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자산운용사가 되다

INTRO

 

“설계 말고도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자산운용사에서 일하고 있는 백산수님은, 공간을 ‘설계’하던 눈으로 이제는 공간의 ‘가치’를 읽고 있습니다. 도면 대신 투자 제안서를 쓰고, 공간의 구조와 흐름을 숫자로 설명하는 일.

건축과 금융 사이, 낯설지만 흥미로운 그 접점에서 일하는 이야기 — 지금 만나보세요!

 

INTERVIEW

CBD 전경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부동산 자산운용사에서 근무 중인 백산수입니다. 공간을 설계하는 법을 비우고, 이제는 공간의 가치에 투자하고 운용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도시와 공간에 대한 관심이 깊었고, 건축 설계를 통해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데 흥미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학부 과정 후반부로 갈수록 ‘공간이 자산으로 작동하는 방식’에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되었고, 지금은 건축과 금융이 만나는 접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설계하는 것에서 나아가, 그 건물이 어떤 흐름 속에서 현실 세계실현되는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지를 고민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IFC 몰

 

Q. 건축설계를 전공하셨는데, 자산운용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처음 자산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습니다. 건축학과에서는 공간의 아름다움, 기능, 사용자 경험 등 설계 중심의 요소에 집중하지만, 실제로 사회에서 ‘좋은 건축’이라 평가받는 건물들은 단지 설계가 잘 된 건물만은 아니었습니다. 주변 맥락에 잘 맞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유지되며, 경제적으로도 지속 가능한 건물이 결국 ‘좋은 자산’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을 인턴 경험과 리서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 부동산 프로젝트의 개발 구조를 분석하면서, 이 건물이 단지 설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과 투자자의 기대 수익률, 리스크 관리와 직결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이후 부동산 투자와 자산운용에 대해 공부하면서, 공간을 자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일하고 싶다는 확신이 생겼고, 지금의 진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오피스 남산스퀘어

 

Q. 자산운용사로서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시나요?

 

A. 현재 저는 부동산 자산운용사에서 투자운용조직 소속으로, 부동산 자산을 투자부터 운용, 포트폴리오 관리까지 수행하는 ‘부동산 펀드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건축물을 주식과 같은 투자 대상으로 하여 투자금 모집, 투자, 관리하는 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루 일과는 비교적 유동적이지만, 주로 다음과 같은 업무로 구성됩니다. 먼저, 해당 자산에서 발생하는 월별 임대료, 관리비 등의 수입과 지출을 정산하고, 펀드 회계팀과 연동해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또 외부 PM사(자산관리사), FM사(시설관리사)와의 협업을 통해 시설 유지보수나 공실 리스 전략을 점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테리어 공사나 리노베이션 계획을기획하고 실행하는 일도 맡습니다.

 

정기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자산의 운영 현황을 보고하는 리포트를 작성하고, 시장 동향을 분석하며 중장기 보유 전략을 수립하기도 합니다. 간혹 신규 임차인 유치를 위한 제안서나 렌트 스터디(Rent Study) 같은 자료를 준비할 때는, 설계적인 이해와 마케팅적 감각도 요구됩니다.

 

판교 오피스 조감도

 

Q. 건축학과를 졸업하시고 자산운용이라는 분야에서 근무를 하시면서, 학부에서 배우셨던 내용 중 도움

이 되었거나, 실무에서 유용하게 응용하고 계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A. 실무에서 의외로 건축 지식이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리노베이션이나 인테리어 공사를 검토할 때 도면을 빠르게 이해하고, 구조적 제약이나 법적 조건들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공간 구성이나 동선, 외부 노출 면적 등을 감안해 임차인 유치를 위한 레이아웃을 제안 하기도 하고요.

 

또한 시설 관리와 관련된 이슈가 발생했을 때, 전기·기계·소방 설비 등의 기본 구조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FM사와의 협의나 기술적인 판단이 수월합니다. 그리고 투자자 대상 보고서나 제안서에서 공간 관련 설명을 시각적으로 구성할 때도 설계 툴을 다뤄본 경험이 큰 도움이 됩니다. 요약하자면, 공간의 언어와 숫자의 언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제겐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Q. 이 분야로 가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 시간 혹은 단계별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공부,

자격증, 인턴 등)

 

A. 저 역시 전공이 건축이었기 때문에 부동산 금융이나 자산운용에 대한 경험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진로 전환을 위해 아래와 같은 단계로 준비를 했습니다.

 

1단계 : 관심 형성

학부 3학년 무렵부터 설계보다는 건축기획과 도시개발, 그리고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관련 강의나 외부 세미나를 찾아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공간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2단계: 공부와 스터디

기초적인 회계, 재무관리, 부동산 금융 관련 지식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 내 부동산 금융 학회에 가입하여 같은 꿈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부동산 금융 구조, REITs, CAPEX·NOI·IRR 등의 개념들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엑셀 모델링도 간단히나마 독학했습니다.

 

3단계 : 실무 경험

휴학기간중, 그리고 졸업 학기에는 부동산 투자 자문사와 자산운용사의 인턴십에 지원해, 리서치나 투자제안서 작성, 시장 분석 등의 업무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인턴 기간 동안 실사보고서(DD Report)와 렌트롤 분석, 운영 전략 회의 등에 참여하면서 실무 감각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4단계: 포트폴리오와 면접 준비

이후 자산운용사에 지원할 때는 제가 건축 전공자로서 어떤 차별화된 관점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비전공자로서 어떤 준비를 했는지를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에 강조했습니다. 부동산 자산의 물리적 특성과 가치 창출 구조를 이해하는 데 건축적 역량이 도움이 된다는 점을 꾸준히 어필했습니다.

 

데이터센터 건설 현장

 

Q. 전공이 건축이다보니 자산운용에 지원할 때 비전공자로서 느낀 어려움이 있었나요?

 

A. 네, 분명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재무제표를 읽는 능력, 경제 및 경영 관련 배경지식, 투자 수익 분석, 펀드 구조 등은 제가 건축과정에서 접하지 못했던 분야였기 때문에, 처음엔 용어조차 생소했습니다. 또 채용 시장에서도 금융, 경영, 부동산학 전공자들이 기본적인 배경 지식을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면접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비전공자라는 점에서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가 가진 강점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설계 도면을 읽고 공간을 구조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역량, 프로젝트 기반의 문제 해결 경험, 그리고 도시와 사용자에 대한 통합적 시각은 비전공자에게는 없는 장점이었습니다. 자산운용이라는 분야도 결국은 ‘공간을 보는 힘’이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그 점을 강조하며 지원했습니다.

 

데이터센터 조감도

 

Q. 건축 전공자가 자산운용 진로로 가기 위해 꼭 알아두면 좋은 공부나 경험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

요?

 

A. 가장 기본적으로는 재무제표 읽기, IRR/NPV/DCF 등 수익 분석 방식, 그리고 부동산 펀드구조(특히 REITs나 프로젝트금융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엑셀을 활용한 수익 분석 모델을 만들어 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또 한 가지는, 시장 감각을 기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론을 공부해도, 실무에서는 결국 ‘이 자산이 왜 좋은 투자처인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시장 리서치 자료나 부동산 뉴스, 보고서를 꾸준히 읽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경험적으로는 인턴 경험이 가장 도움이 많이 됩니다. 단기간이라도 실무를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추상적인 개념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센터

 

Q. 지금의 선택에 후회는 없으신지, 그 선택이 나에게 어떤 성장을 가져다줬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

다.

 

A. 후회는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설계를 전공한 경험이 지금의 업무에 깊이를 더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이라는 전공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기술이 아니라, 공간과 인간,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을 키워주는 학문입니다. 그런 시선을 자산운용 업무에 접목시키면서, 공간의 물리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함께 고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처음 도전할 땐 낯선 분야였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배우고 도전하는 과정 속에서 ‘배우는 힘’이 커졌고, 이 점이 제가 성장했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물류센터 청라

 

Q. 혹시 다시 진로를 고민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내릴 것 같으세요?

 

A. 앞으로도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순간은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는 ‘내가이 일을 통해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이 나에게 의미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안정적인 길이거나 사회적으로 보장된 길이 아니라, 내가 주도적으로 성장할 수 있고, 일 자체에 흥미와 의미를 느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진로를 다시 정할 것 같습니다. 지금의 선택도 그러한 기준에 따라 결정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여의도 전경

 

Q. 마지막으로, 건축을 전공하고도 다른 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건축을 전공했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매우 복합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기술, 인문, 예술, 논리, 협업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그 경험을 기반으로 어떤 분야든 진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설계자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도시기획, 부동산 개발, 공간 브랜딩, 문화기획 등 건축적 사고가 필요한 분야는 무수히 많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공간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그리고 ‘내가 그 공간을 통해 어떤 가치를 만들고 싶은가’를 고민해보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 건축을 전공했다는 사실은 어떤 길을 가든 결코 낭비되지 않습니다.

 

OUTRO

 

설계를 배우며 쌓은 시선과 감각은, 꼭 설계도 위에서만 쓰일 필요는 없습니다. 공간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맥락을 읽어내는 힘은 자산운용 같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죠.

 

백산수님의 이야기처럼, 전공에 갇히지 않고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간과 사람’을 잇는 법을 찾아보는 것. 그게 어쩌면 진짜 나다운 커리어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조금 다른 각도에서 내 전공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