들이 긴장과 충돌을 유지한 채 하나의 관계망을 형성할 때, 비로소 “어려운 전체”가 성립한다. 여기서 전체는 단순한 조화의 결과가 아니라, 모순을 견디며 성립하는 더 높은 수준의 질서다.

이 개념은 벤투리의 모든 논의를 종합한다. Both-And는 어려운 전체의 논리이며, 모호성은 그 전체를 풍부하게 만드는 조건이고, 이중 기능 요소는 부분의 밀도를 높이며, 적응된 모순과 병치된 모순은 전체를 구성하는 긴장의 방식이다. 관습적 요소의 낯설게 하기는 그 전체 안에 기억과 문화적 층위를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결국 벤투리에게 중요한 것은 복잡한 부분들의 나열이 아니라, 그 복잡성을 담아낼 수 있는 전체의 수준이었다.

 

오늘날 이 개념은 더욱 절실하다. 복합 프로그램, 혼합 용도, 도시적 리노베이션, 공공성과 상업성이 겹치는 프로젝트는 모두 단순한 통일성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좋은 건축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층위를 억지로 하나의 표정으로 덮지 않고, 그 복합성을 조직하여 더 깊은 전체를 만든다. 벤투리가 말한 어려운 전체는 바로 이런 시대의 건축이 지향해야 할 윤리이자 형식적 과제다.

 

The Difficult Whole 의 대표적인 예 Church of the Jacobins 평 (출처: .wikimedia )

 

OUTRO

로버트 벤투리의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는 여전히 현재의 책이다. 그것은 단지 모더니즘 이후의 역사적 전환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려는 모든 설계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읽힌다. 오늘날 건축은 기후 위기, 도시의 불평등, 복합 프로그램, 기존 건축의 전환, 디지털 이미지의 과잉, 정체성과 기억의 정치 같은 수많은 층위와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벤투리의 복잡성과 모순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을 정직하게 다루기 위한 인식의 태도다.

 

그렇다면 오늘의 건축학도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첫째, 단순함을 미덕으로 자동 승인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함은 때로 강력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삭제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 둘째, 설계에서 충돌하는 조건을 제거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새로운 관계를 발명할 기회로 읽어야 한다. 셋째, 역사와 관습을 낡은 것으로 폐기하지 말고, 현재적 질문 속에서 다시 조작하고 재의미화해야 한다. 넷째, 건축을 즉시 소비되는 이미지가 아니라, 오래 읽히고 다시 해석되는 문화적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결국 벤투리가 말하는 복잡성과 모순은 불완전한 현실을 향한 건축의 성숙한 응답이다. 건축은 깨끗한 해답만을 제시하는 기술이 아니라, 때로는 해소되지 않는 긴장을 견디며 더 넓은 질서를 구성하는 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는 단순히 읽어야 할 고전이 아니라, 건축을 공부하는 태도 자체를 다시 세우게 만드는 책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 태도, 즉 복잡한 세계를 단순화하지 않고 끝까지 사유하려는 지적 성실성일 것이다.

 

robert venturi의 vanna venturi house Model 모습 (출처:M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