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살았던 집

INTRO

건축가에게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사유와 실험이 오롯이 녹아드는 무대입니다. 특히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건축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이 생긴 20세기 초·중반, 근대 건축의 흐름을 주도한 거장들의 자택은 그들의 디자인 철학과 시대정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번 아티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히 1920년대 이후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이 살았던 건축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건축가의 철학이 반영된 주택

건축가는 수많은 건축물을 설계합니다. 특히 이들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들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작업의 실험실이자 삶의 안식처이며, 창작의 씨앗이 자라는 공간입니다. 또한 거장이 살았던 집을 살펴보면 도면 위에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개인적 사유와 미적 취향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래는 1920년대 전후로 활동을 시작한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살았던 집을 통해, 그들의 건축 철학이 어떻게 일상 속에 구현되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 르꼬르뷔지에 : 카바농 드 바캉스(Cabanon de vacances, 1952)

 

출처: 위키피디아

 

1952년, 르 코르뷔지에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작은 마을 로크브륀-카프마르탕(Roquebrune-Cap-Martin)에 단 15㎡ 규모의 오두막을 설계해 지었습니다. 그는 이곳을 ‘나의 유일한 휴가용 집’이라고 불렀으며, 여름마다 이곳에서 머물다 1965년 지중해에서 수영 중 세상을 떠났습니다.

 

르꼬르뷔지에가 살았던 오두막 @fondationlecorbusier

 

이 오두막에는 그의 철학이 농축돼 있습니다. 모듈러(Modulor) 인체 비례 체계를 적용해, 최소한의 면적 안에서도 모든 생활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내부는 침대, 책상, 옷장, 세면대가 기능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공간은 극도로 단순하지만 채광과 통풍이 탁월합니다. 재료는 목재와 천연재를 사용해 주변 자연과 어우러지게 했습니다.

 

이곳은 ‘주거는 반드시 크고 화려할 필요가 없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신념을 실험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는 “나는 궁전을 가질 수 있었지만, 단 하나의 오두막을 선택했다”라고 말하며, 삶의 본질과 단순함을 찬미했습니다.

 

오두막의 내부 (@fondationlecorbusier)

 

현재 이 오두막은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르 코르뷔지에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 루이스 바라간 : 카사 에스투디오 루이스 바라간(Casa Estudio Luis Barragán, 1948)

 

루이스 바라간과 그가 살았던 주택 (좌측 : 위키피디아 / 우측: CASA LUIS BARRAGÁN)

 

멕시코 현대 건축의 거장 루이스 바라간은 1948년, 멕시코시티 타쿠바야(Tacubaya) 지구에 자신의 주택 겸 작업실을 완공하고 말년까지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바라간의 집은 외관만 보면 단순한 콘크리트 벽과 최소한의 개구부를 가진 폐쇄적인 형태입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고요한 빛의 흐름, 벽면을 가득 채운 선명한 색채, 그리고 외부 정원과 내부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동선은 바라간 특유의 ‘정서적인 건축(Emotional Architecture)’을 구현합니다. 그는 빛과 색, 물, 식물과 같은 요소를 사용해 공간에 깊이 있는 감정을 불어넣었으며, 이 집은 그 실험의 결정체였습니다.

 

루이스 바라간이 살았던 주택의 평면 (@Barragan Foundation)

 

바라간은 “건축은 침묵과 고독을 위한 배경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집은 이 철학을 그대로 실현한 장소입니다. 작업실에서는 거친 콘크리트 벽과 은은한 자연광이 건축의 원초적 질감을 드러내고, 거실과 개인 서재에서는 따뜻한 목재, 화사한 색채, 정원 풍경이 사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외부와의 소통은 철저히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며, 창문은 빛을 조절해 실내에 ‘시간의 층’을 만들어냅니다.

 

루이스 바라간 주택의 내부 (@Barragan Foundation)

 

바라간은 이 집을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영적·정서적 피난처로 여겼습니다. 그의 침실과 서재는 가장 사적인 사색의 공간이었으며, 집 안 곳곳에 종교적 상징과 개인적 수집품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정원은 멕시코 전통 정원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자연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루이스 바라간이 살았던 주택의 평면 (@Barragan Foundation)

 

그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서의 일상은 ‘설계, 독서, 기도, 그리고 정원의 변화를 관찰하는 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 미스 반 데어 로에 : 캠벨 아파트먼트(Campbell Apartments, 1941)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초상 (좌 @위키피디아) / 그가 살았떤 캠밸 아파트 (우 @chicagomagazine)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시카고로 망명한 뒤 수십 년 동안 도심 스트리터빌의 200 이스트 피어슨 스트리트(일명 ‘캠벨 아파트먼트’)에 거주했습니다.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6층 소규모 코오퍼러티브 빌딩으로, 그가 설계했던 유리·강철 고층과는 대조적인 장소입니다. 1938년 미국으로 건너온 뒤 몇 년간 호텔 생활을 이어가다 1941년 이곳에 정착했고, 1969년 타계할 때까지 같은건물을 지켰습니다.

 

이 건물은 1917년 로버트 S. 드골리어(Robert S. DeGolyer)가 설계한 이탈리아 팔라초 풍의 석조 외관을 갖고, 층마다 두 가구만 배치한 아담한 평면으로 유명합니다. 주변에는 오늘의 시카고 현대미술관(MCA)과 공원이 맞닿아 일상과 문화가 가까운 입지였습니다. 미스가 ‘스킨 앤 본즈(skin and bones)’ 미학으로 구현한 860–880 노스 레이크쇼어 드라이브 유리 아파트를 불과 몇 블록 거리에 세우고도, 정작 자신은 클래식한 이 건물을 택했다는 사실이 대비를 이룹니다.

 

그가 여기서 살았던 당시, 그의 건축적 철학은 S.R. 크라운 홀에서 드러납니다. 미스가 이끌던 IIT에서 완성한 S.R. 크라운 홀은 기둥 없는 큰 ‘유니버설 스페이스’를 지붕 현수구조로 구현해 “거의 아무것도 없는(almost nothing)” 투명한 공간 질서를 실현했습니다. 이 절제의 원리는 피어슨가의 소박한 거처 선택과 호응합니다. 거리의 외피는 클래식했지만, 그가 매일 마주한 도시 풍경과 작업은 ‘적을수록 더 많다(Less is more)’는 규율을 밀도 있게 확장했습니다.

 

결국 피어슨가의 집은 미스의 사유가 생활로 번역된 장소였습니다. 유리와 강철의 보편 공간을 도시와 학교에 남기되, 자신의 일상은 두꺼운 벽과 높은 층고가 주는 침묵 속에 두려 했습니다. 건축은 외부에서 최대한 간명해지고, 내부에서는 조용히 숙성된다는 그의 방식(질서를 사랑하되 사생활은 보호하는 태도)가 그 집의 선택과 배치, 그리고 그가 바라보던 창밖 풍경에까지 스며 있었습니다.

 

● 피터 줌터 : 줌터 하우스(Zumthor House)

 

피터 줌터의 초상 (좌 @위키피디아) / 줌터 하우스 (우 @20th-century architecture)

 

피터 줌터(Peter Zumthor)는 스위스 그라우뷘덴주 할덴슈타인(Haldenstein) 마을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오랜 세월을 거주하며, 건축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감각적 경험을 중심으로 한 공간 철학을 실천했습니다. 그의 거주지이자 작업실인 ‘줌터 하우스(Zumthor House)’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그의 건축적 사유와 철학이 응축된 장소로 평가받습니다.

 

줌터 하우스는 1980년대 초, 피터 줌터가 구입한 오래된 농가를 개조하여 만든 건축물입니다. 이 집은 그의 작업실이자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건축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줌터는 이 집을 통해 건축이 단순한 기능적 요구를 넘어,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철학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줌터 하우스의 내부 (@20th-century architecture)

 

줌터 하우스의 건축은 재료의 질감과 빛의 변화를 세심하게 고려하여 설계되었습니다. 그는 스위스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재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하며 건축물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예를 들어, 목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수축하고 변형되며, 이는 건축물의 감각적 경험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줌터 하우스의 내부 (@20th-century architecture)

 

줌터 하우스는 그의 작업실이자 거주지로서, 일상과 작업이 자연스럽게 연결된 공간입니다. 그는 이 공간에서 건축 작업을 진행하며, 동시에 가족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그의 건축적 사유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건축이 단순한 물리적 구조를 넘어, 인간의 감각과 정서를 고려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줌터 하우스는 그의 건축적 철학인 ‘건축은 감각적 경험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실천한 결과물입니다. 그는 건축이 단순한 기능적 요구를 넘어, 인간의 감각과 정서를 자극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줌터 하우스는 이러한 철학이 구체화된 공간으로, 그의 건축적 사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아르네 야콥센 : 스트란드베엔 413 (Strandvejen 413, 1951)

 

아르네 야콥센의 초상 (좌 @위키피디아) / 스트란드베엔 413 (@realdania)

 

덴마크의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은 그의 건축적 철학과 사유를 직접 거주한 공간에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주택은 ‘쇠홀름(Søholm)’ 주택단지 내에 위치한 ‘스트란드베옌 413(Strandvejen 413)’입니다. 이 집은 1951년에 완공되어 야콥센이 사망한 1971년까지 거주한 곳으로, 그의 건축적 사유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쇠홀름은 야콥센이 설계한 5채의 노란색 벽돌로 지어진 연립주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주택단지는 기능주의에서 덴마크 모더니즘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스트란드베옌 413은 이 주택단지 내에서 가장 바닷가에 가까운 집으로, 야콥센은 이곳을 자신의 거주지이자 작업실로 사용했습니다.

 

스트란드베엔 413의 내부 (@realdania)

 

이 주택은 흰색으로 칠해진 벽과 기하학적인 선들이 특징인 기능주의 건축물입니다. 야콥센은 이 집을 통해 국제적인 기능주의 건축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덴마크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려 했습니다. 그의 건축적 철학은 단순한 형태와 기능의 조화를 통해 표현되며, 이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스트란드베엔 413의 내부 (@realdania)

 

이 집은 야콥센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면서 동시에 작업실로 사용하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건축 작업을 진행하며, 일상과 작업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환경을 조성했습니다.이러한 환경은 그의 건축적 사유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건축이 단순한 물리적 구조를 넘어, 인간의 감각과 정서를 고려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더욱 강화시켰습니다.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탈리아신 주택(Taliesin,1911)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초상 (좌 @위키피디아) / 탈리아신 주택 (우 @frank lloyd wright foundation)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미국 건축의 거장으로, 그의 주거지인 탈리에신(Taliesin)은 그의 건축 철학과 사유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으로 평가받습니다. 탈리에신은 1911년에 완공되어, 라이트가 사망한 1959년까지 거주한 곳입니다.

 

탈리에신은 미국 위스콘신주 스프링 그린(Spring Green)에 위치한 라이트의 집이자 작업실로, 약 800에이커의 부지에 여러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은 라이트의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 철학을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로,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융합된 공간을 제현합니다. 탈리에신의 건축은 주변의 자연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라이트는 “언덕 위가 아닌 언덕 속에 있는 집”이라는 표현으로 이를 설명하였습니다. 이는 건축물이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탈리아신 주택의 내부 (@frank lloyd wright foundation)

 

라이트의 건축 철학은 ‘유기적 건축’으로 요약됩니다. 이는 건축물이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탈리에신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설계되었으며, 자연 재료를 활용하고, 공간의 흐름과 빛의 변화를 고려한 설계가 특징입니다.

 

탈리아신 주택의 전경 (@frank lloyd wright foundation)

 

OUTRO

건축가의 집은 단순한 주소가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과 미적 감각, 시대를 해석하는 방식이 응축된 장소입니다. 오늘날 이 집들은 박물관이자 교육의 장으로 변모해, 여전히 건축과 디자인을 배우는 이들에게 살아 있는 영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